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풍이 강한데도 야외법정에서 <상호 한 시간 격투>를 명하는 판결을 선고하다
심판장은 구급차에 실려가다가 도중에 의식이 회복되었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옆에 다른 남자가 의식이 없는 상태로 누워있었다. 심판장은 구급대원에게 이 사람은 누구냐고 물었다.
“저희들은 모릅니다. 아까 식당에서 선생님과 같이 쓰러져있어서 있던 분입니다. 선생님은 모르는 분입니까?”
“나는 몰라요. 이렇게 지저분하게 생긴 사람을 내가 알 리가 있나요? 꼬라지를 보니까 알콜중독자에 소매치기처럼 생겼네.”
심판장은 그 틈에 옆에 쓰러져있는 남자가 심판장의 지갑을 몰래 꺼내갔나 확인해보았다. 지갑에는 현금 50만원이 있었는데, 10만원밖에 없었다. 심판장은 분명 옆에 있는 남자가 심판장이 의식이 없었을 때 몰래 소매치기해 간 것으로 생각했다.
그 남자의 소지품을 뒤져보았다. 그 남자는 팬티 속에 44만원의 현찰이 있었다. 심판장은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역시 내가 관상을 잘 봤네. 이 놈이 훔쳐간 게 확실해.’
심판장은 일단 그 남자의 팬티에서 꺼낸 44만원 중에서 40만원은 자신의 지갑속에 넣고, 4만원만 그 남자의 팬티 속에 다시 조심스럽게 넣었다. 돈에서는 기분 나쁜 냄새가 났다. 잠시 후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심판장이 가지고 있던 돈은 5만원짜리 8장에 10장의 만원짜리였다.
그런데 소매치기형 남자의 팬티 속에 들어있던 돈은 모두 만원짜리였다.
‘이 짧은 시간에 이 소매치기는 내 돈을 쓰리해서, 어떻게 5만원짜리를 만원짜리로 바꾸어놓았을까? 정말 대단하다. 아마 이 놈은 국제소매치기챔피온 선발대회에 출전하면 동매달 정도는 딸 수 있겠다.’
“그런데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 거예요?”
심판장은 소변이 마려워서 구급대원에게 물었다.
“예. 삼천리대학병원 응급실입니다. 거의 다 왔습니다. 5분 정도면 도착합니다. 왜 힘드세요?” “나는 삼천리대학병원을 아주 싫어합니다. 사천리종합병원으로 가주세요. 삼천리대학병원에서는 의료사고가 많이 나서 매일 플랭카드 걸어놓고 데모하는 환자가족들이 많아서 시끄러워서 안 돼요. 절대로 들어가면 큰일납니다.”
“선생님! 그건 안 됩니다. 저희는 규정상 가장 가까운 응급실로 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이 말을 듣자 심판장은 구급대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머리를 구급차 천정에 세게 박기 시작했다. 돌발적인 상황에 놀란 구급대원이 몸을 날려 심판장의 자해행위를 저지했을 때는 심판장은 이미 의식을 잃은 상태였다.
머리를 너무 세게 매우 빠른 속도록 박았기 때문이었다. 구급대원은 두 사람 중 한명은 제발로 걸어서 응급실로 갈 것으로 생각하고 좋아했는데, 끝판에 재수가 없어 두 명의 무거운 짐을 들어서 옮겨야 했다.
심판장과 다른 2명의 하급심판관들은 세 시간 동안 심판결정문을 작성하지 못했다. 너무 중요한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많은 국민들이 현재 대한민국의 사법부를 믿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 잘 하지 않으면 판사들처럼 도매금으로 불신을 받게 될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모든 국민들이 잘 했다고 칭찬을 할 만한 판결을 내려야했다. 뿐만 아니라 당사자들이 불복을 하면 망신을 당할 것이었다. 또는 판결이 너무 가혹하다고 두 사람 중 한 사람이 경찰에 신고라도 하면 골치 아플 것이었다.
그래도 판결선고기일을 이미 잡아놓았기 때문에 연기할 수는 없었다.
“존경하는 심판장님! 요새 뉴스를 보니까 코로나 때문에 일반 법원에서도 판사들이 재판을 연기하고 있다고 하는데, 우리도 판결 선고를 코로나 사태가 진정된 다음에 하면 어떨까요? 혹시 판결 선고 받으러 온 사람 중에 코로나에 감염되었는데 무증상인 경우가 있으면 큰일 아닐까요? 잘못하면 우리도 감염될 수도 있고, 14일간 자가격리되면 다른 일을 못하잖아요?”
“선배님. 그건 그렇지 않아요. 우리는 10명 미만 집회니까 금지대상이 아니예요. 그리고 야외에서 하니까 마스크만 쓰면 안전해요. 그리고 사회적 거리를 기준보다 훨씬 넓게 떨어져 있으면 아주 안전해요. 모두 100미터씩 떨어져서 판결을 하면 문제가 없어요. 그냥 예정대로 판결 선고하는 게 원칙입니다.”
심판장도 여자 하급심판관의 말에 동의했다. 참석자는 모두 마스크를 두겹으로 쓰고, 소독세정제를 머리부터 발까지 뿌리도록 하고, 개인 간의 거리는 50미터씩 유지하기로 했다. 마이크를 사용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큰 소리로 악을 쓰는 것처럼 말을 하고, 귀가 나쁜 사람들은 보청기를 준비하도록 했다.
그리고 재판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유튜브 1인방송은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재판을 방해하는 사람에 대해서는 즉석에서 현행범으로 체포하여 법정 경비를 맡고 있는 특별경호원이 미리 준비한 야구 빳따로 엉덩이를 10대씩 때리기로 했다.
여성난동자에 대해서는 성추행시비가 생겨나지 않도록 팔부위를 100번 꼬집도록 했다. 이때 형집행은 반드시 여성경호원이 하도록 했다. 그리고 팔을 꼬집대 피가 반드시 나야 한다고 정해놓았다.
드디어 판결 선고일이 되었다. 사람들은 시간을 지키기 위해 새벽 4시부터 와서 대기하고 있었다. 시간을 어기면 큰일 나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전 8시부터 태풍 '바비'(Bavi)의 강도가 <매우 강>으로 격상되었다. 태풍의 중심 부근 최대풍속이 초당 45㎧, 시속 162㎞까지 빨라졌다.
진행 속도가 상승하는 것은, 동쪽의 상층 고기압과 서쪽에서 다가오는 주변 기압계에 의한 것이었다. 태풍에 사람들이 날라가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을 했지만, 재판은 예정대로 열렸다. 법정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우산을 쓰는 것은 허용되지 않았다. 우비를 허용할 것인지 논의가 있었지만, 그것도 입어서는 안 된다는 유권해석이 내려졌다.
비가 오니까 굳이 사회적 거리를 50미터로 하지 않아도 되지 않겠느냐는 조심스러운 제안도 있었지만, 그것도 묵살되었다. 한번 정했으면 죽어도 지켜야 한다는 것이 심판장의 소신이었다. 재판부에서 준비해온 판결문은 곧 바로 태풍에 날아가버렸다.
오전 10시 정각이 되자 법정 개정을 서기가 알렸다. 자리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 종전처럼 일동은 애국가를 4절까지 불렀다. 그리고 이어서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이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물에 젖어서 물에 빠진 생쥐처럼 되었다. 어떤 사람은 태풍 때문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기도 했다. 심판장은 큰 소리로 악을 쓰면서 판결을 선고했다.
“우리 재판부는 이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밝히기 위해 최선을 다 했다. 원래 제대로 재판을 하기 위해서는 관련자 모두를 거짓말탐지기로 심리테스트를 해야 하고, 최면술사를 불러서 최면요법으로 무의식까지 파헤쳤어야 하는데, 다행이 조사 대상자 두 사람과 한명의 증인 모두 관상이 거짓말을 아주 잘하는 사람들이 아니고, <거짓말능력> 중하위등급인 것으로 판명되었기 때문에 그대로 판결을 하는 바이다.”
멀리 떨어져 있는 음복수와 나질속은 보청기를 끼고 왔는데도 워낙 강한 태풍 때문에 심판장이 무어라고 악을 쓰는지 아무 것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다른 심판관들도 심판장과 50미터씩 떨어져 있었기 때문에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그래도 서로 합의한 판결이기 때문에 심판장이 틀리게 말하지는 않을 것으로 믿고 있었다.
“우리 재판부는 음복수와 나질속이 제한시간 한 시간 동안 비무장으로 상호 간에 힘겨루기를 할 것을 명한다. 다만, 대외적으로는 무술 비공식 대회라고 부르기로 한다. 공격방법에는 아무런 제한이 없다. 도중에 권투처럼 3분 하고 1분 쉬는 헐렁한 경기는 하지 않는다. 한 시간 동안 쉬는 시간은 일체 없다. 한 사람이 항복을 하면 경기는 종료된다. 경기로 인해 다치거나 죽어도 그것은 어디까지나 본인 책임이다. 그러나 나질속을 거세하자는 주장은 배척되었기 때문에 경기에서 나질속의 낭심을 가격하여 고자로 만드는 행위는 절대적으로 금지된다. 나질속 본인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낭심을 일부러 자해하여 고자가 되는 행위도 엄격하게 금지된다. 이번 경기에서 패배하는 사람은 상대방에게 천만원의 돈을 배상해야 한다.”
심판장은 엄숙하게 판결을 선고하고, 의사봉으로 세 번 두드리려고 했으나, 의사봉과 받침대는 태풍에 날아가버렸다. 하는 수 없이 심판장은 주먹으로 자신의 머리통을 세 번 세게 두들겼다. 의사봉으로 치는 것보다 더 큰 소리가 야외법정에 울려퍼졌다.
<어떤 사람들은 경우가 없다. 무대포로 세상을 살아간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절대로 아무런 대책이 없다. 깡패나 건달, 양아치가 그런 사람들이다. 환경 때문에 비뚤어져서 제멋대로 살면서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고 피해를 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사람은 절대로 고쳐지지 않는다, 나이 스무살 넘은 다음 성격이나 행동을 고친다는 것은 낙타가 티코를 타고 가는 것보다 더 어렵다. 때문에 이런 사람들은 피하는 게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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