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첩 아버지가 황진이의 혼과 더불어 행복한 시간을 가지다.
어머니가 아들의 이름을 민첩으로 짓자고 하자, 아버지는 옆집에 살고 있는 국어선생님을 찾아갔다. 마침 옆집에 고등학교 국어선생님이 살고 있었다. 그 집에는 국어사전이 10권 이상 있었다.
그 선생님은 워낙 국어를 좋아해서 어렸을 때부터 국어사전을 통째로 외웠다고 한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은 그 선생님을 <걸어다니는 사전>이라고 불렀다.
민첩 아버지가 옆집을 방문하자, 국어선생님은 마침 저녁 식사를 하면서 반주로 동동주를 한 병 마시고 거나하게 취해서 기분이 좋은지, 안락의자에 비스듬히 누워서 <한시>를 읊고 있었다. <황진이> 이름이 나오는 걸 보니까 아마 조선시대 개성의 유명한 기생 <황진이> 관련 <한시>인 것 같았다. 민첩 아버지가 앞발로 소리가 나지 않게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국어선생님은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아마 황진이를 짝사랑하다가 실성한 사람 같았다. 민첩 아버지가 생각하기에 그런 선생님 얼굴로 황진이를 좋아한다고 프로포즈했다가는 무덤속에서 황진이가 벌떡 일어나 국어선생님 따귀를 세게 갈길 것만 같았다.
아마 민첩 아버지가 선생님 집에 가기 전에 그 선생님은 황진이가 싫다고 하는데도 계속해서 황진이를 사랑한다고 노래를 부르고 있으니까 황진이가 번개처럼 나타나서 두들겨팬 것 같았다. 그래도 국어선생님은 너무나 황진이를 사랑한 나머지 뺨이 시뻘겋게 변했는데도 눈물을 흘리면서 <황진이> 시조를 부르고 있었다.
민첩 아버지는 2미터 거리를 사회적 거리를 두고 마스크를 쓴 채 마루에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인채 경건하게 <황진이> 노래를 듣고 있었다. 10분을 그런 상태로 앉아있었더니 갑자기 민첩 아버지의 아랫도리가 후끈거렸다.
아마도 황진이가 다시 선생님 때문에 나타난 모양이었다. 민첩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이상한 마력이었다. 황진이의 혼이 국어선생님은 싫어하지만, 마침 우연히 나타난 민첩 아버지에게 성적 매력을 느껴서 민첩 아버지의 곁을 맴돌고 있는 것을 텔레파시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민첩 아버지는 자신도 모르게 국어선생님이 부르는 <황진이>노래를 완벽한 가사로 아름다운 음률에 맞추어 부르고 있었다.
민첩 아버지는 생전 처음 들어보는 시조인데, 어떻게 무의식에서 저절로 글자 한자 틀리지 않고, 국어선생님을 따라 부를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아마도 무의식에서 민첩 아버지의 혼이 황진이의 혼과 서로 붙잡고 블루스를 추고 있는 것 같았다.
<청산리 벽계수야 수이 감을 자랑마라/ 일도창해하면 돌아오기 어려우니/ 명월이 만공산하니 쉬어 간들 어떠리> 이렇게 황진이가 지었다는 시조를 창가 형식으로 따라부르고 있었다.
민첩 아버지는 갑자기 황진이의 체온을 느꼈다. 행복했다. 민첩 아버지는 지금 당장 죽어도 원이 없을 것 같은 황홀감에 빠졌다.
그때 옆집에서 어떤 사람이 가수 박상철씨가 부르는 <황진이> 트로트를 크게 틀어놓았다. <어얼씨구 저절씨구/ 너를 안고 내가 내가 돌아간다/ 황진이 황진이 황진이/ 내일이면 간다 너를 두고 간다/ 황진이 너를 두고/ 이제 떠나면 언제 또 올까>
이런 경쾌한 노래가 크게 울려퍼지자 갑자기 민첩 아버지 품에 안겨있던 황진이 옆집으로 재빠르게 위치이동을 한 것 같았다. 민첩 아버지 가슴이 썰렁해지고 북극 얼음판 같았다. 민첩 아버지도 놀랐지만, 더 놀란 사람은 다름 아닌 국어선생님이었다.
그는 갑자기 안락의자에서 벌떡 일어나서, 눈을 부라리고 옆집을 쏘아보고 있었다. 국어선생님은 황진이가 이미 떠나갔다는 사실을 깨닫고 현실로 돌아왔다. 동네 사는 민첩 아버지가 옆에 있는 것을 보고 국어선생님은 다시 젊잖은 모습으로 돌아왔다.
“아니, 어쩐 일이십니까?”
“예. 선생님 죄송합니다. 쉬시는데 갑자기 찾아와서 폐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괜찮아요. 제가 잠시 명상에 빠져있었습니다.”
국어선생님은 차를 한잔 내왔다. 두 사람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사실은 제 아들 이름을 민첩이라고 지으려고 하는데 어떠십니까?”
그러자 국어선생님은 국어사전을 펴지도 않고 곧 바로 말했다.
“민첩(敏捷)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 <능란하고 재빠르다>는 뜻이예요. 꽤 좋은 이름인 것 같아요.”
“그래도 이름에 첩이라는 글자가 들어가 있으면 남들에게서 놀림거리가 되지 않을까요?”
“그건 안 그래요. 한자가 중요하지, 한글은 아무 상관없어요. 첩(妾)이라고 쓰면 이상하지만, 첩을 첩(捷)으로 쓰면 좋아요. 더 복잡하게 쓰면 첩은, 첩(氎)이라는 어려운 한자로 쓸 수도 있는데, 그런 글자를 쓰면 아들이 나중에 학교에 가서 자기 이름 쓰는데 한시간 넘게 걸려서 시험답안지에 문제를 풀 시간이 없을 수 있어요.”
그래서 민첩 아버지는 국어선생님의 귀한 말씀을 듣고 크게 감동을 받아 민첩 어머니 의견대로 아들 이름을 민첩(敏捷)으로 하기로 통큰 결단을 내렸다. 민첩 아버지가 어머니에게 자신의 용단을 발표하는 바로 그 시간에, TV 뉴스에서는 북한의 국방위원장이 하노이에서 미국 대통령과 회담을 하기로 하는 <통큰 결단>을 하였다고 난리가 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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