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1)

“맞아요. 정말 저는 안 했어요. 그 여자 위에 올라가기는 했어도, 삽입 자체를 하지 않았어요.”
명훈은 흥분해서 이런 식으로 말을 했지만, 막상 상대가 여자변호사이고, 게다가 젊게 보여 순간적으로 아차 싶었다. 너무 당시의 상황이나 행위에 대한 설명을 너무 적나라하게 했기 때문이었다.

‘명훈씨 그런 식으로 답변하면 불리해요. 아예 처음부터 모두 부인을 하든가 해야지, 피해자를 강간하려고 했다고 하면, 그 자체로 기수나 미수 모두 비슷하게 무겁게 처벌을 받는 거예요. 조사를 받는 피의자가 자신의 혐의를 부인하는 것은 정당한 권리예요. 피의자에게는 묵비권, 진술거부권, 자백을 강요 당하지 않을 권리, 그리고 더 나아가 부인할 권리가 헌법이나 형사소송법에 보장되거 있는 거예요.“

여자 변호사는 법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하고 있었지만, 공부는 열심히 하지 않고 연애나 하고 클럽이나 다니고 자가용 운전만 열심히 했던 명훈에게는 무슨 말인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묵비권은 무엇이고, 진술거부권은 무엇일까? 부인한다는 것은 무엇이고, 자백을 강요 받지 않는다는 것이 어떤 권리인지 알 수 없었다.

“혹시 경찰관이 거짓말탐지기 측정을 하자고 하면 동의하지 말아요. 부정확할 뿐더러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거니까요.”
명훈 엄마는 변호사 사무실을 나오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어린 아들이 여자 좋아해서 그런 것은 이해하는데, 해도 너무한 것 같았다. 애인도 있고, 원하면 관계를 할 여자도 있는데, 왜 나이 먹은 주부를 강간하려고 했을까?

명훈 엄마 친정에는 이런 성폭력범은 들어보지도 못했는데, 왜 성씨 집안은 이 모양일까? 자신이 약사인데 좀 더 관심을 가지고 아들에게 성교육을 시킬 것을... 그리고 이번 사건도 피해자와 진작 합의를 할 것을... 일을 그르친 것 같아 속이 상했다. 더군다나 명훈 아빠도 지금 회사 문제로 억울하게 조사를 받다가 끝내 일본으로 도피해 있는 중이다. 명훈이 앞으로 살아갈 날이 많은데 어떻게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갈 것인지 걱정이 태산 같았다.

한편 은영은 고민이 많아졌다. 일단 현재의 모든 상황을 명자와 정자를 만나 솔직하게 다 털어놓기로 했다. 정자에게도 더 이상 숨길 수가 없어 박기사와의 관계를 이야기했다.
“하는 수 없어. 박기사를 상대하지 말고, 직접 명훈 아빠 회사를 찾아가서 난리를 피도록 해. 아니면 명훈 엄마 약국에 가서 난리를 펴. 결혼시켜 달라고 하든지, 아니면 낙태할 테니까 3억 원을 달라고 해. 빨리 결판을 져야 해. 이제 6개월이 다 되니까. 더 이상 망설일 시간이 없어. 그런데 내 생각으로는 결혼은 절대로 할 사람들이 아니니까 그냥 돈을 받고 수술하는 게 좋겠어.”

“아니 그 박기사가 그렇게 나쁜 인간이 되었어! 그냥 둘 수가 없네. 나한테까지 해코지를 하려고 한다는 거지. 좋았어. 내가 손을 볼테니까 연락처를 줘. 은영아! 너무 걱정하지 마. 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아이를 낳아. 그러면 모든 문제가 해결 돼. 명훈네 돈이 많다면서. 이런 기회를 놓쳐서는 안 돼. 그리고 남자란 일단 아이를 낳으면 완전히 달라져.”

은영은 두 친구와 이야기를 해도 아무런 결론을 내릴 수는 없었다. 머리 속은 더욱 복잡해졌다. 식당에서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식사를 하는 젊은 부부가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이는 인형처럼 귀여웠다.

은영은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우리 아이도 저 애처럼 예쁘고 사랑스럽고 귀여울 거야.’ 그러면서 아이를 낳아야지, 도저히 낙태를 해서 죽일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식당에서 켜놓은 TV에서는 마침 낙태죄폐지를 두고 논란을 벌이고 있었다.

천주교에서는 ‘낙태죄 폐지 반대를 위한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었다. ‘낙태는 아직 태어나지 않은 생명에 대한 끔찍한 폭력이자 일종의 살인행위’라고 주장하고 있었다. 이런 TV 방송 내용을 보면서 은영은 정말 낙태를 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더욱 확고하게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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