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오류>

상대방이 실제로 나를 사랑하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 사랑은 그 사람의 말과 행동에 의해 감지될 뿐이다. 그의 내면을 들여다볼 수는 없다. 과학은 급속도로 발달하여, 심지어 사람의 신체 내부를 내시경으로 들여다 본다. X-ray로 투시촬영을 한다. 위나 대장 내부까지 들어가 살펴본다. 그리고 신체 내부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진단한다.

사람의 마음을 투시할 수 있는 기구나 장치가 있으면 좋겠다. 하지만 이것은 불가능하다. 게다가 사람의 능력은 속마음을 완전히 감추고 다른 말과 행동을 하고, 표정을 관리하며 제스처를 쓸 수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사랑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불안하며, 가변성을 가지는 것이다. 상대방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과연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는 것일까? 내가 부족하기 때문에 더 이상 사랑하려고 하지 않는 것은 아닐까? 이런 의문이 계속되면서 가슴이 답답해진다.

그러나 어떤 경우든지 사랑할 때는 마음을 편하게 먹고, 자신감을 가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상대방이 오히려 이상하게 생각하게 된다. 누구나 사랑하는 사람의 당당한 모습을 보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어떤 괴상한 논리에 의해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의 대상을 하나의 전체로서 인지한다. 동시에 이 전체는 말로는 할 수 없는 어떤 여분의 것을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 사람의 전부가 미학적인 영상을 산출한다. 그는 그 사람이 완벽하다는 사실에 찬미하며, 또 그렇게 완벽한 사람을 선택한 자신을 찬미한다.

그는 사랑의 대상이 이런저런 장점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그러한 것처럼 모든 것 때문에 사랑받기를 원한다고 상상하며, 이 모든 것을 텅 빈 단어의 형태로 표현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이란 축소되지 않고는 목록에 끼일 수 없는 것이기에.

“근사해!”라는 말 안에는 감정의 모든 것을 제외하고는, 어떤 특징도 머무르지 못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이 근사해란 말은 모든 것을 얘기하며, 모든 것에 결핍된 그것까지도 말한다.

그것은 내 욕망이 특별히 집착하는 그 사람의 그곳을 가리키고 싶어하지만, 그곳은 가리켜질 수 없는 것이기에, 나는 그것에 대해 결코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이다.

내 언어는 그것을 말하기 위해 항상 망설이고 더듬을 것이며, 하나의 텅 빈 말밖에는 만들어 내지 못할 것이다. 그 말은 요컨대 내가 그 사람에 대해 갖고 있는 아주 특이한 욕망이 형성되는 모든 장소의 영도와도 같은 것이다.>
- 롤랑 바르트, 사랑의 단상, 39~40쪽에서 -

롤랑 바르트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A가 B를 사랑할 때 A는 B의 외관상 좋은 점, 멋있는 점만 추출해서 인식한다. 이때 인식된 이미지는 ‘근사하다’라는 한 단어로 끝을 낸다.

하지만 나머지 그 사람의 여백에는 무엇이 있는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A는 B의 좋은 점만 뽑아내어 긍정하고, 그런 멋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자신인 A를 또 멋있기 때문에 멋있는 B를 사랑하는 것이라는 착오에 빠진다. 그것은 사랑의 오류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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