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제삿날에 재혼하는 여자는 없다

 

그런데 결혼식 날짜가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 누군가 옆에서 왜 하필이면 군인들이 반란을 일으킨 12월 12일 결혼을 하느냐는 어려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이었다. 그런 불상사가 발생했던 역사적인 날에는 결혼식을 올리면 그 결혼이 불행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었다.

 

예를 들어 현충일인 6월 6일 모두 조기를 걸고 묵념을 하는 날에 그 시간에 맞춰 결혼식을 올리는 사람은 없다는 이야기였다. 또한 부모님이 돌아가신 날에는 제사를 지내야지, 하필 제삿날에 결혼식을 예약하면 남들이 욕을 할 것이다.

 

여자가 남편 죽은 다음, 재혼을 하더라도 적어도 남편 죽은 날을 전후해서 한 달씩은 간격을 두고 결혼식을 해야지, 남편이 불행하게 일찍 이 세상을 떠나 저 세상에 가 계신데, 꼭 남편 돌아가신 날을 맞추어 결혼식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될까 하는 것이었다.

 

결혼식장에서 드레스를 입고 환하게 미소지으며, 웨딩 마치를 하다가 갑자기 결혼식장 천정에서 커다란 조명등이 떨어져 신부의 정수리를 내리쳐서 예식장에서 곧바로 병원 응급실로 가게 되고, 신혼여행은 발리섬으로 가지 못하고, 화장터로 가서 다른 영혼들을 만나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할 수 없다. <오페라의 유령>에서도 오페라극장의 천정에서 대형 장식조명등이 떨어지는 장면처럼, 사람들은 혼비백산할 것이었다.

 

그런 이상한 날에 결혼하는 것은 사랑하는 남녀가 비운에 죽었을 때 두 사람의 영혼을 결합시켜주는 영혼결혼식을 하면 모를까 살아있는 사람들의 결혼식 날짜는 잘 잡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감방에서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과 하는 결혼은 아무렇게나 잡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결혼식을 1월 1일 11시에 한다든가, 12월 31일 밤 12시에 보신각 타종시간에 맞춰 하는 것은 이상하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6.25 전쟁이 나던 날도, 하필이면 그날 결혼식을 올리기로 준비를 했던 사람들은 불행하게도 결혼식을 올리지 못했다는 역사적 교훈도 있으니 참고로 하라고 했다.

 

이 말을 들은 강 교수 부모는 결혼식을 하지 않았으면 않지, 그렇게 재수 없는 날은 안 된다고 했다. 그런데 이미 정혜 아버지가 예식장을 12월 12월 12시로 잡아놓았기 때문에 골치 아픈 상황이 되었다. 만일 취소하게 되면 위약금을 크게 물어야 할 입장이었다.

 

정혜 아버지는 위약금을 손해보는 것도 아까웠지만, 자신은 그런 미신적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강 교수 부모들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정혜 아버지는 군대생활을 보병 1사단에서 했다. 그때 사병으로 근무하면서 사단장은 하늘 같은 사람이었다. 군대에 들어가서 생활할 때, 소대장, 중대장, 대대장을 보는 기회밖에 없었다. 대령 계급장을 단 연대장도 직접 본 적은 한번밖에 없었다.

 

대부분 전방 초소에 들어가서 근무를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사단장 표창장을 받았다. 그 사단장 표창장을 항상 사무실에 올려놓고 사람들이 사무실로 오면 그 표창장을 자랑삼아 보여주곤했다.

 

그런데 그때 그 사단장이 나중에 대통령이 되었고, 12.12 사건의 주역이었다. 정혜 아버지는 그래서 무조건 12.12 사건은 정당했다고 확신을 하고 있었고, 사나이다운 일이었다고 마음속으로 존경하고 있었다.

 

그런 12.12 사건을 우습게 알고 결혼식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논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한심스러웠다. 정혜 아버지 생각은 이랬다. 만일 북한이 6.25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공격을 해오는데, 그날이 구정이면 남한에서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가 그 다음 날부터 본격적인 전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인간이 중요한 일을 하는데 있어서 날짜가 맞는지 여부를 따지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고 힘을 주어 말했다. 정혜 아버지는 이 문제에 대해 자신의 소신을 밝히는데, 갑자기 거실에서 일어나서 정혜 어머니와 정혜를 모두 일어나라고 하고 부동의 자세를 취하도록 했다.

 

마침 그집에 놀러온 정혜 어머니 여동생 부부와 가사도우미 아주머니까지 모두 불러서 집합을 시킨 다음, 군인 장군이 손에 쥐는 지휘봉 비슷한 막대기 대신 골프채 퍼터를 손에 쥐고 마치 자신이 12.12 사건 때 작전을 지휘하는 사람처럼 비장한 표정으로 선언했다.

 

“우리는 어떠한 난관이 있더라도 12월 12일 12시에 이번 결혼식을 거행해야 합니다. 그 어떤 악의 세력도 우리의 결혼식에 장해가 될 수는 없습니다. 이상!” 자세한 영문을 모르는 정혜 어머니 여동생 부부와 가사도우미 아주머니는 깜짝 놀았다. 12월 12일 12시에 무슨 핵전쟁이 나는 걸로 알았다.

 

가사도우미가 작은 목소리로 “그래도 12. 12는 나쁜 날 아닝가예?”라고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그랬더니 귀가 무척이나 좋은 정혜 아버지는 크게 화를 냈다.

 

“군인들 반란은 한국에서 있었던 작은 사건 아니냐? 그 보다 훨씬 더 큰 5월 16일이나 4월 19일, 3월 1일에는 그러면 결혼식장 모두 문을 닫아야 하느냐? 지금처럼 달나라 가는 국제화시대, 우주시대에 한국처럼 조그만 나라에서 있었던 먼지 같은 사건과 우주보다 더 소중한 우리 딸 결혼식과 연관을 짓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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