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4)
얼마나 삭막한 세상인가? 남이 아무리 고통을 받아도 별로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혼자 타고 다니는 자가용들이 줄로 늘어서 있어도 바빠서 택시를 못잡고 있는 사람에게 태워주겠다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어렵다. 잘못 호의를 베풀려고 했다가 무안을 당하는 경우도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튼 사회는 매우 달라졌다. 외롭고 고독을 느끼게끔 되어가고 있다.
우리 사회는 사실 말로만 그렇지 옛날과 같은 인정이 넘치는 사회는 아니다. 인구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자본주의가 도입된 지 오래 되었고, 물질만능주의 사회로 변모하다 보니, 사람들은 오직 자기 자신, 그리고 가정만 생각하고 이웃과도 단절하고 친구도 없고, 의리도 없는 상태로 살아간다. 그래서 사람들은 고독하고, 외롭고 소외감을 느끼며, 우울증에 빠지기도 한다. 심지어는 이런 극한상황을 견뎌내지 못하고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도 한다.
영식과 경희의 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차를 타자 경희는 고맙다는 말을 되풀이했다. 영식은 마침 대치동쪽으로 가고 있는 중이라 아무 것도 아니라고 했다. 영식이 사실 대치동쪽으로 가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별로 뚜렷한 방향 없이 서울을 방황하고 있던 중이었다.
차안에서는 계속해서 좋은 음악이 흘러나왔고, 낯선 이성끼리 좁은 공간에서 특별한 대화 없이 보내야 하는 시간에 적절한 분위기를 잡아 주었다. 사람 사이에 대화가 중단되면 불편하다. 그렇다고 자꾸 쓸데없는 말을 하는 것은 성격상 하기 힘든 사람들이 있다. 그냥 가만히 있는 것이 습관인데, 그래도 가만히 있자니 이상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식은 대낮에 밖에 있는 이유를 회사일 때문이라고 간단히 말했다. 대치동까지는 얼마 걸리지 않았다. 내릴 때 경희는 고맙다고 했고, 나중에 차라도 대접하겠다고 지나가는 말로 인사를 했다. 그때 영식은 경희에게 명함을 건네주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없이 두 사람은 헤어졌다. 서로가 다시 만난다는 것은 별로 염두에 두지 않았다. 차를 한번 태워줬다는 이유로 다시 만나는 것도 이상한 일이다.
그런 일이 있은 후 두달 쯤 지나서 경희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난 번 고마웠다는 말과 함께 자신이 차를 한잔 사겠다는 취지였다. 영식은 만사 제쳐놓고 경희를 만났다. 남자들은 집에서는 부인에게 따뜻하거나 자상하게 대하지 않아도 밖에서는 외간여자들에게 아주 친절하고 성의를 다 한다.
집에서는 생활이니까 그렇게 살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밖에서는 짧은 시간이니까 정성을 기울여 그렇게 해야 다른 사람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한다. 가정적인 사람은 그렇지 않지만, 가정적이지 않은 사람들은 이상하게 거꾸로 한다. 물론 안팎으로 잘 하는 능력 있고 매너 있는 사람도 없지는 않다.
말이 경희가 산다는 것이었지, 가장 분위기 있는 장소를 선택한 것도, 돈을 낸 것도 모두 영식이었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이상한 인연이 되어 만난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경희는 남편이 있었지만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 이런 저런 이유로 우울해졌던 경희는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주었고, 차안에서 말없이 운전만 하고 갔던 영식의 생각이 떠올라 그냥 전화를 했던 것이다.
경희는 자신이 현재 처해 있는 환경과 별로 재미가 없다는 사정 등등의 이야기를 많이 했다. 처녀 시절의 아름다운 문학소녀로서의 꿈, 그 꿈을 이루지 못한 현실적인 아쉬움 등등을 문학적 표현을 사용해 가며 이야기를 아주 감칠맛 있게 잘 했다. 경희의 말을 듣고 있으면 영식은 마치 어렸을 때 동화를 듣고 있는 느낌이었다.
영식과 경희는 가끔 술도 마시고, 강변고수부지에서 바람도 쑀다. 그러다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었다. 그것은 마약처럼 습관이 되었다. Drug과 Sex, Bribery는 일단 시작을 하면 쉽게 빠지고, 벗어나지 못하는 습관성을 가진다. 자연스럽게 진행되고, 그것을 멈추게 하는 제동장치를 스스로는 갖지 못한다.
몇 번 하다 보면 그것은 바로 자신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자신과 결합해서 일체가 되기 때문에 본인은 전혀 의식하지 못한채 조건반사적인 무의식적인 행동과 같이 저절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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