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3)

 

어느 날 영식은 회사 일을 마치고 시간이 많이 남아 차를 운전하고 시내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아스팔트에 세차게 떨어지는 빗방울이 쌓였던 울적함을 시원하게 풀어주는 것 같았다.

 

차 안에는 ABBA의 경쾌한 노래가 귓전을 때리고 있었다. 언제 들어도 좋은 노래다. 가끔 Pop Song을 들으면 어떻게 저렇게 좋은 노래를 만들고, 가수들이 그렇게 매끄럽게 부르는지 신기하게 생각된다. 외국 가수 중에는 정말 탁원한 사람들이 많다. 그 놀라운 가창력에 감탄한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유명 가수들의 노래는 언제나 우리 곁에 다가온다. 영식도 대학을 다닐 때 한 때 팝송에 빠져 영어로 된 가사를 적어서 외우고, 영어로 팝송을 따라부르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곧 우리 노래로 노래방을 다니면서 마이크를 잡고 못하는 노래를 원없이 했다.

 

주변 친구들은 클래식 기타도 배우고, 취미로 피아노나 색소폰, 드럼 같은 악기를 다루기도 했지만 영식은 그런 취미도 갖지 못했다. 일단 회사에 취직해서 사회생활을 하다보니 그런 취미생활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금요일 오후 예정했던 회사 일은 성공적으로 마쳤고, 시간이 남아 빈둥빈둥하다 퇴근해도 아무 문제가 없는 금요일 오후 시간, 마침 비까지 내리니 영식은 묘한 분위기에 빠졌다. 그렇다고 집에 일찍 들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들어가 봐야 별로 재미 없는 부인과 맛없는 저녁식사나 하고, 혼자서 TV나 보고 있을 입장이었기 때문이다.

 

잠원동에 있는 뉴코아백화점 부근을 지나가는데 어떤 여자가 택시를 잡으려고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손에는 쇼핑을 해서 물건을 많이 들고 있었다. 우산도 없이 택시를 잡으려고 왔다 갔다 하는 모습이 안쓰러워 보였다. 입고 있는 옷도 비를 그대로 맞으면 안될 옷이었다.

 

영식은 기사도정신을 발휘하여 차를 그 여자 곁에 댔다. 사실 기사도 마인드를 가져서 그런 것은 아니고, 그 여자의 얼굴과 몸매가 이쁘고 멋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일 인물이 별로고, 나이 먹은 사람이었으면, 귀찮아서 굳이 차를 세우고 태워줄 마음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그럴 이유도 없었을 것이다. 영식은 창문을 내리고 물었다.

 

“어디까지 가시죠?”

“대치동요.”

“타세요.”

“고맙습니다.”

 

영희도 밤이었으면 그 차를 타지 않았을 것이다. 밤에 자가용을 얻어 탔다가 봉변을 당했다는 뉴스도 많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예전에 남자들이 자가용에 타는 여자를 강간하고 돈을 빼앗고, 심지어는 살인한 다음 시체를 강에 버리는 사건도 있었다.

 

그러니까 모르는 남자의 호의를 받아들여 차를 얻어타는 것은 사람을 잘못 만나면 큰일을 당하는 것이다. 미국에서도 고속도로에서 이런 식으로 히치코킹을 하다가 살해되는 사람들이 많다. 거꾸로 차를 얻어탄 사람이 도중에 권총으로 운전자를 살해하고 차까지 빼앗아 달아나는 사건도 많이 있었다.

 

사실 밤에 낯선 차를 무턱대고 탄다는 것은 매우 무모한 일이다. 일단 차에 탄 이상 마음대로 내릴 수 없다. 목적지로 가지 않고 교외로 끌고 가서 강간을 하거나 강도짓을 하는 나쁜 사람들이 있다. 그래서 조심해야 한다.

 

그런데 경희는 대낮에 젊잖게 넥타이를 맨 사람이 자가용을 대고 태워주겠다니 크게 걱정할 일은 없었다. 더군다나 갑자기 소나기가 내려 택시를 잡으려는 모습을 보고 호의를 베풀겠다고 하는 것이 확연히 보이니 전혀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런 마음씨가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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