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람처럼 무서운 존재는 없다
정현은 김현식으로부터 충분한 자료를 확보했다. 우선 급하게 해야 할 일은 범죄에 대한 증거자료를 찾는 것이었다. 정현은 수사팀을 편성했다. 베테랑 수사관 5명을 모아 팀을 짰다. 그래서 임무를 부여했다. 천강주식회사 사무실에 가서 어떻게 비자금과 관련된 자료를 확보할 수 있는지에 대해 예행연습을 했다.
김현식은 자신이 현장에 직적 갈 수는 없기 때문에 현장 약도를 그려가면서 상세하게 설명했다. 현장을 급습해서 압수수색을 하는 일은 결코 쉬운 게 아니다. 상대가 있는 일이기 때문에 첫째는 보안이 철저하게 유지되어야 한다. 수사기밀이 새면 수사는 수포로 돌아간다. 특별수사에 있어서 핵심이고 요체다. 알파요 오메가다.
또한 압수수색을 하러 갔는데 현장에서 직원들의 저항을 받게 되면 그 시간에 다른 직원들은 증거자료를 빼돌리는 시간을 벌게 된다. 그래서 신속하게 저항을 제압하고 압수수색하는 것이 필요했다. 철저한 준비만이 대책이었다. 그리고 훈련된 직원이 필요했다. 압수수색을 많이 해 본 수사관들은 현장에 도착하면 신속하게 필요한 증거자료를 확보한다.
정현은 수사관들과 협의해서, 토요일 오후 시간, 대부분의 회사 직원들이 퇴근한 시간을 잡아 현장에 가도록 했다. 그래서 디데이를 잡았다. 검찰청 봉고차를 동원했다. 금고문을 열 전문가도 대동하도록 했다. 김현식의 진술을 근거로 해서 내사사건으로 만들어, 법원으로부터 압수수색영장을 발부받았다. 압수수색영장이 없이 압수수색할 수 있는 예외적인 경우가 있지만, 현실적으로 어렵다.
정현은 수사팀을 현장에 내보낸 후 사무실에서 대기하고 있었다. 검사의 책임하에 이루어지는 압수수색은 수사의 성패와 직결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큰 기업체의 경우에는 압수수색이 실시되면 그 즉시 언론에 대서특필된다.
그리고 그 자체로서 기업은 치명적인 타격을 받게 된다. 기업체와 거래하는 금융기관이나 다른 업체에서는 수사를 받는 기업체와 거래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생각한다. 그래서 위기에 몰리게 되고 장기화되면 부도에까지 이르게 된다.
수사팀은 5시간에 걸친 압수수색과정에서 천강주식회사의 회계장부와 비자금장부 등을 10박스나 압수수색했다. 정현은 수사팀들과 밤을 새면서 압수물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일주일 정도 수사를 해서 그 성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천강주식회사 사장은 회사에서 20억원이나 되는 비자금을 조성해서 임의로 사용했다. 그리고 그 돈을 가지고 관계공무원들에게 뇌물을 주었다.
수사 초기에는 매우 완강한 자세로 범행을 극구 부인했다.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검사 앞에서 범죄사실을 시인하면, 곧바로 구속되고 회사는 엄청난 타격을 받게 된다. 그리고 관계공무원들에 대한 뇌물공여사실을 시인하면 그 공무원들도 구속되고 파면된다.
그래서 사업하는 사람들은 검찰에서 수사가 시작되면, 대부분 모든 사실을 부인한다. 비자금조성까지는 쉽게 밝혀진다. 왜냐하면 회사에서 작성하는 공식적인 장부 이외에 비밀리에 별도로 작성하여 관리하는 장부가 압수되면 회사자금의 업무상횡령사실은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러한 비자금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그것이 수표로 사용되지 않는 한, 쉽게 밝혀지지 않는다.뇌물 같은 부정한 돈은 대개 현금으로 거래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러한 부정한 거래에 대해서는 영수증 같은 증거를 남기지 않는다.
뇌물을 주고 받는 사람들 사이에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지기 때문에 부정한 거래에 대해 특별한 물적 증거가 없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처벌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돈을 준 사람의 자백을 받고, 그에 대한 정황증거를 찾아내면 처벌이 가능하게 된다.
천강주식회사의 정순용 사장은 끝까지 버텼다. 자신은 모두 모르는 일이라고 했다. 회사의 자금 관리는 전무이사가 했고, 자금담당임원들이 한 일이다. 자신은 비자금조성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부인했다. 정현은 시간을 가지고 회사자금의 흐름을 파악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충분히 밝혀낼 자신이 있었다. 김현식 부장이 제공한 자료를 기초로 해서 관계공무원들의 인적 사항을 파악하고, 증거확보에 나섰다.
정순용 사장은 하루 아침에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무슨 날벼락인가 싶었다. 밤낮 없이 열심히 회사를 위해 일만 해왔는데 왜 갑자기 검찰에서 자신의 회사를 타겟으로 해서 특별수사를 벌이는지 영문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검찰에서 어떻게 자신의 회사의 내부사정을 그렇게 속속들이 잘 알고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수사가 진행되자 대충 감이 잡혔다. 김현식부장이 회사를 그만두고 회사 내부사정을 투서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하기 시작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자신은 김현식부장에게 크게 잘못한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정 사장은 배신감 때문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직원을 시켜 김부장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김부장은 회사 직원을 만나주지 않았다.
일은 이미 벌어진 것이었다. 믿었던 도끼에 발을 찍힌 것이었다. 정사장은 건강도 좋지 않은 상태였다. 당뇨에 고혈압이 있었고, 의사의 말로는 콜레스트롤도 놀고 지방간도 있다고 햇다. 술담배를 더 이상 해서는 안된다는 권고를 받았다. 얼굴도 예전과 달리 검은 색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오후에는 몸이 나른해서 30분씩 안락의자에 누워 쉬어야 했다. 그런데 갑자기 최악의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정사장은 세상에 사람처럼 무서운 존재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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