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98)
한편 미경은 한동안 공황상태에 빠졌다. 자신은 아무 생각 없이 열심히 살았다. 비록 첫단추는 잘못 끼어졌기 때문에 결혼도 실패했다. 그후 몇 사람의 남자를 만나서 사랑을 나누었지만, 자신이 남자복이 없어서 그런지 모두 다 건달이었고, 무책임한 방랑자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경 자신은 정말 괜찮은 남자가 언젠가는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다. ‘제대로 된 남자! 제대로 배우고, 남자답고, 여자를 배려하면서 진정으로 사랑하는 남자!’가 언젠가는 미경의 앞에 나타나 진정으로 미경의 진수를 알아보고, 영원한 사랑을 해줄 것으로 믿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나타난 사람이 바로 강교수였다. 미경이 강교수에게 바랬던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강교수의 돈을 바랬던 것도 아니었다. 강교수의 인물 때문에 사랑했던 것도 아니었다. 강교수의 성적 능력에 이끌렸던 것도 아니었다. 미경에게 강교수는 그야말로 교수였기 때문에 사랑의 대상이 된 것이었다.
강교수의 순수함, 대학 교수가 가지는 카리스마, 지적 능력과 분위기, 그리고 그의 여자에 대한 배려 때문에 미경은 자신의 모든 것을 강교수에게 바치려고 했다. 물론 시간이 가면서 강교수와의 육체적 관계는 시들해졌다.
서로 나이가 있었기도 했지만, 강교수가 그렇게 탁월한 기술이나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여자에게는 남자와의 관계가 언제나 육체보다는 정신이 더 중요했다. 미경은 강교수와 관게를 할 때에는 언제나, 그의 현실적인 육체의 움직임을 본 것이 아니었다.
눈을 감고 강교수의 강의하는 모습, 안경을 쓰고 책을 읽고 있는 모습, 그가 캠퍼스를 거닐면서 사색에 잠겨있는 모습을 연상하고 있었다. 그런 이미지에 빠져 있으면, 그가 미경의 위에서 움직이는 동작은 어디까지나 단순한 그림자였다.
그래서 미경은 황홀경에 빠졌고, 사랑의 미로에서 몸부림쳤다. 미경의 모든 것을 바치고, 던지고 싶었다. 그래서 강교수의 조각을 영원히 세우고 싶었다. 설사 자신이 사랑하지 않았다고 해도 좋았다. 강교수가 오직 자신을 농락했다고 해도 좋았다.
그건 사랑의 일방적인 희생이었고, 기약 없는 메아리였다. 그러던 강교수가 이상한 일로 자신을 멀리하고, 그 때문에 자신도 강교수로부터 멀어졌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났다. 그때 발렌타인 데이가 왔다. 그날 미경은 지독한 열병을 앓았다.
무슨 까닭인지 몰랐다. 이미 강교수에게서 마음은 멀어진 상태였다. 다시 미경의 일상으로 돌아와 많이 냉정을 되찾은 때였다.
그런데 문득 강교수의 품이 그리워졌다. 그리고 미칠 듯이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 미경은 그래서 강교수에게 전화를 했다. ‘잘 지내고 있느냐?’고 묻고 싶었다. 그런데 강교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마 미경의 전화를 차단해놓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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