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중단에 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
가을사랑
가족 중에 환자가 병원에 입원해 있는데 다시 소생의 가능성은 없는 상태에서 산소호흡기에 의존해서 겨우 연명만 하고 있을 때 어떻게 해야 할까 망설이게 될 것입니다. 산소호흡기를 제거하면 곧 생명은 끊어지게 되고, 그렇다고 달리 뾰족한 치료방법도 없는 상태에서 시간만 끌고 있을 때 가족의 입장에서는 치료를 중단하고 싶기도 할 것입니다. 의사의 입장에서도 더 이상의 치료가 환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지만, 생명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에 치료를 중단해서 사망에 이르게 하기도 어려운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이럴 때 가족이 환자의 치료를 중단해 달라고 요구해 오면 의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인간의 생명(menschliches Leben)은 하나밖에 없으며 전 지구와도 바꿀 수 없을 정도로 소중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형법상 살인죄로 처벌됩니다. 또한 민법상 불법행위로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하게 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자살행위는 처벌되지 않지만, 다른 사람의 자살행위에 관여하는 행위는 형사처벌됩니다. 실제로 보라매병원사건에서 가족의 요청에 따라 마지못해 환자로부터 산소호흡기를 제거한 의사에 대해 살인방조죄가 적용된 사례도 있었습니다.
안락사(Euthanasie)라 함은 죽음이 임박해 있는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행해지는 살해행위를 의미하는 것으로, 진정안락사와 부진정안락사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진정안락사는 환자의 생명을 단축함이 없이 고통을 줄이기 위해 행해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경우에는 생명이 단축되지 않으므로 법적으로 별문제가 없습니다.
부진정안락사라 함은 환자의 고통을 제거하거나 줄이는 과정에서 그 생명을 단축시켜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부진정안락사 중에서 직접적 안락사라 함은 환자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하여 환자를 직접 살해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직접적 안락사는 적극적으로 투약이나 주사 등의 작위에 의하여 살해하는 적극적 안락사와 음식물이나 영양제 등의 공급 또는 치료를 중단함으로써 사망시기를 앞당기는 소극적 안락사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환자의 의사에 따른 적극적 직접적 안락사의 경우에 위법성이 조각되는지 여부에 관하여 대법원은 여전히 부정설의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경우에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하는 견해는, ① 환자가 불치병으로 인해 사망이 임박하였고, ② 환자의 육체적 고통이 매우 심각하고, ③ 환자의 고통을 제거 ? 완화하기 위한 것이고, ④ 환자의 촉탁 또는 승낙이 있고, ⑤ 원칙적으로 의사에 의해 시행되는 등 그 방법이 윤리적으로 정당하다고 인정될 것 등을 조건으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한편 존엄사(death with dignity)라 함은 사기에 임박한 뇌사자 등의 환자가 의식불명이 될 경우에 대비하여 치료거부의 의사를 밝혀둔 때 그 의사를 존중하여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유지하며 죽음을 맞도록 인공호흡기나 유동식투여기구 등의 생명유지장치를 제거하여 자연스럽게 죽음을 맞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존엄사에 대하여는 헌법과 형법의 생명권보호정신에도 반하지 아니하며, 윤리학이나 종교의 영역에서도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므로 살인죄의 위법성을 부인해야 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2008년 11월 28일 서부지방법원에서는 의학적으로 회생가능성이 없는 환자의 생명 연장 치료를 중단하고 존엄하게 죽을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판결을 선고함으로써 다시 존엄사에 대한 법률적, 의학적, 윤리적 논쟁을 불러일으킨 바 있습니다.
법원은 8개월 동안 식물인간 상태로 있던 A 씨(여, 76세)와 그 자녀가 B 대학병원을 상대로 “어머니의 평소 뜻에 따라 자연스러운 사망을 위해 인공호흡기를 제거해달라.”라는 취지로 청구한 소송에서 “B 병원은 A 씨에게 부착한 인공호흡기를 제거하라.”라는 판결을 선고했습니다.
재판부는 “환자의 치료중단의사는 환자가 치료에 관한 정확한 정보를 듣고 난 뒤 명시적으로 표시해야 하지만, 의식불명인 경우에는 의식이 있을 당시 현재 자신의 상태라면 어떤 의사를 표시했을 것인지를 추정해야 한다.”라고 밝혔습니다. 재판부는 A씨가 3년 전 남편이 심장질환으로 임종을 맞게 될 무렵 생명을 며칠 더 연장할 수 있는 기관절개술을 거부했고, 가족들에게 “내가 소생하기 힘들 때 인공호흡기는 끼우지 마라. 기계로 연명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는 가족들의 진술을 토대로 A 씨가 자연스러운 죽음을 맞이하겠다는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물론 이 판결은 적극적 안락사 및 모든 유형의 치료중단에 관한 것이 아니고 치료가 무의미하고 환자에게 치료중단의사가 있다고 보이는 경우에는 의사는 환자의 자기결정권에 근거한 인공호흡기 제거 요구에 응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앞으로 이 판결에 대해서는 최종적으로 대법원에서 어떤 판단을 할지 주목된다고 하겠습니다.
생명권은 인간존엄성의 기초를 의미하는 절대적 기본권이고 인간존엄성을 존중하고 생명권을 보장하는 헌법 정신에 비추어 볼 때 결코 포기할 수 없는 법익이므로 의료행위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이 무제한적으로 인정된다고 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치료를 중단하게 되면 환자가 사망하거나 환자의 생명이 단축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지는 경우에는 치료중단에 대한 환자의 자기결정권을 인정할 것인지 여부에 관하여 매우 신중한 판단을 하여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