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6)
부부싸움을 하다 보면 가끔 남편이나 부인이 문을 열어주지 않는 경우가 있다. 열쇠는 가지고 있지만, 안에서 빗장을 걸어놓으면 밖에서는 열 수가 없다. 아무리 벨을 눌러도 안에 있으면서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정상적이면 밖에 있다가 집에 돌아오면 반갑게 반겨주어야 할 부부사이에 이런 상황이 왔을 때 어떤 심정을 느끼게 되는지 아는가?
남의 집을 방문했다가 주인이 없어 못 들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 자신의 집이고, 자신이 둥지를 틀고 사는 보금자리다. 그곳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신의 가장 가까운 배우자에 의해 거부당한다는 의식을 느껴 보라. 얼마나 외롭고 세상이 황량하게 느껴지는지? 그때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 반대 당사자의 마음도 똑 같다. 아니 더할 수 있다.
그래서 가급적 부부싸움은 하지 말아야 한다. 싸우더라도 극단적인 상황까지는 몰고가지 말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싸우는 과정에서 서로가 받는 상처가 너무 깊고 크다. 다시 돌아올 수 없는 다리를 건너게 된다.
경희는 자신이 현재의 상태처럼 이렇게 비참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지금 상황에서는 사랑이고 무엇이고 아무 것도 생각나지 않았다.
‘사랑보다는 삶이 중요하다. 생존이 우선이다. 사랑은 사치고 부수물이다.’ ‘내가 어리석어서 소중한 가정을 잠시 잊어버리고 낯선 사랑에 빠졌다. 그 허망한 사랑에...’
현실은 언제나 냉정하다. 겨울 바다가 언제나 추워서 물속에 들어가면 그냥 익사하는 것처럼 현실은 냉냉한 기운이 상존한다. 그런 차가움 속에서 사랑의 온기를 느끼려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다.
그런 사랑은 현실이라는 냉탕 속으로 던져지는 순간 질식한다.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을 정도로 파괴된다. 모든 사랑의 요소는 형해화되며 분해되어 흩어진다.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쓰레기를 소각하는 매퀘한 악취만 남는다.
지금 경희는 사랑 때문에 추락했다. 무서운 늪에 빠졌다. 이런 극한상황에 처한 연약한 실존에 다가가 손을 잡아줄 사람은 지구상에 아무도 없었다. 친구도, 친척도, 가족도 있을 수 없다.
오직 혼자다. 경희만이 겪어야 하고, 넘어야 할 벽이었다. 그 벽은 생각보다 높고 단단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흰색이었다. 마치 중범죄인을 취조하는 하얀 페인트만을 칠한 조사실처럼 눈이 부셨다.
그것은 희망의 빛이 아니었다. 가능성의 색깔이 아니었다. 그것은 곧 파멸이고, 죽음이며, 불가능의 상징이었다.
이 외로움, 불안감, 어두움을 누구에게 의지해 풀어나갈 지 앞이 캄캄했다. 이런 상황에서 경희가 만나서 상의하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경희는 밤거리에서 혼자 절규했다. 내가 무엇을 잘못해서 이렇게 비참하게 된 것일까? 모든 것은 환경 탓이다. 남편과 결혼하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되지 않았을 거다. 모든 것은 남편 탓이었다.
남편이 무시하고 삭막하게 만들었기 때문에 자신은 그곳에서 살아 남기 위해 탈출했던 죄밖에 없다. 사람들은 누구나 어떤 일이 잘못되면 그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는 것이 아니라, 외부적인 환경에서 찾는다.
바람을 핀 남자와 여자는 일단은 자신이 바람핀 원인과 이유를 배우자에게서 찾는다. ‘너 때문에’ 나는 완전한 결혼생활을 하지 못하고, ‘이탈했다’. 그러니까 ‘나도 잘못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 대해 너도 자유롭지 못하다’라고 항변한다. 그렇게 믿는다. 그렇게 착각하고 억울해 한다. 자신의 운명에 대해 배우자도 절반의 책임이 있다고 확신한다.
남편도 바람을 핀 적이 있다. 그럴 때 경희는 남편을 눈감아 주었다. 가정을 깨고 싶지 않았고, 넓은 마음으로 이해해 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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