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를 맞으며>

가을비를 맞으며 상념에 젖는다. 비가 내리는 이 밤에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

어떤 사람들이 뜨겁게 사랑했다. 서로에게 모든 것을 바쳤다. 자신들의 운명을 걸었다.

그러나 시간이 가면서 부모의 끈질긴 반대로 한 쪽의 마음이 흔들렸다. 그들은 더 이상의 용기가 없었다. 운명을 걸었으나 결국 운명에 굴복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은 따로 결혼했다. 겉으로는 행복해 보였다. 그렇지만 한번 고열의 용광로에 들어갔다가 나온 존재는 더 이상의 고온이 아니면 만족하지 못하고 아무 것도 느끼지 못한다.

두 사람은 불행의 씨앗을 원초적으로 내포하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결혼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불만을 토로하다가 모두 파탄에 이르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두 사람은 과거의 애틋함과 서로에 대한 그리움을 간직하고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러나 많은 시간이 흘러 굳어진 껍질을 벗길 수 없었다. 애정이란 딤채에 담아두었다가 꺼낸다고 해서 변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세월은 약이기도 하지만 변화에는 효소 역할을 한다. 두 사람은 돌이킬 수 없는 운명임을 깨닫고 각자의 길을 가기로 했다.

사랑할 때는, 당신만이 나를 사랑으로 채워줄 수 있어요(Only You, and You alone can fill my heart with love for only You)라고 말한다.

당신은 나의 운명(You are my destiny)이라고 믿는다. 'Only You'를 노래한 'The Platters'처럼 말이다.

사랑은 변할 수 있다. 그게 인간의 운명이다. 인간의 한계가 여기에 있다. 그것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비극이 있었다.

비는 생명을 키우는 자연의 축복이다. 사랑도 우리가 키워야 하는 생명체라면 비를 듬뿍 맞아야 한다. 인위적으로 주는 물이 아니고 하늘로부터 내리는 비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그 속에는 운명을 느끼도록 하는 철학이 담겨 있다. 늦은 밤, 빗소리를 들으며, 가을비의 다정다감한 체취를 느끼며 운명을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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