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실종

현대 사회는 과학과 기술의 발달로 무척 편해졌지만, 한편으로는 자연으로부터의 단절과 물질만능의 풍조에서 사람 사이의 관계는 무미건조해졌다.

Weber는 '정신(Geist) 없는 전문가'와 '가슴 없는 향락자'가 많이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보이지 않는 부의 가치가 사람을 지배하고 있다. 가진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간격이 커지며, 있는 사람의 교만은 가면 뒤에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법과 제도는 평등하고, 무한 자유를 누릴 수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존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고, 사회적 낙오자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거대한 도시에서의 삶이란, 초라한 존재로서의 무기력감을 느끼게 만들고 피로감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한다. 날이 갈수록 허무감이 팽배해지며, 가진 자마저 권태에 빠져 자살에까지 이르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그런 자살사건에 대해서조차 사람들은 무감각해지고 있다. 워낙 국제사회에서의 전쟁이 계속되고 있고, 무자비한 테러사건과 대형 교통사고 등 참사, 지진 홍수 피해 등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급속히 서구화되고 있는 우리 사회는 종래의 전통적인 사회와 달리 인간의 자유의지를 전제로 하고 모든 분야에서 합리적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는 지성과 과학이 중시되고, 감정은 어디까지나 부차적이고 잉여적인 존재로 취급되어지고 있다. 이런 현상은 Averill 이 적절히 지적한 바 있다.

교육은 출세하거나 생존전략의 의미로 전락하고 있다. 남녀간의 애정도 극단적인 이기적인 사고에서 움직이고 있다. 이혼율은 갈수록 급증하고 있고, 성윤리도 표류하고 있다.

이런 혼돈 속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삶에 있어서 의미를 찾고 나름대로 소중한 감성을 간직하면서 살아가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검단산 산행을 갔다. 올라갈 때 땀을 많이 흘렸다. 너무 힘이 들어서 죽고 싶을 정도였다. 그런데 내려올 때는 시원한 바람도 불고 힘이 들지 않고 살고 싶을 정도였다. 결국 죽음과 삶 사이에서 오고 가는 사람이란 항상 삶의 한 가운데 서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어느 때고 자신의 삶을 이끌어가고 있는 중심체며 주인이다. 주인으로서의 자아는 자신의 삶에 대한 모든 책임을 지고 있다.

삶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 것인지 주체적 자아는 항상 깨어 긴장하고 있어야 한다. 주인이 넋을 잃고 있으면 안 된다. 아무도 책임지고 움직일 다른 존재가 없기 때문이다.

산에서 내려 올 때는 제법 어두워졌다. 미끄러지지 않기 위해 매우 조심해야 했다. 어둠은 우리를 긴장하게 만든다. 빛이 사라지고 어둠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삶이 살아남기 위해 주위를 살펴야 하고, 눈을 크게 떠야 한다.

그 아름답던 숲도 컴컴해지면서 두려움의 대상이 되었다. 사랑도 어둠 속에서는 실종해 버렸다. 당장의 안전한 생존을 위해 의식과 무의식이 모두 경계태세를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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