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1)
은영이 약을 사가지고, 요구한 서류를 가지고 호텔방으로 가자, 정 사장은 목욕가운만 걸치고 있었다. 은영은 민망했다. 호텔방에서 남자와 단 둘이 있는데, 그것도 목욕가운만 입고 쇼파에 앉아 있으니 이상했다. 은영은 서류와 약만 건네주고 바로 나오려고 했다.
정 사장은 은영에게 쇼파 맞은 편에 앉으라고 했다. 서류를 보면서 몇 가지 지시를 했다. 그러나 막상 지시하는 내용은 은영이 할 일도 아니었고, 모든 것은 다른 남자 직원들이 받아야 할 지시였다.
정 사장은 또 약을 먹기 위해서 물을 가져오라고 했다. 그냥 자신이 냉장고에서 생수를 꺼내 마시면 되는 것인데, 그것조차도 은영에게 시켰다. 해외에 나와서까지 은영을 여비서로 생각하고, 이런 저런 잔심부름을 시키는 것이었다.
은영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비서의 지위에서 하라는 대로 했다. 어쩔 수 없었다. 그리고 크게 거부반응이 없었다.
나이 많은, 그리고 자신이 모시는 사장이 일본에 와서 술을 많이 마시고, 속이 좋지 않아 약을 사달라고 하고, 무슨 필요가 있어 서류를 가져다 달라고 하고, 약을 먹기 위해 물을 가져다 달라고 하니, 그 정도야 있을 수 있겠다 싶어서 그냥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비서로서의 역할을 했다.
그런데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사장은 밖에서 사가지고 온 와인 은영과 함께 마시자고 앴다. 순간, 은영은 몹시 당황스러웠다. 물론 은영 자신도 그날 저녁 식사 때 사케를 많이 마셨다. 많이는 아니지만, 술에 취한 상태였다
그래서 은영은 자신의 방에 들어가 샤워를 하려고 하는데, 정 사장의 전화를 받은 것이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지? 호텔방에서 단 둘이서 와인을 마시고 있으면 이상하지 않을까?’ ‘큰일이네. 같이 간 다른 남자 직원들이 알면 오해를 할 텐데.’
은영은 그러나 싫다는 말을 꺼낼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냥 정 사장이 하자는 대로 함께 와인을 마셨다. 마침 그곳에는 와인 안주도 있었다.
“자. 편하게 앉아서 술이나 마시자. 아무 걱정하지 말고. 회사에서 근무하면서 애로사항이 있으면 말해 봐. 내가 다 해결해 줄 테니. 그리고 결혼은 언제 할 거지?”
“아직 결혼할 생각은 없어요. 회사 일이나 열심히 하려고요. 근무하는데 아무런 애로사항도 없고요. 사장님께서 잘 해주시니까 고맙습니다.”
“그래. 요새 세상에는 결혼 빨리 하는 게 능사가 아냐. 여자도 사회생활을 해서 성공하는 게 중요하지. 괜히 능력 없는 남자 만나 고생만 하고, 애나 키우면 여자로서는 자신의 인생이 없는 거야.”
“예. 맞아요. 저도 빨리 결혼할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에 누구한테서 들었는데, 박 과장 사귀는 애인이 유부남이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어. 유부남은 만나지 않는 게 좋아. 잘못하면 망신을 당하고, 골치 아픈 게 유부남이야. 원하면 내가 좋은 데 중매를 해줄 게.”
은영은 갑자기 망치로 뒤퉁수를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아니 어떻게 사장이 그런 사실을 알았을까? 회사에서 누가 그런 소문을 퍼뜨린 걸까?’
은영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한 달 전부터는 지금 만나고 있는 남자 친구와 헤어지려고 마음 먹고 있는 상태였다. 그 이유는 그 남자 친구가 어디에서 성병을 옮아가지고 와서 은영에게도 옮겼기 때문이었다. 은영은 병원에 가서 창피를 무릅쓰고 치료를 받았다. 그때 은영은 유부남인 남자 친구 순현에게 따졌다.
“아니, 나를 만나면서 또 다른 여자와 관계를 하고, 성병까지 옮겨요? 정말 나쁜 사람이네. 이제 더 이상 만나지 말아요.”
“무슨 소리야? 나는 다른 여자와 전혀 하지 않았어. 당신이 다른 곳에서 옮겨온 거지?”
그 남자는 오히려 은영에게 뒤집어씌우면서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나섰다. 그러면서 은영에게 바람 피는 여자라고 난리를 쳤다. 은영은 기가 막혔다. 그러나 누가 먼저 성병을 옮아가지고 상대에게 옮겼는지 의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은영에게는 조사권이나 수사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일 이후 은영은 순현과 관계를 할 때 콘돔을 사용했고, 가급적 성관계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그리고 갑자기 두 사람 사이의 관계가 냉각되었고, 애정은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잘못했다가는 에이즈에 걸려서 치명적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순현이 성병에 걸려 은영에게도 옮겼으면, 당연히 순현의 부인에게도 옮겼을 것이고, 그렇다면 그 부인이 난리를 쳤을텐 데, 전혀 그런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그 이유는 순현의 말대로 순현은 집에서는 절대로 관계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일까? 그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순현을부터 성병을 옮고 난 다음부터는 순현에 대한 정은 완전히 떨어져버렸다. 그렇지만, 갑자기 딱 끊을 수 없는 것은 여전의 순현의 경제적 도움이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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