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66)
한편 은영은 박 기사로부터 1천만 원은 받았지만 낙태수술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낙태를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은영은 아무래도 명훈을 잊고 살 자신이 없었다. 돈이 문제가 아니었다.
지금까지 살면서 명훈처럼 좋아해 본 남자는 없었다. 명훈이 바람둥이고,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알지만, 은영에게는 지금 명훈의 아이가 뱃속에 있고, 아이먄 낳으면 명훈의 마음도 돌아올 것 같은 생각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명훈을 닮은 아이를 낳으면 더 이상 행복이 있을 수 없었다. 잘 생기고, 남자답고, 또 은영이 자신처럼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가 태어나서 은영과 평생 같이 간다면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은영은 마음을 굳혔다. 박 기사에게 전화를 했다.
“아무래도 아이를 낳아야 할 것 같아요. 미안해요. 돈은 돌려드릴 게요. 정말 미안해요. 제 입장을 이해해 주세요.”
“아니! 정말 나쁜 O이네. 그렇게 좋게 이야기했으면 알아들어야지. 너 이젠 끝이야. 네 과거 다 알리고, 너를 사기와 공갈로 잡아넣겠어. 기다려. 이 나쁜 인간아!”
박 기사는 흥분해서 말도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은영은 무서워서 전화를 끊었다. 세상이 너무 무서웠다. 연약한 여자로 살아가기에는 주변에 너무 많은 맹수와 독사가 우글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내가 무엇을 잘못한 것일까? 아무 잘못도 없는데, 내가 사랑하는 남자 아이를 낳겠다는데 왜 나를 이렇게 나쁘게 생각하는 걸까?’
눈물이 흘렀다. 그러면서 배를 어루만졌다. 뱃속에서는 아이가 꿈틀거리고 있었다.
‘힘을 내야 해. 아이 때문에. 내가 져서는 안 돼.’ 그리고 이를 악물었다.
박 기사는 흥분한 상태로 명훈 엄마를 만났다. “아니 이 나쁜 인간이 결국 사기를 쳤네요. 죄송합니다. 제가 사람을 잘못 봤어요. 이렇게 합의서까지 써놓고 돈만 떼먹고 수술을 안 하겠대요. 어떻게 하지요?”
“일단 돈은 돌려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사실은 그 여자가 모텔방에서 나체로 있는 사진을 찍은 것을 제가 입수했어요. 이걸 가지고 사모님이 한번 만나 보시면 어떨까요? 정말 난잡하고 아주 더러운 여자라는 증거를 가지고 만나서 혼을 내주면 떨어질 지 몰라요.”
“아니 이건 어디서 구했어요? 정말 지저분한 애네요. 우리 명훈이가 정말 재수 없어 이런 여자를 만난 거예요. 알았어요. 내가 그 여자를 만나볼 게요.”
명훈 엄마는 즉시 은영에게 전화를 했다. 하지만 은영은 더 이상 전화를 받지 않았다.
은영은 명훈 엄마로부터 계속해서 전화가 오자 속이 상하고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 전화를 받아야 할 말도 없고, 그렇다고 아이를 낙태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받은 돈 천만 원을 돌려줄 이유도 없다. 명훈네가 돈이 많은 사람들일뿐더러, 명훈의 아이를 낳아야 할 입장이기 때문에 천만 원 정도는 당연히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혼자서 어떻게 할까 골똘히 생각에 잠겨 있는데, 친한 친구인 경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속상한 일이 있어 같이 상의 좀 하자는 이야기였다. 은영은 경자가 정해준 장소로 나갔다. 초저녁인데 경자는 벌써 술에 취해 있었다.
“은영아!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니? 우리 엄마가 아빠 돌아가시고 5년 째 혼자 살고 계신데, 전부터 같은 동네에서 사는 어떤 아저씨가 집요하게 엄마에게 달라QNX어서 하는 수 없이 연애를 했대. 그런데 그 아저씨 부인이 이런 사실을 알고 엄마에게 위자료를 3천만 원 내놓으라고 한 대.”
“아니 그게 말이 돼? 둘이 같이 재미 보고 왜 엄마에게 돈을 내놓으라고 한 대? 나쁜 사람들 아냐?”
“그 아저씨는 그 아줌마와 이혼할 생각도 없대. 그런데도 아줌마는 우리 엄마에게 갖은 욕설을 다 하고, 화냥 O이라고 하면서 난리를 치고 있어.”
“그런 경우에는 그 남자가 다 알아서 해결해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지금 간통죄도 없어졌는데 왜 그렇게 겁을 먹고 그러니? 너희 엄마는? 아빠 돌아가시고 혼자 산다면서?”
“문제는 우리 엄마는 자기 명의로 아파트가 있어. 그 아저씨는 돈도 없고, 몸도 아프대. 그리고 그 아저씨 부인이 펄펄 뛰고 난리를 치고 있는 거야. 아저씨는 지금 엄마 전화도 받지 못하고,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처지라고 딱 끊어버리고 있어. 세상에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니?”
“근데 그 쪽에서도 이혼도 하지 않고 너희 엄마만 상대로 소송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서로 정을 통하지 않았다고 잡아떼면 되지 않니? 증거가 없을 거 아냐? 그리고 엄마는 뭐라고 해? 육체관계를 했다고 해?”
“응. 그 아저씨 핸드폰을 그 여자가 봤대. 둘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도 있고, 둘이 같이 찍은 사진도 있대. 그리고 그 여자가 난리를 쳐서 엄마도 다 인정하고, 잘못했다고 빌었대. 다만, 엄마는 위자료를 깍아달라고 하는 거야.”
“무엇을 잘못했다고 빌어? 아니! 혼자 사는 여자가 유부남이 따뜻하게 대해주면서 사랑한다고 하면 같이 사랑할 수도 있는 거지, 도대체 그 마누라는 어떤 피해를 보았다고 떠드는 거야? 지가 남편 잠자리 못해주면 미안하게 생각하고, 저 대신 다른 여자가 잠자리 서비스 해주었으면 고맙게 생각해야지 무슨 위자료를 청구하고 있는 거야?”
“그 남자는 연락도 안 받고, 모든 걸 마누라에게 맡기고 있다고 해. 그리고 곧 동네에 소문을 퍼뜨리겠다고 공갈 치고 있어. 그리고 빨리 합의하지 않으면 엄마 집에 와서 망신을 주고 창피를 주겠다는 거야.”
“엄마 집에 와서 난리를 치면 곧 바로 경찰서에 신고를 해! 그리고 위자료 3천만 원은 말도 되지 않는 거야. 절대로 합의하지 마. 그리고 그 여자도 소송하는 건 쉽지 않아 못할 거야.”
“그 여자 아들이 법대생이래. 그래서 인터넷 다 찾아봤는데, 유부남인줄 알고 연애했으면 최소한 위자료 3천만 원 이상 나온대. 그리고 엄마 재산을 먼저 차압하겠대.”
이런 경우 참으로 답답하다. 다 큰 자녀가 있는데, 엄마가 사별하고 혼자 살다가 남자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그리고 남자가 너무 잘 대해주고, 사랑한다고 하니까, 혼자 살면서 외로워서 넘어간 것이다.
그런데 엄마는 남편도 없으니까 특별히 조심을 하지 않았는데, 그 남자는 유부남으로서 마누라가 눈을 시퍼렇게 뜨고 감시하고 있으면 조심할 노릇이지, 핸드폰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들통이 났다.
그리고 들통이 났으면 그래도 남자가 알아서 해결할 것이지, 저는 비겁하게 쏙 빠지고, 마누라와 애인이 알아서 해결하라고 손을 빼고 있다. 보통은 남자의 돈으로 마누라에게 애인이 물어주어야 할 돈을 대신 갚아주면 그만이다.
그런데 이번 남자는 자신의 앞으로는 재산도 없고, 돈도 없다는 것이다. 게다가 건강도 좋지 않아 집에서 마누라나 자식들에게 천덕꾸러기로 지내고 있는 입장이다. 이혼도 할 생각도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은영의 친구 엄마 전화도 받지 않는지, 못받는지 연락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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