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9)
강 교수는 어느 날 갑자기 삶에 진한 회의를 느끼게 되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다. 공부를 열심히 하고, 교수가 되기 위해 외국에 가서도 열심히 연구했다. 출세하기 위해 부잣집 딸과 정략적인 결혼을 해서, 그 덕분에 미국 유학생활을 충분하게 했다. 자녀도 한 명 낳고, 겉으로는 멀쩡한 부인도 있고, 대학에서도 부교수까지 올라갔다.
속으로는 곪아터진 부인과의 결혼생활이 엉망진창이 되었다. 부인의 과거 애인문제 때문에 두 사람 사이는 깨질대로 깨졌다. 형식적인 부부생활만 아무런 애정 없이 하고 있었다. 그것을 트집삼아 강 교수는 밖에서 여러 여자들과 연애를 했다.
그렇다고 어떤 한 여자에게 완전히 파묻혀 인생을 걸 용기도 없었다. 어떤 의미에서는 그것은 용기의 문제도 아닌 것 같았다. 연애하는 여자가 목숨을 걸만한 매력이나 가치가 느껴지지 않았고, 상대 여자도 마찬가지로 강 교수가 가정 있는 남자였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 더 이상 나아가지 않는 관계를 유지하려고 했다.
강 교수는 그런 자신의 모습과 상대 여자의 태도를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결혼하고 첫 번째 외도 때에는 약간 달랐다. 그때는 아이가 생기기 전이었는데, 상대 여자가 미혼의 상태에서 강 교수에게 목숨을 걸었다.
특히 그 여자는 머리 좋은 인텔리였는데, 강 교수가 생애 첫남자라고 하면서 강 교수가 변하면 곧 생을 마감할 것처럼 강 교수에게 집착하고 매달렸다. 하지만 강 교수는 그 여자가 가진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잠자리가 별로 맞지 않아 늘 헤어질 생각을 하고 있었다.
강 교수 입장에서는 여자와의 연애, 사랑은 기본적으로 육체관계가 서로 맞고 행복하게 해주어야 오래 갈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생각이나 사상, 종교, 취미 등이 같거나 맞아도 그런 관계는 명학한 한계가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 여자를 떼는데 무려 6개월이 걸렸다. 강 교수는 그 여자가 자살하거나 강 교수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고, 커다란 상처를 받지 않고,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가면서 강 교수와 헤어지도록 하기 위해 수많은 연구를 하고 행동으로 옮겨 마침내 서로 웃으면서 헤어지는데 성공했다.
그러면서 그와 같이 그 여자와 헤어지는 이별의 과정 6개월 동안 너무 많은 고통과 위기를 겪고 마음 고생을 했다. 그 당시 6개월 동안은 무척 고통스러웠지만, 나중에 나이가 들면서 강 교수는 오히려 그때 젊은 나이에 겪었던 경험이 두고 두고 여자를 만날 때, 여자와 헤어질 때, 아주 좋은 지혜를 주고 커다란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했다.
강 교수가 그 여자를 떼기 위해 노력한 과정은 정말 많은 연구를 한 결과였기 때문에 사실 혼자만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는 아까울 정도였다.
강 교수는 그에 관해 논문을 쓰려고 했다. ‘상처 주지 않고 헤어지는 방법’이라는 제목으로 심층적인 연구를 하려고 했다. 그에 관한 국내외 책과 논문, 자료를 수집해서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이론과 가설을 과학적으로 논증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런 논문은 결국 처음부터 이별을 목적으로 그 방법론을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사랑의 순수성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이었다. 연구의 목적이 불순하다는 비난을 받을 것 같았다. 그리고 현실적으로 상처를 주지 않는 이별이란 그 자체로 모순인 것 같았다.
왜냐하면 이별은 사랑의 소멸을 뜻하는데, 사랑 자체가 사망하는데, 사랑이 받는 상처를 감소시키는 행위가 어떤 효과를 의미하는지도 애매했다.
그것은 사람의 생명을 소멸시키는 살인행위에 있어서 그 사람에게 상처를 덜 가하는 것, 즉 상해의 결과를 피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하는 것과 똑 같았다.
결국 상처를 주지 않고 헤어지는 방법을 연구할 것이 아니라, 이별을 막는 방법, 헤어지지 않는 방법을 연구해야 맞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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