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향 러브스토리

내가 아주 어릴 때부터 춘향과 이도령 이야기는 수 없이 들었다. 일년에 한번 정도는 영화를 보던, 연극을 보던, TV에서 보았다. 그만큼 우리에게 춘향전은 널리 알려진 조선시대의 고전적인 러브스토리다.

너무 많이 보고 들어서 그 기승전결의 전개과정을 잘 알고 있지만, 마지막 '암행어사 출또야'라는 통쾌한 장면을 기다리고, 최고의 미모와 한국 여성의 절개를 표현하고 있는 여주인공 춘향이 보여주는 아름다운 모습을 보려고 했다.

그건 한국사회에 만들어낸 지상최고의 사랑이야기였다. 엄격한 봉건사회에서 모든 불리한 사회적인 조건을 극복한 자기희생적인 사랑의 극치였다.

춘향전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사랑을 제시하고 있다. 여자는 한양으로 떠나가 아무 연락도 없고, 아무런 기약도 없는 남자의 사랑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가고 있다.

마음만 돌려먹으면 남들처럼 편하게 가까운 행복을 손에 넣고 살아갈 수 있음에도 그것을 거부한다. 오직 자신의 순정을 바쳤던, 어린 시절의 사랑에 온몸을 바친다. 그 육체는 순교자의 제물처럼 온갖 박해를 감수할 각오가 되어 있다.

여자는 손에 잡히지 않는 사랑을 그리면서, 가까이 다가오는 현실적인 유혹을 매우 강하게 거부한다. 사회적으로 부와 권세를 손아귀에 쥐고 있는 새로운 남자의 유혹과 강요를 죽음으로 저항한다.

그 사랑의 숭고성에 우리는 감동하게 된다. 우리가 쉽게 할 수 없는 사랑의 투사로서 강한 힘에 저항하는 모습을 보면서 대리만족하는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자는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사랑의 약속을 저버리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서 자기 할 일을 하고, 사랑을 찾아 떠난다. 자신의 사랑이 어떻게 변했는지 궁금했을 것이다. 오랜 세월의 공백은 사람을 변하게 한다.

더군다나 아무런 기약이 없는 상태에서는 그렇다. 설령 약속을 했다고 해서, 중간 중간 그 약속의 유효성을 서로가 확인하지 않는 상황에서 그 약속을 계속 믿고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남자의 그 말을 믿고, 더 이상 확인하지 들지 않는다. 그냥 믿는다. 혼자 믿다가 죽어도 거기에서 행복하다고 느끼면 된다. 남자도 마찬가지다. 여자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산다.

두 사람이 오랜 세월이 지난 후 서로가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확인했을 때 그 사랑은 더욱 부피를 크게 하고 다이아몬드처럼 단단한 수정체로서 찬란한 빛을 발하게 된다. 암행어사 출두 못지 않게 끝부분에서 변하지 않는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관객은 가슴 찡한 감동을 맛보게 된다.

내 사랑도 그러기를 바라면서 두 남녀의 뜨거운 포옹으로 자신의 사랑을 확인하고자 한다. 끝으로 남녀 사이의 순수한 사랑에 끼어들어 사랑을 빼앗으려던 폭군은 정의의 철퇴를 맞는다.

선이 악을 이기는 장면은 매우 통속적인 시나리오다. 만일 춘향이 매에 맞아 죽은 후에 이도령이 나타났다면 사람들은 얼마나 슬퍼하게 될까?

주인공 이몽룡은 남원부사의 아들이고, 여주인공 춘향은 퇴기 월매의 외동딸이다. 전라도 남원의 기생 성춘향은 광한루에 그네를 타러 나갔다가 남원부사의 아들 이도령을 만나 인연을 맺고 평생을 같이 하기로 약속한다. 두 사람은 서로 사랑에 빠져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해 아름다운 사랑을 꽃피우게 된다.

그런데 이도령이 아버지를 따라 서울로 가게 되자, 두 사람은 가슴 아픈 이별을 하게 된다. 남원부사로 새로 부임한 변학도는 춘향의 미모에 반해 수청을 들라고 강요한다.

춘향은 구관댁 도련님과 백년가약 받들기로 하였으니 이부종사는 할 수 없다고 버틴다. 춘향은 죽음을 무릅쓰고 신관사또의 요구를 거절하다가 옥에 갇혀 죽을 위험에 처하게 된다.

한편 한양으로 아버지를 따라 간 이몽룡은 부지런히 공부해서 장원급제하여 벼슬길에 오르게 되었고, 암행어사로 임명받아 전라도로 내려온다. 남원 근방에 이르러 여로 모로 탐문하던 중에 변학도의 폭정에 원성이 높고 춘향의 높은 절개에 칭찬이 자자함을 알게 된다.

다음 날 광한루에서 벌어진 변학도의 생일 잔치가 무르익을 무렵에 암행어사 출두가 붙여지고 몽룡은 변학도를 응징한다. 몽룡과 춘향은 재회하고 두 사람은 한양으로 올라가 백년해로한다.

춘향전의 핵심적인 내용은 춘향과 몽룡의 사회계급을 초월한 사랑에 있다. 물론 소설이기에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그렇게 사랑에 빠졌던 소년이 암행어사가 되어 내려와 사랑했던 연인을 죽음에서 구출함으로써 민중들은 환호하게 된다.

권력으로 사랑을 빼앗으려는 변학도라는 특권계층이 하루 아침에 부사직에서 쫓겨나고 몰락함으로써 불의에 대한 정의감을 실천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죽음 앞에서도 초연하게 사랑을 지켜나가고 있는 춘향이의 모습에서 성스러운 느낌마저 받게 된다. 춘향의 수절은 조선 영조 정조 전후시대의 봉건윤리와도 부합되었다.

춘향전을 다시 보면서, 불현듯 소설같은 삶에 빠져드는 건 순수한 사랑이 너무나 귀한 현재의 세태때문에 그런 것이 아닐까?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가을밤에는 조용한 시간에  (0) 2020.10.31
사랑의 외길(Single Path of Love)  (0) 2020.10.30
Your heart will be true  (0) 2020.10.30
얼마나 더 그리워해야  (0) 2020.10.30
늘 내 곁을 커피가 따라다닌다  (0) 2020.10.3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