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까지> 노래방 이름 때문에 폭행을 당하다
구강패(48세, 가명)는 맹순의 아이 문제에서 억울한 혐의를 벗게 되자, 아주 홀가분해졌다. 뿐만 아니라, 맹순이 때문에 맹순 오빠와 같은 훌륭한 사람을 만나게 되어 너무 좋았다.
맹순 오빠 전맹초(40세, 가명) 역시 구강패의 인간됨됨이를 보고 친하게 지내기로 했다. 전맹초는 통닭집을 운영하고 있었다. 원래 <맹초통닭집>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장사가 잘 되고 손님들이 많아지자, <맹초>라는 이름이 이상하지 않느냐는 여론이 들끓었다.
통닭집 단골손님으로 부장판사도 있었고, 경찰서 수사과장도 있었다. 단골손님들은 <맹초통닭집>의 새로운 상호를 정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매우 학구적이었던 수사과장은, 통닭집 상호를 생각해 내느라고, 국어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넘겨가면서 좋은 이름, 단어를 찾아보았다.
6개월이 넘도록 수만가지의 이름과 단어를 써가면서 골머리를 앓았지만, 끝내 결정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어떤 단골손님이, <나훈아통닭집>이 최근에 급성장하고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고 하면서, 유명한 가수 이름을 넣어서 나중에 대규모 <통닭집> 체인점을 개설하면 어떠냐는 아주 바람직한 의견을 제시했다.
전맹초 사장은 너무 좋은 아이디어라고 하면서 단골 손님 10명을 초대해서, 노래방으로 갔다. 노래방은 구강패가 운영하는, <죽을 때까지 불러 노래방>이었다. 노래방 상호는 구강패의 일진회 후배들이 작명을 해준 것이었다.
구강패는 이 노래방 이름이 너무 좋은 것이라고 들떠있었지만, 구청에서는 상호가 너무 저속하다는 이유로 신고접수를 받아주지 않았다. 구강패가 구청 담당 직원에게 항의를 하러 갔다.
담당 직원은, “이런 상호를 등록해주면, 그 노래방에서 손님들이 죽을 때까지 노래를 부르다가 정말 죽으면, 사장님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예요. 그리고 허가를 내준 저도 같이 책임을 져야 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좀 순한 이름으로 바꾸세요. 예를 들면, <태어날 때까지 불러>노래방, 이런 이름이 긍정적이고 좋잖아요.”
구강패는 화가 났다. “아니, 그렇게 이름을 지으면, 여자 손님들이 우리 노래방에 와서 애기 날 때까지 계속 부르다가 쓰러져서 사산(死産)하면 책임질 거예요?”
구강패는 그 다음 날부터 구청 앞에 가서 1인 시위를 했다. ‘<죽을 때까지> 허가하라!’ 이런 포스터를 써서 들고, 혼자 서있었다. 머리띠에도 <죽을 때까지>라고 붉은 천에 검은 글씨로 써서 메고 있었다.
자세한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시위하는 구강패가 죽고 싶어서, 외국에서 허용되는, 안락사(安樂死)를 허가해 달라는 것으로 알고 불쌍해 죽겠다는 표정으로 구강패를 위로해주었다.
어떤 사람들은 구강패가 불치의 암에 걸려서 치료비가 없기 때문에 안락사를 하려는 것으로 알고, 구강패 발 밑에 깡통을 하나 사다 주고, 그곳에 10원짜리 동전을 몇 개 넣었다.
구청 청소부 아저씨는 자신도 예전에 비슷한 상황에 처한 적이 있었는데, 자살하지 않고 꿋꿋하게 살고 있다면서, 그 깡통에다 <급성췌장암 말기!!!>라고 노란 페이트로 써주었다. 그리고 <췌장>도 그려놓았다.
구강패는 하루 종일 서 있으면서, 일체 말을 하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때문에, 시위를 하면서도 마스크를 계속 쓰고 있어야했다. 시위의 효과를 극대화시키기 위해서 구강패는 오전 8시부터 오후 7시까지 무려 11시간을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않고 서 있었다.
화장실도 가지 않았다. 진정한 시위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아예 바지 속에 기저귀를 5개나 겹쳐서 찼다. 이를 악물고 서서 버텼다. 오후 6시가 되니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었다. 여러 차례 소변을 보았기 때문에, 기저귀의 무게가 3리터는 되는 것같았다. 그래도 끝까지 버텼다.
오후 6시부터는 공무원들의 퇴근시간이었기 때문에 보다 많은 공무원들이 볼 수 있는 황금의 시간이었다. 주변에서 퇴근하는 직장인들도 재미 있는 풍경이었기 때문에 모두 한번씩 구경을 하고 지나갔다.
오후 7시가 되자 퇴근시간이 지나고 통행인이 적어졌다. 10분 있다가 시위를 종료하려고 마음 먹었는데, 어떤 노숙자 한 사람이 지나가다가 구호를 읽어보고, 밑에 깡통을 보더니, 갑자기 주먹으로 구강패의 아구통을 돌렸다.
구강패는 기진맥진한 상태에서 의식도 혼미한데, 갑자기 예상치 못한 공격을 당하자 중심을 잡지 못하고 쓰러졌다. 그러자 그 노숙자는 연이어서 운동화 신은 발로 구강패의 급소를 짓밟았다.
다행이 구강패는 기저귀를 다섯 개나 차고 있었고, 그곳에 소변양이 가득 차 있었으므로 급소보호대 역할을 해서 성불구자가 되지는 않았다. 그대로 있다가는 곧 사망에 이를 지경이 되었다.
구강패는 그날 시위현장에서는 절대로 말을 한 마디로 하지 않기로 마음 먹었지만, 그래서는 맞아 죽을 지경이 되었다. “살려주세요!”라고 다섯 글자로 말을 했다.
노숙자는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등에 메고 있던 배낭에서 소주병을 꺼냈다. 그리고 구강패의 머리를 다섯 번 내리쳤다. 구강패는 기절하고 말았다. 노숙자는 지나가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119를 불러서 병원으로 데리고 갔다.
응급실에서 의식을 되찾은 구강패의 손을 잡으며, 노숙자는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나 때문에 죽지 않고 살게 된 것을 고맙게 생각해! 나는 3시간 전부터 길 건너에서 당신을 지켜보고 있었어. 그런데 당신은 <죽을 때까지>라고 써놓고, 하루 종일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았어. 그래서 나는 당신이 정말 오늘 죽고 말겠구나 하는 생각에 너무 안타까웠어. 그래서 당신을 살리기 위해서는 당신을 심하게 때려서 <살려주세요>라는 말을 하도록 마음 먹었어. 그래서 처음에는 가볍게 때렸는데, 당신 맷집이 워낙 좋아서 그런지 아무리 맞아도 말을 하지 않아. 그래서 더 때렸더니, 마침내, <살려주세요>라고 말을 하는 거야. 그래서 당신은 이렇게 살아났어. 그리고 남자는 오늘 죽겠다고 마음 먹었다가 살겠다고 아우성쳐서 살아났으면, 오늘은 절대로 죽으면 안 돼. 남아일언중천금(南兒一言重千金)이야. 죽더라도 오늘 밤 12시를 넘겨서 내일 죽어야 해! 그리고 내가 보기에는 아직 몸뚱아리가 쓸만한데, 왠만하면 죽지 말고, 죽을 마음 있으면, 혼자 사는 불쌍한 여자들에게 육보시(肉布施)나 하고 살아. 내가 바쁜데도 이렇게 당신을 살려내는 이유는, 내 위로 형님과 누님 다섯분이 모두 세상을 비관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한 불행한 가정 내력이 있기 때문이야. 그래서 나는 요새 개인적으로 먹고 살기 위해 동냥하러 다니느라고 바쁜 와중에도 당신 같이 아무 이유 없이 죽으려는 불쌍한 인간들을 구제하기 위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고 있어. 특히 한강 다리 위, 강가. 철로길 등을 많이 다니고 있어. 나로서는 참 이해가 가지 않아. 이렇게 좋은 세상, 열심히 살지, 왜 자꾸 자살하려고 하는지 끌끌...”
구강패는 그 노숙자의 말이 충분히 이해가 되었다. 그래서 고맙다고 하면서 지갑에서 10만원을 꺼내 주었다. 노숙자는 됐다고 하면서도 구강패가 주는 10만원을 받아 주머니속에 넣었다.
그러면서 노숙자는, “당신이 오늘 모금한 깡통속의 성금은 내가 가지고 가니까 그렇게 알아! 오늘 많이 모았어. 모두 세어보니까, 30만9천9백9십원이나 돼. 거의 다 동전이야. 너무 무거워. 이렇게 동전이 많이 들었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소주병을 꺼낼 필요 없이, 그냥 이 무거운 깡통으로 당신 대갈통을 깔 걸 그랬어. 하지만 만일 내가 당신 대가리를 소주병이 아닌, 이 깡통으로 찍었으면, 본의 아니게 당신을 천당으로 보낼 뻔 했어. 아무튼 당신 관상을 보니까 빨리 죽을 상은 아냐. 최소한 60살까지는 충분히 살 것 같아. 나는 갈테니까 치료 잘 하고 집으로 가. 그리고 또 내가 보고 싶으면, 역 광장 앞으로 와. 내 별명은, <생명치료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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