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악산 산행기
바위를 타고 가파른 등산을 한다. 스릴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위험하고 험난하다. 경기도 포천군 화현면에 있는 운악산을 찾았다. 운악산은 해발 935.5미터의 산으로서, 포천군 화현면 화현리와 경기도 가평군 하면 하판리에 걸쳐 있다.
관악, 치악, 화악, 송악산과 함께 중부지방의 5대 악산 중의 하나다. 기암과 봉이 많아 중부지방의 소금강으로 불리우기도 한다. 광주산맥에 속하며, 한북정맥의 일부를 이루고 있다.
내가 태어나 어렸을 때 자랐던 고향이 경기도 포천군 신북면이고, 화현면에는 부모님들의 산소가 있어, 이곳은 자주 지나다니는 곳이기는 하지만, 운악산 등산을 이 코스로 제대로 하지는 못했다. 전에 몇 차례 현등사까지 올라가 보기는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운악산 휴게소에서 운악사를 거쳐서 궁예궁터 쪽으로 이르는 코스로 산행을 시작했다. 배낭도 없이, 그냥 운동화를 신고 올라갔다.
운악산에 있는 절, 운악사까지 올라가는 길도 매우 가파르게 시작한다. 그 다음 궁예궁터쪽으로 올라갔다. 곳곳에 밧줄을 잡고 올라가야 하는 코스가 많았다. 밧줄을 타고 10미터 정도씩 올라가는 곳도 있었다. 거의 수직으로 되어 있는 구간도 있었는데, 상당히 힘이 들고 위험을 많이 느꼈다.
밧줄을 타고 올라갔던 길을 다시 내려왔다. 물도 준비해 가지 않아 목이 무척 말랐다. 그렇다고 다른 등산객들에 물을 구걸할 수도 없었다. 편하게 올라온 주제에 공짜로 물을 얻어먹을 용기도 없었다.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직접 가지고 있지 않으면, 불편하고 그것 때문에 고생을 한다.
물은 그래서 귀하고 소중했다. 겨우 운악사 절에 도착해 시원한 물을 마음껏 마실 수 있었다. 험한 산이라 내려올 때 역시 힘이 들었다. 밑에 도착하니 땀이 많이 났고, 지쳐서 힘이 들었다.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었다. 나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원래 나무의 색은 초록색이 아니었다. 초록색은 여름에 나뭇잎들이 만들어 놓은 옷과 같은 색깔이었다. 나무는 잎이 없는 상태에서는 갈색과 흙색을 띄고 있었다. 뿌리도 비슷했다. 그게 원래 나무의 색깔이었다.
잎들은 변한다. 초록색에서 단풍이 들면 노랗거나 갈색으로 변하게 된다. 그건 잎의 색깔이지 나무의 색깔이 아니다. 나무의 색깔을 보면서 나는 사람의 색깔을 생각해 보았다. 사람의 본래 색깔은 어떨까? 겉에 입고 있는 옷의 색깔은 그 사람의 색깔이라고는 할 수 없다.
피부색도 진정한 색깔은 아니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원래의 색깔은 모두가 다르다. 하얀 사람, 까만 사람, 노란 사람, 속이 시커먼 사람, 그때 그때 보호색으로 바꾸는 사람 등등. 다른 사람들이 색깔은 잘 모르지만, 내 색깔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수 있지 않을까? 나는 오랜 시간 나의 색깔을 생각해 보았지만, 선뜻 떠오르지 않았다.
굵은 밧줄은 산에 올라가는데 아주 도움이 되었다. 그 밧줄이 없으면 안전한 등산을 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밧줄은 생명의 밧줄이었고, 사랑의 밧줄이었다. 밧줄을 잡으면 안정감을 느끼게 되고 손쉽게 올라갈 수 있다.
밧줄을 놓치면 그대로 추락해서 다치거나 목숨을 잃게 된다. 밧줄은 도시에서 볼 때와는 그 의미가 전혀 달랐다. 길에서 보는 밧줄은 아무런 생명이 없다. 그냥 단순한 물건에 불과하다.
그러나 험한 산에서 도움을 주기 위해 바위나 나무에 걸려 있는 밧줄은, 그 자체가 생명이고, 사랑을 담고 있었다. 아주 특수한 의미를 지니고 있었고, 고귀하게 보였다. 밧줄을 무시해서는 그곳에서 살아 남을 수 없다. 밧줄은 모든 존재에 우선해서 그 존재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나는 밧줄을 붙잡고 조심조심 올라가면서, 또 다른 밧줄을 떠올렸다. 예전에 서대문구치소에서 보았던 무시무시한 밧줄이 기억이 났다. 그 밧줄은 사형집행을 하기 위한 밧줄이었다.
천정에 매달려 있다가, 사형을 당할 사람이 있으면 그 밧줄은 사형수의 목을 감고 밑으로 떨어뜨린다. 그러면 그 사람은 얼마 안 있어 목이 조이고, 목뼈가 부러져 숨이 끊어지고 생명을 잃게 된다.
그 밧줄은 계속해서 사형만 집행하고 있었다. 내가 본 밧줄에는 사람의 기름이 묻어 반질반질하게 때가 끼어 있었다. 그 밧줄은 같은 밧줄이면서, 사람의 생명을 끊어가고 있었고, 공포의 대상이었다. 아무런 사랑도 없었고, 지독한 증오만 배어 있었다.
사람에게는 사랑의 밧줄이 필요하다. 험한 세상을 살아갈 때 잡고 싶은, 잡아야 할 밧줄이 있어야 한다. 그 밧줄의 위력은 대단하다. 밧줄을 믿고, 밧줄을 잡고 있다는 심리적 안정감 때문에 위험을 피할 수 있고, 험한 강물을 건널 수 있다.
사랑의 밧줄을 찾아라. 평생 붙잡고 따라갈 밧줄을 찾아, 손에 잡아라. 허리에 묶어라. 그러면, 사랑은 몸속에 들어와 행복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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