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쫓는 자와 쫓기는 자


정현은 김현식이 제보한 사건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를 하기로 했다. 김현식을 다시 만나 상세한 진술을 받았다. 천강주식회사에서는 공식적인 회계장부 이외에 실제 매출과 비용 등을 제대로 기재한 비밀장부를 따로 만들어 관리하고 있었다. 회사 비자금을 별도 통장으로 거래하고 있었고, 상당 부분은 현금으로 만들어 금고에 보관하고 있었다. 

 

김현식은 회사 내부 사정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 회사에서 누가 경리를 담당하고 있는지, 어떻게 비자금을 조성하는지, 그 비자금을 사장이 어떻게 보관하고 사용하는지, 관계 있는 공무원들은 누구인지 등에 대해 정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김현식은 왜 그런 정보를 검사에게 알려주는 것일까? 분명 나름대로 목적이 있다. 사장에 대한 복수심이었다. 김현식은 회사에 들어가 최선을 다했다. 회사와 사장을 위해 자신의 청춘을 바쳤다. 남 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했다. 회사의 매출을 위해 자존심도 버리면서 열심히 뛰어다녔다. 주인의식을 가지고 일을 했다. 그런데 사장은 이런 김현식의 공로를 잊어버렸는지, 아니면 처음부터 알지 못하고 있었는지 어느 날 갑자기 회사를 그만 두도록 했다.

 

김현식은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 사장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떨었다. 어떻게 해야 할까? 그냥 회사에서 쫓겨나고 말면 그만이었다. 다른 직장을 구하면 될 것이었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다. 회사 사장을 잘 살게 그냥 둘 수가 없었다. 그건 인간적인 정의감이었다. 하늘이 무너져도 정의는 세워야 한다고 그는 믿었다. 그것은 그가 법과대학에 들어가 첫 강의 시간에 머리가 하얀 노교수로부터 들은 법언이었다. 그 이후로 그는 법률서적을 읽으면서 그 법언을 결코 잊어버린 적이 없었다. 정의는 인간사회에서 유지되어야 할 가장 중요한 가치였다.

 

부정한 방법으로 돈을 벌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하는 정 사장이 사회에서 제재를 받을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였다. 관련 공무원들과 유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 사장은 약아서 세무서건 행정관청이건 경찰이건 모든 부서에 손을 써 놓았다. 관청의 실무자들은 정 사장에 대해 아주 호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마음 놓고 나쁜 짓을 하고 큰소리 치고 살아가고 있었다.

 

김현식은 검찰에 찾아가 사장의 비리를 제보하기로 마음 먹었다. 떳떳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힐 수는 없었다. 그런 사실이 알려지면 함께 근무했던 회사 직원들로부터 받을 비난이 두려웠다. 남의 약점을 폭로한 사람이라는, 의리 없다는 손가락질을 받을 것 같았다.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그런 전근대적인 인식, 의리중시풍조가 남아 있다.

 

사실 그건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법을 위반하고,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수사기관에 고발하는 건 민주사회의 시민으로서 당연한 의무였다. 김현식은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서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익명으로 제보하기로 했던 것이다. 검사에게 전화를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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