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67)
은영은 친구 정자를 불러냈다. 정자는 이런 문제에 대해 경험이 많기 때문이었다. 주변에 있는 변호사들과 많은 상담을 해서 웬만한 문제는 변호사 이상으로 많은 지식이 있었다. 정자는 은영 친구의 이야기를 듣자 갑자기 본인이 흥분하면서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정말 요즘 세상은 말세야. 남자들이 등신이 다 되어서 그래. 일단 합의하지 말고 기다려. 배짱으로 나가면 돼. 먼저 그 여자가 찾아오면 맞고소를 해. 행패를 부리거나 폭행 또는 협박을 하면 형사고소를 해. 그리고 아파트를 밀고 들어오면 주거침입죄가 되는 거야. 그리고 위자료 청구가 들어오면 그 남자도 같이 피고가 되든가, 아니면 증인으로 나오게 되니까 그때 강하게 따지면 돼. 그리고 남자가 강압적으로 섹스를 했다고 주장하고, 남자가 부인과 이미 파탄이 난 상태라 이혼을 하려고 준비중에 있는 상황에서 엄마를 좋아했다고 하면 돼.”
은영 친구는 은영과 정자로부터 많은 어드바이스를 들었지만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았다.
간통죄는 없어졌지만, 법은 이렇다. 우리나라 법은 일단 혼인신고가 되어 부부로 되어 있으면 남편과 아내는 성적 성실의무가 있다. 이것을 위반하면 위반한 쪽은 상대방에게 정신적 고통에 대한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함께 바람을 핀 다른 사람도 상대의 배우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그런데 나이가 65세인 혼자 사는 여자가 68세된 유부남과 연애를 했다고 해서 그 마누라에게 왜 3천만 원이나 되는 큰 돈을 물어주어야 하는가 하는 의문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 나이든 남자의 아내는 이 문제로 얼마만한 정신적 고통을 받았을까? 그리고 그 고통을 금전으로 배상할 때 과연 어느 정도의 금액이 적정한 것일까? 매우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은영과 그 친구, 그리고 정자는 모두 여자의 입장에서도 그 남편 되는 남자의 행태가 정말 추하고 더러워보였다. 그래서 세 사람은 늦게까지 술을 마셨다. 하지만 은영은 뱃속에 있는 아이 때문에 술을 입에 대지도 않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개인이 다른 사람의 뒷조사를 하거나 어떤 정보나 자료를 얻기 위해서는 여전히 많이 이용하고 있는 상황이다. 보름이 지난 다음 흥신소에서는 은영에 대해 여러 가지를 알아왔다.
은영이 1년 전에 몇 개월 동안 술집에서 일하는 남자와 동거를 했다는 사실과 그 동안 낙태수술을 받은 경험이 있다는 사실, 혼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월세로 방을 얻어 아주 어렵게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왔다.
어떻게 알아왔는지는 말해주지 않았으나 매우 정확한 정보 같았다. 명훈 엄마는 이러한 자료를 가지고 아빠와 상의했다.
명훈아빠는 명훈엄마의 말을 듣고 깊이 생각했다. 여자 아이가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 잘못 핸들링 했다가는 일을 그르칠 수 있다. 그러니까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아빠는 이럴 때는 차라리 명훈이 다시 은영을 만나서 잘 지낼 것처럼 제스처를 보이고 설득시켜 낙태를 시키는 방법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는 의견을 냈다.
그런데 아직 명훈이 22살밖에 되지 않아 잘 해낼 지 걱정이었다. 명훈엄마는 반대였다. 그러다가 더 확실하게 굳어지면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명훈부모는 오직 명훈에 대한 생각만 하고 있었다. 은영은 아무 상관없는 남이기 때문이다.
은영은 성당에 가서 신부님께 고해성사를 했다. “신부님. 제가 결혼도 하기 전에 아이를 가졌어요. 저는 아이 아빠를 죽도록 사랑해요. 그런데 남자는 저를 사랑한다는 말을 안 해요. 아직 어려서요. 그 부모는 결사반대해요. 저보고 낙태하라고 해요. 신부님. 어쩌면 좋아요. 낙태는 살인이잖아요?”
신부님은 고민했다. 이런 경우 어떻게 말을 해야 할까? 이 어린 양은 지금 인생의 중대한 위기에 처해있다. ‘낙태를 하라고 해야 할까? 아니면 아이를 낳으라고 해야 할까?’
로마 교황청에서는 아직까지 낙태를 허용하지 않는다. 낙태는 그 자체로 죄악이라고 본다.
“자매님! 가급적 아이 아빠와 결혼하도록 해요. 아이를 낙태한다는 것은 죄악이예요. 생명을 죽이는 거예요. 아이까지 가졌는데, 왜 결혼을 못해요. 그 남자를 잘 설득시켜서 기다렸다가 결혼하는 것으로 해요.”
하기야 신부님이 달리 할 말씀도 있을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은 은영에게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렸다. ‘이런 질문을 신부님께 한 게 바보지. 신부님이 어떻게 알겠어. 내가 내 인생 결정해야 하는 거지.’
낙태에 대해서는 명훈 엄마 역시 약사로서 반대하는 강한 개인적인 소신을 가지고 있다. 명훈 엄마도 어렸을 때부터 모태신앙으로 성당에 다니고 있다.
특히 약학을 공부했고 약사로 일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은 한 번도 원치 않는 임신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낙태도 하지 않았다. 결혼할 때도 명훈 아빠와 첫경험을 했다. 그때까지 순결을 지킨 여자였다. 그래서 피임을 기술적으로 했고, 낙태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일을 당하자 갑자기 낙태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확신을 가졌고, 낙태죄는 폐지되어야 한다고 믿게 되었다.
자신의 아들 문제가 되자, 원치 않는 임신이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생각하게 되었고, 만일 낙태를 하지 않고 아이가 태어나면 그 아이뿐 아니라,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 때문에 겪을 고통과 불행을 생각하니 끔찍했다.
명훈 아빠야 바람을 피면서 다른 여자들로 하여금 낙태를 하도록 한 경험이 있었기 때문에 낙태를 하든 말든 자신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살았다.
그런데 자기 아들의 정자가 못된 여자의 난자와 만나 아이가 생겼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그냥 지저분하고 용납 못할 저급한 인간의 행동이라고 생각되었다.
인간은 이처럼 자신의 일과 남의 일을 엄청나게 다른 잣대로 판단하고 평가한다. 인식하고 생각한다. 하늘과 땅 차이다. 모든 인간의 불행은 바로 이런 이중잣대로부터 비롯된다.
은영은 명자와 이런 저런 상의를 했다. 명훈 엄마 태도를 봐서 절대로 결혼은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 명훈 역시 은영을 싫어하고, 애만 뗄 생각을 하고 있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좋을까? 두 사람 머리로서는 도저히 좋은 방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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