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7)

홍 검사는 3년 전에 이런 사건을 담당했던 적이 있었다. 그때는 특별한 생각 없이 일반사건으로 보고 기계적으로 처리했다. 만일 오늘과 같은 일을 경험했더라면, 전혀 다른 각도에서 사건을 보다 진지하게 보고 신중하게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 것이 어쩌면 인간의 한계일지 모른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고, 법률가는 법이라는 대단히 형식적이고 획일적이며 기계적인 잣대를 가지고, 몇 달 전, 또는 몇 년 전의 사건을 소급해서 사실판단을 하고 법률적용을 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건의 수사나 재판은 원초적으로 불완전성, 불공평성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다.

어떤 남자가 서울 도심지에서 대로변을 가다가 여학생 두과 교차하면서 지나쳤다. 여학생 두 명은 팔장을 끼고 걸어가고 있었다. 시간은 해가 져서 어두워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인도에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걸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편이었다. 그런데 그 남자가 여학생 일행을 교차하는 순간, 한 여학생이 친구들에게 말했다. “앗! 저 남자가 내 히프를 만졌어.”

남자는 고개를 숙이고 가다가 여학생과 몸이 닿은 사실은 있었지만, 여학생의 신체를 의도적으로 만진 사실은 없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냥 가던대로 길을 가고 있었다. 여학생 일행은 가던 길을 돌아서 그 남자를 스마트폰으로 여러 장 찍었다. 그리고 그 남자를 따라가서 세웠다. “아니, 왜 우리 친구 히프를 만지고 가요? 가면 안 돼요. 경찰에 신고했어요.”

그러자 그 남자는 당황했다. 길거리에서 창피를 당할 것같은 생각이 들어서 도망치려고 했다. 잘잘못을 따지기 전에 주변 사람들에게 창피하고 만일 경찰이 오면 조사를 받고 시시비비를 가려야하기 때문이었다. 그 남자는 전에 폭행죄 등으로 세 차례 조사를 받고 벌금을 낸 사실이 있었다.

그래서 일단 경찰에 가서 조사를 받게 되면 자신의 결백과 무혐의를 받기가 얼마나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무의미하며 비생산적인 게임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 남자는 뛰어서 현장을 이탈하려고 했으나 경찰이 오기 전에 ‘젊고 정의로운’ ‘귀신도 때려잡는 해병대’ 출신의 한 남성에 의해 현행범으로 체포되었다.

우리 형사소송법상 현행범은 경찰관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현장에서 체포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그래서 예를 들면, 오토바이가 사람을 치고 달아나는 것을 택시 기사가 끝까지 쫓아가서 붙잡는 것이라든지, 공원에서 야간에 여자를 성폭행하고 달아다는 범인을 체포하는 행위는 정당한 행위이며, 체포감금죄에 해당하지 않는다. 체포를 하기 위해 다소 폭행을 해도 위법성이 조각된다. 그 남자는 해병대 출신의 남성에 의해 체포된 직후 출동한 경찰관에게 인계되었다.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여학생은 “이 남자가 제 옆을 지나치면서 갑자기 오른 속으로 제 왼쪽 히프를 세게 만지고 도망갔습니다. 정말 나쁜 사람이예요. 너무 세게 히프를 웅켜쥐었기 때문에 지금까지도 히프가 아파요. 무겁게 처벌해주세요.”

경찰서로 인계된 남자는 펄펄 뛰었다. “저는 전혀 그런 일이 없습니다. 고개를 숙이고 길을 가다가 그 여학생과 몸이 조금 닿아 스쳤던 적은 있지만,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있는 대로변 인도에서 어떻게 여학생의 히프를 세게 웅켜진다는 말입니까? 너무 억울합니다.”

“그럼, 이 여학생이 거짓말을 한다는 것입니까? 당신을 성범죄자로 몰아서 돈을 뜯어내려고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까? 그리고 고의로 만지지 않았으면 그 자리에서 해명을 할 노릇이지, 왜 도망을 쳤습니까?” “그 여학생은 아마 저와 스쳐지나가면서 제 손이 약간 닿았기 때문에 오해를 한 것 같고, 제가 도망간 것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지만, 성추행범으로 오해를 받으면 창피하고 귀찮을 것 같아서 도망가려고 한 것입니다.”

사건 당시 도로에는 CCTV가 있어 경찰에서는 이를 확보하여 동영상을 분석했다. 하지만 CCTV가 한곳에서만 촬영되어 있어, 여학생 일행과 그 남자가 아주 근접하게 교차한 장면은 나오지만, 남자가 여학생의 히프를 만지는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경찰에서는 어린 여학생의 진술의 신빙성에 더 무게를 두었다. 그리고 그 남자가 폭행이나 상해 등으로 벌금을 세 번이나 낸 전력이 있고, 아주 근접한 거리를 두고 여학생과 교차한 사실 및 현장에서 성추행범으로 몰리자 도망치려고 했던 정황 등을 근거로 남자를 강제추행죄로 입건하여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 사건을 맡은 홍 검사는 피의자신문조서를 받고, 이어서 피해자와 대질조사도 했다. 남자는 홍 검사에게 이런 말을 했다.

“검사님! 저는 정말로 억울합니다. 이 사건은 여학생이 오해를 했거나 새빨간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제가 전과가 있지만, 저는 3년 전에 세상이 싫어서 절에 가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절로 들어간 이유가 한 여자로부터 배신을 당하고 깊은 상처를 입어서 세상이 싫어졌기 때문에, 사회에서 돈을 잘 버는 가게도 넘겨버리고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자라고 하면 정말 정이 떨어지고 징그럽게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 제가 길에서 여자의 엉덩이를 만지다니요? 정말 저를 아는 사람들이 알면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펄펄 뛸 겁니다. 제가 수도생활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곧 바로 증거로 증명해드리겠습니다.”

하지만 홍 검사는 그 남자의 이런 말을 듣지 않았다. 모두 거짓말로 생각했다. 이상하게 절에서 수도생활을 하고 있다는 사람이 얼굴에서 풍겨나오는 이미지가 욕정을 억제하지 못하는 지저분한 동물처럼 느껴지고, 음성도 느끼했다. 그리고 절에 있다면서 머리도 길었다. 혹시 가발을 쓴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검사가 그런 질문까지 하는 것은 월권이었다.

하지만 CCTV로 봐서는 강제추행죄를 인정하기가 어려워서 다소 고민은 되었다. 그러나 홍 검사는 일단 피해자인 여학생의 명확한 진술이 있었기 때문에 별 걱정을 하지 않고 법원에 넘겼다. 정식재판을 통해 그 남자에게는 벌금 500만원이 구형되었다. 남자는 결국 법원에서 재판을 받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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