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1)
한편 국홍의 부인 복자는 밤을 꼬박 새우면서 초조하게 기다렸다. 아무래도 남편의 신상에 어떤 문제가 생긴 것 같았다. 복자는 일년 전에 교회를 처음 나갔다. 나이 20살 때 교회를 다니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하나님이 없는 것 같아서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당시 복자에게는 세상은 그야말로 서로가 서로를 잡아먹는 세상이었다. 아무도 믿을 사람이 없었다. 남자는 여자를 육체만 탐하고, 어느 정도 정욕을 충족하면 버렸다. 동물만도 못한 존재였다. 주변에 여자들은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잘난 척이나 했다.
자랑이나 하고, 서로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무의미였다. 복자는 세상을 살면서 이렇게 당하고, 저렇게 당하고, 이 사람에게 무시 당하고, 저 사람에게 무시 당하는 일을 반복하면서 결국 하나님은 없다는 결론을 확실하게 내렸다.
그러면서도 전혀 알지도 못하는 부모님께 기도했다. 소원을 빌었다. 옛날 할머니나 어머니가 새벽에 정화수(井華水)<수돗물이나 생수가 아닌 우물물을 길어서 떠놓은 것이다>를 깨끗한 그릇에 떠놓고 두 손을 모아 합장하고 간절히 소원을 빌던 것처럼 아침 일찍, 그리고 밤 늦게 ‘아버지와 어머니’를 향해 두 손을 모으고 소원을 빌었다.
그러면서 가끔 눈물을 흘렸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어디 계신지도 모르고, 살아계신지, 돌아가셨는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아버지, 어머니 어디에 계시든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기를 빌어요. 저는 비록 혼자지만 늘 부모님 생각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어요. 부모님께 실망드리지 않으려고 애쓰고 있어요. 멀리 계시지만, 저를 사랑해주시고, 아껴주세요. 감사합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소원을 빌었다.
복자가 이렇게 아침 저녁으로 부모님께 소원을 빌었기 때문에 나중에는 어머니도 만나게 되었고, 살면서 크게 망가지지 않았는지 모른다. 그렇게 살다가 복자는 국홍과 결혼하고 나서 너무 감사한 생각이 들어 동네에 있는 작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교회에 다니면서, 많은 은혜를 받았다. 지나간 세월을 반성하고, 참회하면서 앞으로는 더 이상 죄를 짓지 않고 살기로 다짐했다.
그런데 이런 복자에게 국홍은 어제 밤부터 퇴근도 하지 않고, 전화도 받지 않고 있는 것이었다.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복자는 술집으로 가보았다. 아침 8시에 술집에 들어가보니 정말 가관이었다. 테이블에 술병과 안주가 널려있고, 바닥에는 핏자국이 있었다.
쇼파도 지저분하게 되어 있었다. 술집이란 영업을 할 때에는 에어콘을 켜놓아서 그렇지 영업을 하지 않고 문을 닫았다가 들어가면 정말 지독한 냄새가 나고, 절대로 들어가서 술을 마실 기분이 나지 않는 곳이다.
사람들은 술을 마시러 들어가기 때문에 웬만한 냄새는 감수하고 들어간다. 그리고 술을 마시는 도중이나, 술에 취해서 나올 때까지도 그런 쾌쾌하고 기분 나쁜 냄새는 술로 인해 업되는 분위기 때문에 상쇄된다. 하지만 술과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 처음 문을 열고 들어가면 그곳은 지옥이지 천국은 절대 아니다.
그것은 이런 것과 비슷하다. 남자와 여자가 술을 마시고 모텔에 들어가서 그짓을 한다. 모텔방 냄새는 어딘지 모르게 쾌쾌하다. 비릿한 정액 냄새가 배어 있고, 오징어냄새가 난다. 매우 동물적인 냄새를 감수하고 모텔에 들어가서 정사를 벌인다.
그것은 오직 정사를 위해서 잠시 은밀한 공간을 빌리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향기롭지 않아도 감수해야 하는 사항이다. 그런데 만일 모텔에서 정사를 끝내고 바로 나오지 않고, 계속 잠을 자다가 아침에 나오게 되면 햇빛 때문에 남자와 여자의 보기 흉한 몸뚱아리가 눈에 들어오고, 화장을 지운 민낯이 보이고, 쭈굴쭈굴한 피부와 주름살, 검버섯 등이 부각되면 정말 환멸을 느끼게 된다.
게다가 탁한 공기, 술이나 담배 냄새, 정액 냄새, 흐트러진 클리넥스 휴지, 사용한 타월, 구겨진 이불 등을 보고 맡게 되면 정말 모든 게 끝이다. ‘무엇 때문에 우리가 껴안고 사랑을 나누었는가? 우리가 밤새 울부짓던 신음소리는 무엇을 위한 것이었던가? 생식의 본능인가, 퇴폐적인 쾌락이었던가?’
복자는 놀랐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복자는 경찰서에 전화를 걸어 남편이 연락이 되지 않는다고 울면서 하소연했다. 경찰서에서는 핸드폰 위치추적을 해서 그런지, 복자에게 곧 바로 연락이 왔다.
“남편께서는 현재 OO 경찰서에 있습니다. 경찰서로 가보십시오.” 복자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다. ‘경찰서라니! 어제 밤 술집에서 손님들과 싸움을 한 모양이구나!’ 복자는 아직 지독한 감기 몸살을 앓고 있는 중이라 거동하기도 힘이 들었지만, 곧 바로 경찰서로 갔다. 그곳에 국홍이 붙잡혀있었다.
“아니! 여보, 이게 어쩐 일이예요? 싸움을 한 거예요. 많이 맞았네요. 빨리 병원에 가야지, 왜 여기에 있어요?”
국홍은 할 말이 없었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눈물만 흘렸다. 강간사건으로 조사를 받고 구속될 수도 있을지 모른다는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그토록 사랑하고 있고, 서로 믿고 의지하는 부인에게 지금 이처럼 비참하고 추락한 더러운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죽는 것보다 힘이 들었다.
복자는 경찰관으로부터 간단한 설명을 들었다. 경찰관은 복자에게 아무래도 구속영장이 청구될 것 같으니 영장실질심사를 준비하라고 조언해주었다. 복자는 밖으로 나와 급하게 변호사를 찾았다. 법원 앞에 있는 변호사 사무실을 몇 군데 들렀다.
난생 처음 만나는 변호사와 사무장들은 정말 냉정하게 생긴 피도 눈물도 없는 사람들처럼 보였다. 아주 차가운 냉혈동물이 사람의 탈을 쓰고 있는 것같았다. “강간사건은 피해자와 합의가 되지 않으면 힘들거예요. 빨리 합의를 해야 됩니다.”가 대부분의 답변이었다. 모두가 남의 일이었다. 자세한 설명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다.
변호사와 계약서를 쓰고, 돈을 내야 비로소 경찰서로 가서 피의자인 국홍을 만나겠다는 것이었다. 복자가 만나본 변호사들은 모두 신뢰가 가지 않았다. 돈만 받아먹고 열심히 하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들어 마침내 복자는 마음에는 썩 들지 않지만, 어떤 나이 든 변호사를 선임했다.
그 변호사는 틀림없이 불구속으로 해주겠다고 하면서 착수금으로 500만원을 내라고 했다. 부가가치세 50만원은 별도라고 했다. 신용카드도 가능하다고 해서 복자는 당장 현금이 없었기 때문에 신용카드를 긁었다. 정말 큰돈이었다. 너무 아까웠다.
복자는 남편과 술집에 필요한 식부자재를 조금이라도 싸게 사러, 대형마트, 수산물시장, 농산물시장, 재래시장을 무수히 다녔다. 돈이 아까워서 택시는 거의 타지 못했다. 옷도 동대문시장에 가서 주로 사입었다.
그런데 지금 남편의 순간적인 실수로 한꺼번에 550만원을 내야 하는 신세가 되었다. 남편이 미웠다. 그리고 복자의 운명이 미웠다. 복자와 남편을 돌봐주지 않는 하나님도 서운했다. 모든 것이 싫었다. 그냥 약을 먹고 영원히 깨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다고 누구와 상의할 사람도 없었다. 그리고 이런 더러운 성범죄사건을 누구와 상의한단 말인가? 세상은 이럴 때 가장 외롭고 고독하다. 인간이 혼자라는 진리가 뼈저리게 느껴지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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