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면 할수록>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그토록 예쁘던 단풍잎도 거의 다 떨어졌다. 노란 은행잎도 땅바닥에서 비에 젖어 있다. 화려했던 가을이 조용히 침묵하기 시작한다. 가을이 겨울 앞에서 훨씬 더 성숙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하얀 국화꽃을 보았다. 너무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꽃잎에서 성스러움 마저 느껴졌다. 늦가을에 보는 국화꽃 앞에서 나는 사랑을 떠올렸다. 아주 깨끗한 사랑의 색깔을 그려보았다. 그 사랑 위에는 그 어떤 색도 덧칠할 수 없을 것이었다. 순수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사랑을 하게 되면 가슴이 아파진다. 아무 이유도 없다. 사랑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 사랑해야 하기 때문이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던질 때 사랑은 완성된다. 높이 쌓여진 사랑탑 위에서 항상 추락할 위험성을 감지해야 하는 것이 사랑하는 사람들의 운명이다. 그래서 사랑은 위험하고, 숨이 막힐 정도로 가슴을 짓누르는 존재이다.
‘사랑하면 할수록 그대 그리워 가슴 아파도/ 사랑하면 할수록 멀어짐이 두렵기만 해도/ 이것 만을 믿어요 끝이 아니란 걸’(이수영의 사랑하면 할수록 가사 중에서)
사랑이 깊어가는 길목에서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불안하고 답답해 한다. 사랑의 무게를 느끼기 때문이다. 사랑처럼 무거운 것은 없다. 사랑은 결코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사랑에 눌려 꼼짝 못하고 그 자리에 정지해 있는 시간에 사랑은 폭군처럼 군림하게 된다. 사랑 앞에서 아주 초라해진 실존이 우리들의 진정한 모습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믿음이다. 사랑할 수록 고통스럽지만 그래도 믿음이 있어 행복하다. 우리들의 사랑은 끝이 없을 것이라는 소박한 믿음 때문에 눌렸던 가슴은 다시 하늘을 보게 된다.
사랑은 하면 할수록 가슴이 답답해진다. 아무리 아름다운 사랑이라도 사랑을 하고 있는 동안은 사랑의 노예가 되기 때문이다.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그는 행복하다. 사랑의 아픔을 심하게 겪지 않을 수만 있다면 그는 불행하지 않다.
사랑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오직 진지한 자세로 오늘의 사랑을 붙잡는 것이다. 사랑을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할 각오를 가지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을 위해 자신을 버릴 때 진정한 사랑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지독한 모순 때문에 사람들은 괴로워하고 있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불쌍한 주식투자자들!> (0) | 2020.03.18 |
---|---|
사랑으로 얻는 것과 잃는 것 (0) | 2020.03.18 |
<현실과 천국> (0) | 2020.03.18 |
<삶의 자세> (0) | 2020.03.18 |
우리 사회의 삶의 방식 (0) | 2020.03.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