작은 운명 (69)
“검찰청에서 나왔습니다. 사무실을 압수수색하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로 들어가시기 바랍니다.”
검찰수사관은 압수수색영장을 명훈 아빠에게 지시하고 같이 온 직원들로 하여금 사무실을 구석 구석 뒤지기 시작했다. 회계장부 및 문서철, 그리고 컴퓨터를 모두 차에 실었다.
명훈 아빠는 당황했다. 친구 변호사에게 급히 전화를 했다. 변호사는 재판 때문에 올 수 없다고 하면서 압수수색은 거부할 수 없으니 일단 응하라고 코치를 해주었다.
“무엇 때문에 이러는 겁니까?”
“압수수색영장을 보여드리지 않았습니까? 회사에서 비자금을 조성해서 횡령했다는 것과 탈세, 뇌물죄 등의 혐의로 수사를 하고 있는 중입니다. 더 이상 자세한 사항은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명훈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숨이 넘어가는 목소리였다. 이러 때 여자는 더 놀라는 법이다.
“여보. 집에도 수사관들이 와서 모두 뒤지고 있어요. 무슨 일이예요? 우린 아무 죄도 없는데 왜 이러지요? 누가 투서를 했나요?”
“글쎄. 모르겠어. 전혀 내용을 알 수 없는 상황이야.”
수사관들은 명훈 아빠의 자가용과 명훈 엄마가 타고 다니는 차도 모두 압수수색했다. 정말 무서웠다. 검찰 수사가 이렇게 무서울 줄 상상도 못했다.
보통 사람들은 압수수색을 TV에서 잠깐만 보여주고, 수사관들이 회사나 관청 사무실에서 ‘검찰’이라고 쓴 압수물상자를 들고 나오는 장면만 보여주기 때문에 당하는 사람의 심정을 모른다.
평소에 압수수색을 전혀 예상하지 않고 방심한 상태에서 회사의 비밀서류, 특히 노출되어서는 안 되는 서류나 자료를 압수 당하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모든 범죄사실에 대한 증거가 되기 때문이다.
징역을 가고, 회사는 망하기 때문이다. 일반 봉급생활자나 작은 치킨집을 하는 사람들은 압수수색할 것도 없지만, 해봤자 나오는 것도 별로 없다.
하지만 규모가 크고, 돈을 많이 벌고, 장부를 조작하고, 허위의 세금계산서를 끊고, 인건비를 허위로 지급한 것으로 꾸며놓고, 리베이트를 받거나 뇌물을 주고 받는 사람들은 압수수색이 가장 무섭다.
명훈 아빠와 명훈 엄마는 초죽음상태가 되었다. 모든 은행통장도 압수되었다. 심지어 명훈 아빠 핸드폰도 압수되었다. 명훈 아빠는 변호사를 만나러갔다. 모든 문제를 변호사와 상의해야 한다.
이번 사건은 형사문제였기 때문에 검사 출신 변호사를 만났다. 대학 친구 집안에 검사 출신 변호사가 있다고 해서 소개를 받고 선임했다.
변호사는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일단 검찰 조사에 대비해서 준비를 하고 있으라고 했다. 그리고 검찰 조사를 받을 때에는 변호사 자신이 참여하겠다고 했다.
명훈 아빠와 엄마는 초상난 집처럼 어두웠다. 모든 것이 두렵고 불안했다. 명훈 아빠는 공황상태를 벗어나기 위해 위스키를 꺼냈다. 안주도 없이 독한 술을 들이켰다.
명훈 아빠는 변호사와 함께 검찰청으로 들어갔다. 사전에 검사로부터 출석요구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변호사와 며칠 동안 수사에 대비해서 준비를 했다. 검사가 물을 것으로 예상되는 질문사항을 변호사가 미리 만들어 명훈 아빠에게 묻고 이에 대해 답변 연습을 했다.
변호사는 법률을 전문적으로 공부했고, 더군다나 검사생활까지 했기 때문에 익숙한 일이지만, 명훈 아빠는 사업만 하고, 술이나 먹고, 여자들과 연애만 했기 때문에 막상 수사에 대비해서 변호사와 예행연습을 하려고 하니까 정말 어려운 일이었다.
무엇을 물을지도 몰랐고, 핵심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아무리 들어도 잊어버리고 횡설수설하게 되었다. ‘누가 투서를 한 걸까?’ 압수수색을 당할 때까지만 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었는데,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았다.
모든 것은 업계의 관행이었다. 주변에 비슷한 경쟁업체도 다 그런 식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특별한 문제가 없었다. 우리나라에서 어떻게 모든 법을 다 지키고, 회사를 운영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철저하게 법을 지키고, 모범적으로 하게 되면, 곧 바로 다른 경쟁업체에 밀려 회사는 문을 닫아야 한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때로는 편법으로, 때로는 불법으로, 때로는 범죄를 저지르면서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업을 해야 겨우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명훈 아빠는 다른 사람들 다 그러는데, 왜 하필 나만 조사를 받아야 하느냐고 원망을 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그런 방식으로 사업을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증거나 자료는 없었다. 그리고 꼭 명훈 아빠만 당하는 것인지도 불명확했다.
“지금부터 조사를 하겠습니다. 편의상 사장님을 피의자로 호칭하겠습니다. 피의자는 형사소송법에 따라 진술을 거부할 수 있고,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진술을 거부하겠습니까? 그리고 변호사가 조사에 참여할 것입니까?”
갑자기 피의자라는 호칭이 나오자, 어리둥절했다. TV에서 ‘피고인(被告人)’이라는 용어는 많이 들어봤다. 피고인이란 재판받는 사람을 뜻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수사관은 갑자기 피고인이라고 하지 않고, 피의자(被疑者)라고 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그 의미를 물어볼 상황도 아니었고, 이유도 없었다.
일상의 대화에서 이렇게 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 보통은 상대방을 ‘선생님’ ‘아주머니’ 이렇게 부르지, 전혀 관계 없는 피의자라고 이름은 빼고 부른다는 것은 그렇게 부르는 사람을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예. 진술을 거부하지 않고 진술하겠습니다. 그리고 같이 온 변호사님이 참여할 것입니다.”
“피의자는 명태주식회사 대표이사에게 하청을 주고, 나중에 리베이트로 2억원을 돌려받은 사실이 있지요?”
“그런 사실이 없습니다. 리베이트를 받을 사실이 없습니다.”
“명태주식회사로부터 피의자 개인계좌로 2억원이 들어온 것은 어떻게 된 것인가요?”
“그건 제가 일시 자금이 필요해서 빌렸다가 다시 돌려주었습니다.”
“돌려 준 증거는 있는가요?”
“현금으로 돌려주었기 때문에 증거는 없습니다.”
“명태 대표이사는 리베이트로 2억원을 주었다고 진술하고 있고, 돌려받은 사실은 없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저는 돌려준 것이 확실합니다. 그 사람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명훈 아빠는 명태주식회사 사장이 이미 다 진술했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왜 조사받은 사실을 나에게는 말하지 않았을까? 그리고 왜 리베이트로 주었다고 자백을 했을까? 그럴 사람이 아닌데...’ 명훈 아빠는 명태 사장이 원망스러웠다. 그러면서 회사 이름이 ‘명태’라 재수가 없어 그렇다고 생각했다. 회사 이름을 왜 하필이면 명태라고 지었을까? 차라리 ‘동태’라고 하지? 아니면, ‘생태’로 하든가? ‘동태’면 살아있는 기분인데, ‘명태’는 꼭 죽어있는 것같았다.
“현금으로 돌려주었기 때문에 증거는 없습니다.”
“명태 대표이사는 리베이트로 2억원을 주었다고 진술하고 있고, 돌려받은 사실은 없다고 하는데 어떤가요?”
“저는 돌려준 것이 확실합니다. 그 사람이 왜 거짓말을 하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검사는 그 이외에도 정상석 사장에게 시청 공무원에게 3천만원의 뇌물을 준 사실을 추궁했다. 그리고 법인 자금 5억원을 개인적으로 착복한 사실도 혐의를 두고 있었다. 법인 자금 5억원 중 1억원은 애인 오피스텔을 얻어준 것도 검사는 다 확인해놓고 있었다.
검사는 일단 조사를 마치고 피의자신문조서를 읽어보라고 했다. 정 사장은 10시간에 걸친 장시간의 조사에 지쳤다. 너무 힘이 들었다. 같은 질문을 되풀이해서 묻고 따지고 추궁하는 검사가 무서웠다.
옆에서 참여하고 있는 변호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앉아 있기만 했다. 개별적인 신문에 코치는 할 수 없는 모양이었다.
검사는 조사를 마치고 일단 돌아가 있으라고 했다. 필요하면 또 부를 것이라면서 조사받은 사항을 관련자들에게 이야기하지 말라고 했다. 일종의 공갈이었다. 증거인멸을 하지 말고, 말을 맞추어서 수사를 방해하지 말라는 취지였다.
갑자기 세상이 무서워졌다. 어떻게 회사 비밀을 검사에게 소상하게 이야기해준 것일까? 누구일까? 회사 내부에 있는 사람의 소행같았다. 조사받느라고 지쳐 집에 도착하니 명훈과 명훈 엄마가 심각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여보. 어떻게 되었어요? 조사 잘 받았어요?”
“글세. 모르겠어. 어떤 X이 투서를 한 것 같아. 회사 내부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
“명훈이는 가서 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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