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이라는 창에 비친 자화상

1. 글의 첫머리에
돌이켜 고시합격의 노정을 생각해 보면 무수히 많은 선배들이 걸어갔던 그 길을 무엇인가 조금씩 사고하고 배워가며 방황하다 보니 우연히 합격의 고개에 이르게 된 것 같다. 때묻은 고시복을 툭툭 털어 버리면서 한 해를 정리하려 하니 그 동안 시험을 전후한 많은 사연들과 함께 아쉬움과 미련히 불현듯 몸 전체를 휘감아 돈다.

지극히 평범한 과정이었고 자신이 처해 있었던 환경이 예외가 아니었던 것인지 모르겠으나 역시 고시라는 거울에 비추어질 때에는 인내로써 극복된 고통이 걸어 온 발자취마다 점점이 새겨져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 같다. 여기에 한 번쯤 반추해 보고 싶었던 지난 몇년 동안의 생활을 사고와 행동, 그리고 환경과의 관련 속에서 간단히 적어 보기로 한다.

2. 낭만과 방황
마른 체격과 허약한 체질에 대학입시 준비 때문에 수척해진 상태에서 서울법대에 입학했다. 동숭동 교정에서 시작된 대학생활은 꿈과 낭만이 어려운 현실 속에서 꿈틀거리며 용솟음치는 모습으로 나타나고 있었다.

대부분의 신입생이 겪는 경험이겠지만 술 담배 미팅 등으로 인한 생활의 방만은 나로 하여금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했고, 하고 싶은 많은 유익한 일들이 현실적인 여건의 제약 때문에 불가능한 상황은 자신에 대한 회의를 파도처럼 몰고 왔다.

민법총칙과 형법총론을 소지하고 마치 대단한 법학이나 연구하는 것으로 착각했고, 미구에 위대한 법학자가 될 것은 필지의 사실로 오인하고 있었다. 법서를 한 두권 들고 거리를 육신이, 삭막한 황야를 정신이 방황하며 낭만을 찾아 급급하고 있었던 이 무렵 고시란 실로 막연한 추상적인 개념이었을 뿐, 어떤 실감 있는 형상은 아니었다. 대학 초기부터 불가피하게 강요되었던 과외지도는 많은 시간과 정력을 빼앗아 갔고 무거운 심리적 압박감을 가하고 있었다.

결국 책을 차분히 보기에 부적합한 주위상황을 못마땅하게 생각하며 막연히 무언인가 되겠지 하는 심리 속에서 보낸 대학 1학년 생활은 낭만적인 방황이었던 것으로 규정지어진다.

3. 회의와 성장
2학년이 되어도 생활은 여전하였다. 학교강의와 아르바이트, 그리고 때때로 있는 미팅과 술좌석에서 시간을 보내다 보면 남는 시간은 피로를 풀기 위한 수면에도 부족한 형편이었다. 공부와 시험의 관점에서 보면 그야말로 한심한 생활이었다.

그러나 이 시간에 나는 조용한 전진을 하고 있었다. 허약한 몸을 단련시키기 위해 태권도반과 유도반에 가입하였고, 매일 아령과 Bench Press를 하였다. 몸이 눈에 띌만큼 나아졌고 이 때의 운동 덕분에 그 후 시험공부할 때에도 건강에는 과히 신경쓰지 않아도 좋았던 것이다.

2학년 가을 학원은 소요로 수업이 중단되었고, 10월 한달은 완전한 공백 속에서 많은 사고를 하면 보냈으며 그 가운데 겨울을 맞았다. 열정적으로 학구적이었던 OO와 16회 1차를 목표로 동숭동 거소에서 포진을 짰다. 둘이서 밤늦도록 책을 보고 상호문답의 형식으로 약 2개월간의 계획을 밀고 나갔다.

그러나 갑자기 사정변화가 생겨 신림동으로 이사를 가게 되자, 1차 준비는 전면 중단되지 않을 수 없었다. 고 3학생을 지도하면서 매일 집 뒤의 동산에 올라 움직이지 않는 자연을 관조하고, 관악 캠퍼스 신축현장을 거닐면서 모든 문제에 대해서 회의하고, 그러면서 현실의 작은 문제들은 덮어 두는 수밖에 다른 도리가 없었다.

복잡한 가정내의 문제로 며칠씩 고심하며 거의 절정에 다달았던 집안의 경제문제로 마음 아파하며, 목전의 시험은 단지 나를 괴롭히는 괴물에 불과하였을 뿐 이를 요리할 하등의 능력도 없었다.

부모님들의 절실한 기대에 할 수 없이 시험장에 가기로 하였지만 전날 포도주 한 병을 놓고 구성진 섹스폰 연주의 적과 흑의 블루스, Gloomy Sunday를 들으며 담배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소복히 쌓인 눈을 발이 젖을새라 쓸어주는 식구들의 눈물겨운 정성 속에 치른 시럼이었나 역시 예상대로 낙방하고 말았다.
4. 침묵과 자각
3학년이 되자 좀더 착실한 생활을 하여야겠다고 마음 먹고 학교 도서관의 고정좌석을 맡아 지키려고 애썼다. 방학을 맞아 7월과 8월 두 달은 시험공부와는 관계없는 논문준비에 전념하였다. '이중매매의 체계적 고찰'이라는 제하의 약 120매 정도의 논물을 완성 서울법대의 'FIDES'에 게재 발표하였다.

이어 가을이 다가오고 캠퍼스의 은행잎이 노랗게 물들 무렵 학원은 소요에 휩싸였고 또 다시 조기방학에 들어가게 되었다. 17회 사시를 향하여 전력투구하기로 하고 공부방을 정리한 것은 12월초의 일이었다.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책만 보기로 하고 일체의 외출을 삼가하였다. 가끔 아령과 역기로 몸을 풀면서 방안에서만 칩거하였다.

그러나 공부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간단없이 엄습해 오는 고독감, 그리고 시험에 대한 지속적인 회의와 불안감, 현실적인 경제적 곤란 때문에 겪는 정신적 고통, 이러한 모든 것들이 책을 보고 있는 나를 괴롭히는 것이었다.

점차로 몸은 약해지고 머리는 피곤해졌다. 동네 제재소 앞 포장마차 속에서 물끄러미 바라보던 카바이트 불과 소주병들은 일생 최고로 마음을 아프게 했고, 자리를 박차고 배회하던 삼양동 골목길의 외등에서 발하던 희미한 불빛은 젊은 가슴에서 용출하는 대상없는 분노와 울분을 흡수할 수가 없었다.

지루하기만 했던 준비기간도 다 지나가고 17회 시험이 다가왔다. 그런데 나는 여기에서 커다란 실책을 범하고 만 것이었다. 즉 16회 때 거의 공부를 하지 않고 치른 1차시험에서 비록 불합격하기는 하였으나 과히 나쁘지 않은 성적이어서 방심한 나머지 약 13 -4일 정도 밖에 1차에 할당하지 않는 것이었다.

고시가 어떠한 것인지 잘 모르던 그 당시에는 황급한 심경에서 2차에 급급했던 것으로 주관식문제집 8권만을 가지고 거의 전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1차 발표가 있던 날 중앙청에서 한 문제 차이로 불합격된 사실을 알고 눈이 내리는 광화문 거리를 걸으면서 모든 것이 장난 같이 허무함을 느꼈고, 어쩐지 불운하여 아무리 해도 시험은 영영 안 될 것 같은 에감이 들었다. 아뭏튼 이때의 1차 불합격은 나 자신에 있어서 뿐만 아니라 주위 모든 사람들에게 커다란 일대사건이었다.

5. 고난과 성숙
졸업반이 되자 마음은 조급해졌고 군대문제 대학원문제가 화급한 과제로 던져졌다. 삼양동에서 신림동까지 통학을 하느라 애를 먹었고, 또 다시 어수선했던 집안 분위기는 도대체 책을 붙잡고 있게 하질 않았다. 공부할 장소도 적당하지 않고 해서 빈둥 빈둥하고 있노라니 답답하기 그지 없었고 무기력감은 더 말할 나위 없이 느껴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포천에 가서 신체검사를 받았다. 그 때 느끼던 착잡한 심정은 지금도 또렷하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좋을까,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문제가 덩어리진 채로 던져진 것이었다.

그러던 중 8춸초 집 근처에 있는 혜명고시원(구 아이템플고시원 - 미아리 삼거리 소재)에 등록을 했다. 에어콘까지 설치되어 있는 깨끗한 신축건물이라 공부하기에 최적한 곳이었다. 처음으로 공부다운 공부를 한 것이었다.

찌는 듯한 무더위도 잊은 채 자료를 정리하고 실전에 대비한 훈련도 하였다. 그러면서 또 다시 총 174매에 달하는 방대한 논문 '불법행위법체계의 신형상과 소송상 입증책임문제'에 착수 약 2개월에 걸쳐 이를 완성 'FIDES'에 게재 발표하기도 했다.

12월초 한양대학교 대학원 입시가 있었다. 많은 대학동기들이 상호경쟁한 기이한 시험이었으며, 불합격할 것으로 생각했던 나는 예상외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하였다. 눈이 하얗게 온 천지를 덫은 날 마지막 졸업시험을 치루고 관악캠퍼스를 내려 오면서 나의 진로, 인생을 깊이 깊이 생각해 보았으나 우선은 시험을 끝내야겠다는 사념이 몸 전체를 감싸도는 것이었다.

한양대학원에 들어간 대학 동기 몇 명이 그룹을 형성 합천 해인사 길상암에 도착한 것은 12월 20일 경이었다. 처음 겪어보는 산사생활은 모든 것이 어렵기만 했고, 휘몰아쳐 오는 산곡의 강풍, 캄캄한 새벽에 하는 식사, 얼음장을 깨서 하는 세면 등 많은 고시생들이 으례히 하는 일이건만, 이러한 생활에 훈련이 되어 있지 않던 나에게는 너무나 어려운 역경이었다.

18회 1차시험의 부담은 제대로 2차 시험을 보려는 나에게 몹시 신경을 쓰게했으나 그런대로 같이 공부하던 동료들 때문에 어느 정도 준비를 할 수 있었다.

단체생활의 특수성을 어느 정도 터득하고 산사생활에 익숙해지려고 할 때에 우리는 또 다시 장소를 옮겨야 하는 불운을 겪었다. 주지스님과의 마찰로 인해 우리는 대구에서 1차시험을 치른 뒤 서울 근교의 퇴계원에 있는 대학교 기숙사에 들어가야먄 했다.

낯선 분위기 속에서 이를 악물고 책과 싸웠다. 열심히 책을 보는 동안 어느 정도 시험에 대한 자신을 가질 수 있었다. 퇴계원의 들판에 서서 밤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우주 속에 나 혼자만이 존재하는 듯한 묘한 착각을 일으켰고 그 때 느꼈던 고독감은 정말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처절한 것이었다.

밤에 기름난로에 끓여먹던 라면은 그렇게 맛이 있을 수 없었고, 하루 2개씩 먹던 날계란은 매우 고소하였다. 창백한 얼굴을 하고 있으면서도 마음만은 윤기가 흐르고 있었다. 졸업과 동시에 시험을 끝내야겠다는 집념은 잠이 들지도 못하게 하였고 추운 줄도 모르게 하였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1차 수석을 기대하고 있었던 내가 1차 합격자의 명단에서 빠져 있었다. 그 비통한 심정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아무 것도 생각이 나지 않았다. 집안 식구들의 실망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이때 식구들이 격려는 정말 눈물겨운 것이었다. 한번도 2차시험을 치뤄 보지도 못한 채 졸업장을 받아 들고 나는 실업자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6. 정리와 종결
졸업 후에는 오히려 공부가 안되었다. 시간은 많고 뚜렷한 자극이 없어 빈둥빈둥하다가 7월초 다시 해인사 원당암으로 내려갔다. 해인사의 여름은 정말 시원하였다. 시원한 계곡으로 목욕하러 다니고 가야산을 올라가 보고 매일 저녁 예불을 드렸다.

수양하는 자세로 몸과 마음을 끼끗이 하려고 애쓰면서 책도 열심히 보았다. 부모님들이 보내주신 미숫가루를 마시면서 그 정성에 보은할 것을 굳게 맹세하였다. 조용한 산중에서 나의 갈 길을 확고히 하고 어떠한 난관이라도 절망하지 않고 굳게 살아갈 결의를 공고히 하였다. 비록 시험에 떨어진다 해도 다른 길이 얼마든지 있다는 자위를 하면서 다만 성실히 노력할 것을 자신에게 거듭 약속하였다.

침착하게 가라앉은 마음에서 산사생활을 마치고 한대교내의 기숙사로 들어갔다. 기숙사에서의 생활은 대체로 성실했던 편이었다. 많은 논문을 참조해 가며서 동료들과 토의하였고, 차례차례 전 과목을 정리해 나갔다. 이때에 대학원에서 특별히 마련한 특강은 매우 유익한 것이었다. 양적으로 질적으로 풍부하고 견실하게 실력을 다져 나갔다.

12월 중순 다시 혜명도서실로 돌아와 집과 도서실을 잇는 직선코스를 시게추처럼 왕래하는 단조로운 생활을 시작하였다. 도서실의 많은 사람들의 격려는 큰 힘이 되었고, 집안 식구들의 최대한의 정성에 별 불편을 느끼지 않고서도 책을 볼 수 있었다.

수험잡지 약 120여권을 모두 뜯어 정리하는 여유를 보이면서 하루 하루 충실하려고 애썼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공부였다고 생각할 정도의 열성을 보였던 시기였다.시험은 국사를 제외하고 대체로 무난히 치루었으나, 2차부담도 있었고 해서 발표일까지는매우 불안한 상태였다. 발표 당일의 격했던 감정은 극적이었다.

7. 하고 싶은 말들
이렇게 해서 하나의 커다란 고비를 넘기게 된 것이다. 돌이켜 보건대 실로 고독하고 힘든 자신과의 투쟁이었다. 아무런 보장도 없는 시험을 의식하며 같은 책을 외울 정도로 반복해서 읽어야 했음은 서글픈 일이었고 쉽게 권태를 느끼는 일이었다.

무한한 인내를 요구하는 이 시험을 마치고 약간의 여유를 갖게 된 지금 다시 한번 그때의 상태로 돌아가서 몇가지 생각나는 것을 적어보기로 한다.

(1) 흔히들 고시에 필요한 요소로서 건강, 두뇌, 경제를 든다. 하지만 내가 볼때에는 대체로 이러한 요소는 대동소이한 것 같다. 문제는 의지의 강도에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2) 1차를 경시하지 말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 같다. 나 같은 경우에는 영어점수가 매번 최고 점수에 가깝게 나와 그 때문에 행정고시 1차에 3번이나 합격할 수 있었음에도 다른 과목을 너무나 소홀히 하여 사시 1차에서 3번이나 불합격하였다. 특히 어학이 부족한 노장들은 만전의 준비를 하여야 할 것이며, 적어도 1개월의 기간은 투입하여야 할 것이 아닌가 한다.

(3) 기본서는 한 권을 철저히 이해할 것이며, 논문은 되도록 광범위하게 보는 것이 좋은 것 같다. 문제집보다는(물론 예외적을 매우 잘된 문제집은 그 자체로 교과서보다 효과가 크다고 본다) 교과서를 여러 번 보고 문제집은 보충적으로 참조하며 논문은 이를 교과서와 문제집 사이에 삽입하거나 타이틀만 적어 넣은 방법을 권하고 싶다.

8. 글은 맺으며
체계없이 생각나는 단편들은 적어 보았다. 그 동안의 수험기간을 돌이켜 보면 주위에서 애쓰고 격려해 주신 분들이 너무나 많았다. 부모님들의 헌신적이었던 뒷바라지, 형님 내외분, 누님 및 동생들의 정성과 격려는 계속해서 힘이 되어 주었다.

또한 모교인 서울법대의 교수님들과 한양대법대학장이신 김기선 교수님 및 동대학 여러 교수님께 감사드리며, 기타 주위 여러 사람들에게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수험생 제위의 행운을 기원하면서 이만 졸필을 놓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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