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부녀의 불륜이 문제되면 주위 사람들은 모두 경멸하고 속으로 고소해한다>

 

현재의 상황에서 바람 피우다가 모텔에서 남편에게 들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친정에 알릴 수는 없었다. 알린다고 무슨 도움이 될까 싶었다. 친정에 알리면, 부모님들은 기절해서 쓰러질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까지 있는 유부녀가 다른 남자, 그것도 유부남을 만나 연애를 하고, 모텔에 가서 그 짓을 했다는 사실을 알면, 나이 든 부모로서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아무리 딸이라고 하지만, 그만큼 공부시켜서 시집 보냈으면 그만이지, 평생 부모가 딸을 책임져야 하느냐고 반문할 것이다.

 

경희는 가까운 친구들이 여러 명 있다. 이런 경우 누구에게 연락을 할까? 하지만 친구들의 성격을 잘 알고 있기에 만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가까운 친구라 해도, 자신의 치명적인 약점을 알리고 싶지는 않았다. 친구의 불행을 겉으로는 안됐다고 걱정해 주면서도 속으로는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남이 잘 되면 공연히 기분이 좋지 않다. 친구가 남편이 돈을 잘 벌고 가정에 충실하고, 자식들이 공부를 잘 한다고 자랑하면 기분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성인군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친구가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사업도 잘 안 되고, 자녀들도 공부 안 하고 못된 짓이나 하고 다닌다고 하면, 속으로 고소하게 생각한다. 그러면서 그런 말을 하는 친구를 속으로 무시하고 우습게 본다. 물론 안 그런 사람도 많다. 하지만 누가 그런지 알 수 없으니 함부로 자신의 약점이나 단점, 비밀을 털어놓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경희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친구들 세계에서는 집안도 괜찮고, 미모도 갖추었고, 남편도 괜찮은 사람을 만나 아이 낳고 아무 걱정 없는 것처럼 보였다. 돈도 쓸만큼 쓰고 골프도 치러 다녔으니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그런 경희가 갑자기 불륜으로 남편에게 적발되고 앞으로 이혼을 당할지 어떨지 모르는 상황이라고 하면 속으로는 ‘그렇게 잘난 체 하더니 잘 됐다’라고 생각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사회 전반에 극도의 이기주의와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있다. 자본주의 하에서 물질만능주의가 사람들의 의식 속에 깊이 자리 잡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모든 것을 물질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겉으로 보이는 피상적인 것으로 그 사람을 평가하고, 대접하거나 무시한다. 남이 잘 되는 꼴을 보지 못하는 세태다. 그래서 잘 살던 사람이 망하고, 공무원이 감방에 가고, 남들이 병에 걸려 죽어도 자기 일이 아니면 눈 하나 깜짝 하지 않는다. 오히려 잘난 척 하던 사람이 패가망신하면 신바람이 나는 세상이다.

 

경희는 카페에 앉아 있었다. 머리는 아프고, 이 세상에서 자신이 가장 불행하고 비참한 여자 같았다. 남편 핸드폰으로 전화를 해보았다. 신호는 가는데 받지 않는다. 수십번이나 되풀이했다. 전화는 계속 연결되지 않았다. 자신이 원하는 전화를 상대가 고의적으로 받지 않을 때 심정은 어떠할까? 조급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은 답답해 미치게 된다. 속이 상하고 스트레스를 엄청나게 받는다.

 

지금까지 살면서 경희는 싸우게 되면 남편의 전화를 집에서 받지 않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반대의 입장이 되어서 그런지 상대방의 심정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다.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을 때 얼마나 약이 오르고, 화가 나고, 절망에 빠지는지 생각하지 않았다. 이번에 막상 당하고 보니 상대가 전화를 받지 않는다는 건 보통 문제가 아니었다. 완전히 상대를 무시하고 인격을 짓밟는 것이었다.

 

사기꾼들이 사기를 치고 입장이 곤란하면 전화를 받지 않는다. ‘일주일 후에 틀림없이 꾼 돈 3천만원을 갚겠다.’고 약속을 해놓고, 막상 일주일이 지난 다음 전화를 하면 연락이 되지 않는다. 전원이 꺼져 있다. 이럴 때 피해자는 미친다. 수십번, 수백번 전화를 한다. 밤늦게 아침 일찍 전화를 한다. 그래도 사기꾼의 전화는 전원이 꺼져있다. 이때 피해자의 심정이 어떻겠는가?

 

그러다가 나중에 사기꾼의 전원이 켜있어 음성메시지를 수없이 남기면 그때서야 전화를 걸어와 또 거짓말을 한다. 돈을 구하러 다니느라고 전화를 못 받았다고 미안하다고 한다. 그것은 또 다른 거짓말이다. 며칠 후에 틀림없이 돈을 준다고 거짓말을 하고 똑 같은 악행을 되풀이한다.

 

이런 것이 사기꾼들의 전형적인 수법이고, 피해자는 그 때문에 돈을 잃고 정신까지 우울증에 걸리고 홧병에 걸린다. 하지만 사기꾼은 피해자가 그토록 고통을 받는지 알 이유도 없고, 알 지도 못한다. 그게 사기꾼과 피해자의 역학관계다.

 

경희는 전화하는 것을 포기했다. 어차피 받지 않을 것을 알았다. 지금 남편은 어떤 심정일까?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하는 것일까? 어린 아이는 어떻게 있을까? 너무 많은 것이 궁금했다. 경희 남편은 어떤 상황에 있을까? 관계가 악화된 부부는 언제나 동일한 대칭점에 있다. 누가 잘못을 했던, 한 사람이 괴로우면 다른 사람도 똑 같이 괴롭게 된다. 그것이 부부다. 완전히 헤어지지 전까지는 부부는 똑 같은 상처를 받고, 똑 같은 고통을 받는다.

 

물론 생충은 결혼하면서, 경희에게 분명히 과거 전력이 있다고 생각했다. 자존심이 상해할까봐 직접적으로 물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데이트 하면서 경희의 언행을 보고 느낌으로 확신했다.

 

그러나 생충은 그런 문제에 대해 보편적인 남성 이상으로 지나치게 집착하거나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결혼하기 이전에 있었던 사생활에 대해서는 별로 관여하고 싶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경희가 결혼할 때 31살이었다. 그때까지 여자가 남자와 연애도 안 하고, 성관계도 하지 않고 있었다는 것도 예외인 듯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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