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남편과 같이 있는 레스토랑에서 옛 애인과 부딪힌 유부녀

 

강 교수와 정혜는 결혼 1주년 기념행사를 거창하게 하기 위하여 미리 준비한 대로 결혼식 전날인 12월 11일 전야제를 하기로 했다. 일부러 북한강변에 자리 잡은 고급 호텔을 잡았다. 부근 레스토랑에서 스테이크를 와인과 함께 먹었다. 그런데 마침 그 레스토랑에 정혜와 1년간 연애를 했던 남자가 여자 친구와 같이 들어왔다.

 

정혜가 화장실을 다녀온 사이에 그 옛 애인 일행이 바로 옆 테이블에 앉았다. 정혜가 다시 테이블로 돌아오자 그 옛 애인이 갑자기 일어나 반갑게 인사를 했다. 정혜는 깜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그냥 담담하게 인사를 하고 자리에 앉았다. 정혜는 숨이 막혔다. 서로 좋아했는데, 정혜의 부모가 반대를 해서 하는 수 없이 헤어졌던 남자다. 그 남자는 음악을 했다. 그런데 음악에서 성공을 하지 못해 건달처럼 지내고 있었다. 직장도 없고 돈을 벌 능력이 없다는 이유로 정혜의 부모가 죽기살기로 반대해서 헤어졌다.

 

그 후 중매를 해서 지금의 강 교수와 결혼을 했다. 그 남자는 헤어질 때, 자신은 정혜 아니면 죽을 때까지 절대로 다른 여자를 만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눈 앞에 나타난 그 남자는 아주 멋있는 지적인 여자를 데리고 나타난 것이다.

 

정혜는 일부러 남편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명랑하게 큰 소리로 이야기하면 와인을 많이 마셨다. 그러다가 술에 취했다. 화장실에 가서 토를 하려고 했다. 정혜가 화장실에 가서 오랫동안 있자, 그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나 화장실로 갔다.

 

강 교수는 술에 취해 자리에서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어 있었다. 그 남자는 여자 화장실로 들어가 정혜의 등을 두드려주고 정혜를 껴안았다. 정혜는 가만히 서있었다. 눈물을 흘렸다.

 

레스토랑에서 나와 정혜와 강 교수는 호텔로 갔다. 어두워진 강에는 검푸른 강물이 가득 차 있었다. 겨울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바람이 부는데도 강물은 꼼짝하지 않고 정지해 있었다. 물속에는 사랑의 아픔이 가득 차 있었다. 강물은 너무 아팠다. 무엇 때문에 아픈지는 알 수 없었다. 갑자기 세상의 모든 행복이 사라져버렸다.

 

정혜는 지금 이 시간이 고통이었다. 자신이 결혼했다는 사실도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의 남편이 누구인지도 알 수 없었다. 가슴 속에는 오직 그 남자의 체온만이 느껴졌다. 그 사람의 숨결만이 곁에 있었다. 갑자기 남편인 강 교수가 낯설었다. 누군지 알 수 없었다. 무엇 때문에 지금 이 작은 공간에 옆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정혜는 눈물을 흘리면서 강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강 교수는 술에 취해 곧 침대에 누워 골아떨어졌다. 검푸른 강물 위로 그 남자가 떠내려가고 있었다. 멀리 바다로 가는 것 같았다. 그 남자는 슬픈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완전히 정신이 나간 사람 같았다.

 

정혜가 있는 지금 이 방에도 여러 차례 그 남자와 같이 들어와 몸을 섞은 추억이 서려있었다. 운명! 피할 수 없는 운명! 바로 그것이었다. 정혜가 벗어나고자 했던 그 운명의 사슬은 여전히 정혜의 온몸을 감싸고 있었다. 사슬의 매듭은 보이지 않았다.

 

핸드폰으로 문자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 남자이었다. 하지만 정혜는 그 문자를 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조용히 전원을 껐다. 그리고 샤워도 하지 않은 채 강 교수 곁으로 갔다. 한참 동안 소리를 내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다가 잠이 들었다.

 

호텔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날이 밝았다. 드디어 두 사람에게 매우 감격스러운 결혼 1주년이 되는 기념일이다. 원래 두 사람의 계획은 결혼식을 올렸던 호텔의 식장을 둘러보고 같이 뮤지컬을 관람하고 술을 마시기로 했었다. 그런데 두 사람은 모텔에서 나와 같이 차를 타고 오면서 말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어제 그 남자 누구야? 어떤 관계지?”

“응. 그냥 아는 사람이예요. 아무 관계도 없어요?”

“아냐. 내가 볼 때는 보통 사이가 아닌 것 같아. 아무래도 수상해. 옛 애인 맞지?”

“아니라니까 그래요.”

“솔직히 말해도 좋아. 내가 당신 과거를 가지고 따지는 건 아니니까.”

“그냥 친구들과 어울려 몇 번 같이 만난 적이 있을 뿐이예요. 신경 쓰지 말아요.”

“어제 당신 눈빛과 그 남자 눈빛을 유심히 봤어. 서로 결혼하지 못해 불행해진 것처럼 보였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까 그 남자 만나도록 해. 나도 옛날 만나던 여자 만날 테니까.”

 

순간적으로 정혜는 머리가 돌았다. 아무 증거도 없이 생사람을 잡고, 그 핑계로 다른 여자를 만나겠다고 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정혜는 그때부터 묵비권행사로 들어갔다. 강 교수가 어떤 말을 해도 대꾸를 하지 않았다.

 

“당신이 아무 대답도 하지 않는 건 분명히 그 남자가 옛애인이고, 지금도 서로 사랑하고 있고, 우리 결혼을 후회하는 것이 확실해.”

두 사람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다음 스케줄은 모두 없던 것으로 자동취소되었다. 그리고 강 교수는 그 날 저녁 자신의 부모집으로 가서 그곳에서 생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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