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4)

명훈 엄마는 술에 취해 쓰러져 자고 있는 아빠를 깨워 이야기를 할 수가 없었다. 술 취해 곤히 자고 있는 사람을 갑자기 깨어서 아들이 강간을 했다는 말을 하면 명훈 아빠는 크게 놀라서 뇌출혈이 일어나거나 심장마비를 일으켜 응급실로 실려 가게 되고, 그것도 골든타임을 놓치면 공원묘지로 영원히 떠날 수가 있는 것이었다.

명훈 엄마는 약사이기 때문에 이런 돌발사태를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그래서 명훈 아빠를 깨우는 것은 포기했다.

명훈 엄마는 급히 명훈을 찾았다. 전화는 꺼져있었다.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엎친데 겹친다고 했다. 세상에 좋지 않은 일은 언제나 동시에 들이닥친다. 좋은 일은 멀리 간격을 떨어뜨리며 오지만, 나쁜 일은 함께 몰아닥친다.

이것을 설상가상(雪上加霜)이라고 한다. 눈도 내리고 서리도 얼어서 더욱 춥게 만든다는 뜻이다. 영어로는 ‘misfortune on top of misfortune’ ‘to make matters worse’ ‘as if to rub salt in the wound’라고 한다.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끌어들인다는 뜻이다. 명훈 엄마는 명훈으로부터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너무 한심했다. 그리고 그 여자들이 너무 나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45살이나 먹은 주부가 어린 애들 노는 이태원 클럽에 가서 24살 된 어린 아이와 같이 모텔에 갈 수 있냐? 처음부터 계획적인 꽃뱀이 틀림 없어. 그리고 하지도 않았다는데 그냥 가면 되지 친구를 불러서 때리고 강압적으로 각서를 받는 건 정말 악질이야. 근데 경찰에 신고하면 어떻게 될까?’

명훈 엄마는 지금 상황에서 이 문제까지 아빠와 상의할 처지가 아니라서 혼자 해결하려고 개인적으로 아는 여자 변호사를 만났다.

“우리 아이가 꽃뱀에 물렸어요. 어떻게 하지요?”
그렇다. 꽃뱀에 물리면 큰 일 난다. 꽃뱀은 겉모습은 화려하지만, 아주 강한 독을 품고 있다. 물리면 치명상을 입는다. 어떻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도 제대로 사람 구실을 하지 못하게 된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그 여자가 꽃뱀이라는 증거는 없다. 그 여자는 순수한 성범죄 피해자일 수 있다.

꽃뱀인지 피해여성인지는 법에서 판단하는 것이지, 가해자 부모가 판단할 권한은 없다. 그리고 이 사건에서 모든 책임은 명훈에게 있는 것이지, 명훈이 돈 10만원을 주면서 술에 취한 자신을 부추겨 모텔까지만 데려다 달라고 하는 요구를, 함께 술을 마신 일행으로서 거절하지 못하고 데려다 주었다가 순간적으로 당한 경우에, 그 여자가 갑자기 꽃뱀으로 돌변했다고 보기는 너무 무리가 아닐까?

그러나 명훈 엄마는 피해자 나이와 가해자 나이가 현저하게 차이가 난다는 이유로, 45살 가정주부가 술집에서 만난 24살 대학생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이유로 무조건 여자는 꽃뱀, 아들은 선의의 피해자로 단정을 하고 있는 것이다.

“큰일 났네요. 빨리 합의해야 해요. 고소를 당하면 구속될 수도 있고, 집행유예라도 받으면 성폭력범죄 전과자가 되어 골치 아파요.”
변호사는 수없이 이런 사건을 겪어봐서 그런지 숨도 쉬지 않고 진단을 내렸다. 의사 같으면 청진기라도 대보고 소견을 말할 텐데, 변호사는 범인도 만나보지 않고, 범인의 어머니 말만 잠깐 듣더니 성범죄자로 단정짓고, 합의하지 않으면 구속도 될 수 있다는 확진을 내리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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