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73)

“지현아! 그동안 미안했어. 생각해보니까 내 애기를 가졌는데, 내가 신경을 쓰지 못했다는 게 너무 잘못한 거야. 정말 미안해. 아이도 가졌으니까 좋은 걸로 옷 한 벌 사줄게. 만나자.”

지현은 놀랐다. 갑자기 명훈이 이런 태도로 나오니 이것이 꿈인가 생시인가 싶었다. 전혀 그럴 가능성이 없던 명훈이 어떻게 이렇게 따뜻하게 나온다는 말인가? 그것은 분명이 아이의 영향 때문이라고 믿었다. 아무리 무뚝뚝하고, 아무리 나이가 어리다고 해도, 시간이 가면 자신의 아이를 품고 있는 여자에 대해 남자는 다시 돌아오게 되어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러면 그렇지, 오빠는 겉으로만 그런 태도를 보인 거지, 나를 정말로 사랑하고 있는 거야.’ 그래서 지현은 울면서 대답했다.
“오빠. 정말. 고마워. 그동안 오빠 마음도 모르고 내가 잘못했어. 용서해 줘. 앞으로는 절대 안 그럴게.”

명훈은 지현을 데리고 백화점에 가서 옷을 사주고 함께 식사를 했다. 그리고 술을 많이 마셨다. 명훈이 취해서 비틀거리고 쓰러지려고 하자. 지현은 하는 수 없이 명훈이 혼자 사는 원룸으로 부축을 해서 갔다.

오랜만에 온 원룸에는 지현의 자취는 모두 사라지고 남은 것이 없었다. 대신 다른 여자의 옷이 몇 벌 구석에 팽개쳐있었다. 여자 내복도 보였다. 순간 소름이 끼쳤지만, 지현은 이해하려고 애썼다.

‘그것은 내가 옆에서 응대를 해주지 못해서 그랬던 것이야. 아무래도 젊은 남잔데, 여자 없이 지낼 수는 없는 거 아냐? 내가 아이를 난 다음에는 잘 해주면 되는 거야.’

그러면서 지현은 명훈의 원룸까지 들어가게 된 것을 무한 행복해했다. 그리고 정성을 다해 명훈을 침대에 눕히고, 다리를 맛사지해주었다. 명훈의 다리는 건장했다. 이처럼 건장한 다리가 지금 내 속에 있는 아이의 아빠 다리라는 사실에 또한 감격했다. ‘분명 아이도 아주 건강하게 태어날 거야!’

명훈은 술에 취해 곧 잠이 들었다. 심하게 코를 골았다 술냄새도 악취에 가까웠다. 지현도 같은 침대에 누워 잠이 들었다. 행복한 시간이었다.

새벽에 지현이 눈을 떠보니 명훈이 자신의 위에 올라가서 행위를 하려고 했다. 지현은 필사적으로 방어했다. 아무리 명훈이 난폭하게 시도를 해도 목숨을 걸고 막았다. 아이 때문이었다. 큰일 난다고 믿었다. 명훈이 계속 누르자, 지현은 명훈의 팔을 물어뜯었다. 피가 나고 명훈은 아프다면서 나가자빠졌다.

명훈은 화가 나서 지현을 때렸다. 얼굴을 때리고 발로 배를 찼다. 서로가 이성을 잃은 상태였다. 그런 다음 두 사람은 정신을 차리고 아침에 병원을 여는 시간이 되자, 같이 산부인과로 갔다. 명훈의 상처는 문제가 아니었다. 혹시 아이가 유산되었을까 걱정이었다.

지현은 계속 울었다. ‘만일 아이가 잘못되었으면, 오빠는 내 손에 죽을 거야.’라고 수없이 되풀이하면서 다짐했다. 명훈도 걱정이 많이 되었다. 절대로 아이를 유산시키려고 배를 찬 것은 아니었다. 그냥 화가 나서 때리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의사는 현재 상태로서는 유산이 아니라고 하면서, 며칠 관찰해 보자고 했다. 그러면서 두 사람에게 정말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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