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

 

맹사장은 군대를 면제받았기 때문에 젊었을 때 단체생활을 해보지 않았다. 그래서 군대가 어떤 곳인지 전혀 모른다.

 

군대 가서 단체생활을 하게 되면, 남의 눈치도 보게 되고, 공동으로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든 것인지 깨달을 수 있었을 텐데, 그런 기회를 갖지 못한 것이었다. 그래서 군대 이야기만 나오면 늘 콤플렉스를 느꼈다.

 

맹사장은 구치소에 있으면서 형법책을 많이 보고 있었다. 대법원 판결도 읽고, 형사사건에 관한 법률지식에 관해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 이유는 그래야 재소자들로부터 실력을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가면서 그는 감방 안에서 자연스럽게 소문이 났다. 소문이 퍼지다 보니 일부는 와전되기도 했다. 다른 방에서는 맹사장이 변호사 자격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고, 미국에 유학 가서 로스쿨을 수석으로 졸업하고 미국 변호사 자격을 취득한 천재라고도 했다.

 

심지어는 맹사장의 이혼한 전 부인이 현직 검사라는 엉뚱한 말도 퍼졌다. 하지만 정작 맹사장 자신의 재판에서는 완전히 져서, 검사가 구형을 36개월 했는데, 판사는 고작 6개월만 깎아주고, 실형 3년이라는 무거운 형을 선고했던 것이다.

 

맹사장은 판결 선고를 받으러 가는 날, 아침에 담당 변호사에게 전화로 물어보았다. ‘판결 선고가 어떻게 날 것 같아요? 변호사님!’ ‘글쎄요. 제 경험으로 봐서는 징역 1년이 20%, 집행유예가 80%라고 봐요. 너무 걱정마세요. 판결 선고 잘 받고 오세요.’

 

그때만 해도 맹사장은 옛날에 고시공부는 했지만 실무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었다. 그래서 변호사만 무조건 믿고 있었다. 또 한 가지는 유명한 역학자가 맹사장은 사주팔자 관상에 관재수가 1%도 없다는 말을 한 것을 철저하게 믿고 있었기 때문에, 검사가 징역 36개월을 구형했을 때도 장난인 것으로 알았다.

 

검사는 고소인이나 피해자 편을 하기로 작정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냥 형식적으로 그러는 것으로 알았다.

 

그런데 막상 판사가, ‘피고인을 징역 3년에 처한다라고 선고하고, 곧 이어서 교도관에게 구속영장을 주면서, 데리고 가라고 했을 때 맹사장은 기절할 뻔했다. 그리고 법원에서 구치소 호송버스를 타고 구치소로 향했다.

 

동물의 왕국을 보면, 초원에서는 무리에서 이탈한 얼룩말을 사자들이 습격을 한다. 얼룩말은 죽기 살기로 필사적으로 도망가지만, 얼마 가지 못해, 불과 몇 분 안에 사자의 무섭고 날카로운 이빨은 얼룩말의 목덜미를 물고 늘어져 질식시킨다. 얼룩말의 고통은 잠시뿐,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인간은 더 잔인하다. 갑자기 법정에서 판사의 말 한 마디에 무서운 사자들이 수갑을 채우고, 포승줄로 묶고, 자유를 완전히 박탈한다. 그리고 동물우리와 같은 감방에 처넣는다.

 

외부와는 차단되고, 옷도 군대식으로 통일된 색깔로 바꾸고, 이름 대신 번호가 주어진다. 구치소에서 재소자들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번호만 알면 되고, 번호로 움직이는 것이 효율적이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중그등학교에서도 같은 반에서 번호만 가지고 출석을 부르거나 성적표를 나누어주는 것도 이 때문이다.

 

맹사장이 몇 달 지나서 정신을 차리고 있는데, 같은 방으로 신입자가 들어왔다. 45살이라는 통영씨는 처음 들어와 가볍게 인사만 하고 며칠 동안 거의 말을 하지 않았다.

 

죄명은 사기라는데, 얼굴이나 말하는 태도로 보아서는 도저히 사기꾼이라고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너무 순진해 보이고, 진지해 보였다. 재소자들은 그의 정체에 대해 매우 궁금해했다. 그는 얼마 지나지 않자, 돈을 잘 썼다.

 

영치금을 가지고 재소자들에게 먹을 것도 사주었다. 책은 주로 미국말로 된 경제와 정치에 관한 책을 읽고 있었다. 일본어로 된 철학책과 소설도 읽고 있었다. 분명 우리나라 사람이 맞는데, 한국말로 된 책은 전혀 보지 않고 있었다.

 

외국책을 읽으면서 혼자 조용히 미소를 띠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보면 분명 학식이 깊고, 책이 재미있는 것처럼 보였다. 다른 사람들은 영어와 일본어로 된 책을 읽을 수 없기 때문에, 그냥 표지가 고급스럽게 생겼다는 것만 확인할 뿐이었다.

 

무슨 책이냐고 묻고, 내용이 어떠냐고 물어도 통영씨는 전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시간이 가자, 그는 서서히 자신의 정체에 대해 1급 군사기밀인 것처럼 이야기했다.

 

저는 어렸을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가서 살다가 나이 들어 한국에 돌아왔어요. 아버님은 미국 텍사스주 휴스턴에서 주유소를 5개 경영하고 있어요. 제가 고국에 돌아가서 사업을 하고 싶다고 했더니, 우선 100억을 가지고 한국에 가서 작은 사업부터 연습삼아 해보라고 해서 들어온 거예요. 그런데 한국에서 호텔 사업을 하려고 준비하던 중, 같이 투자하겠다고 달라붙은 여자 세명으로부터 억울한 고소를 당해서 지금 재판을 받고 있는 중이예요. 저는 곧 나갈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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