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7)
“아니, 숙정씨, 우리가 처음에는 노래방에서 관계를 했고, 또 한번은 소백산 등산을 갔다가 일행 몰래 숲속에서 짧게 숏타임을 했잖아요. 그리고 모텔에서 같이 샤워를 하고, 한참 하다가 어디선가 전화를 받고 그만두고 갔던 거잖아요? 내가 언제 강제로 관계를 했어요?”
경찰관이 숙정에게 물었다. “이 사람 말이 맞나요?”
“아닙니다. 저는 노래방에 간 적은 있어도 그때 노래만 부르고 술만 마시고 그냥 나왔어요. 어떻게 노래방에서 그짓을 해요. 그런 적 없어요. 등산가서 산에서 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니예요.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등산로에서 그것도 대낮에 어떻게 해요? 더군다가 우리 등산회 일행이 35명이나 같이 있었는데요? 그리고 산에서 등산하다가 그걸 하면 남자는 기운이 빠져 산에 올라갈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고종은 기가 막혔다. ‘세상에 이런 나쁜 여자가 있나? 분명히 그렇게 노래방에서, 등산로에서 100미터쯤 들어간 숲 속에서 했는데, 그걸 거짓말 할 수 있나? 불과 두 달도 지나지 않은 일인데...“
하지만 여자가 그렇게 전면 부인하자 고종은 답답하기만 했다. 경찰관은 따져 물었다. “아니 여자분이 말하는 게 맞는 것 같은데, 피의자는 두 곳에서 성관계를 했다는 증거가 있나요? 예를 들면, 녹음을 해놓았다든가, 노래방의 CCTV라든가, 아니면 증인이라든가, 있으면 제출하세요.”
“숲속에서 갑자기 아랫도리만 벗고 잠깐 하는데 그걸 어떻게 녹음을 한다는 말입니까? 그리고 노래방에서 방안 실내에는 CCTV가 있을 수 없잖아요. 그리고 은밀하게 잠깐 하는데 다른 사람이 그걸 볼 수는 없잖아요. 이 여자 말이 모두 거짓말입니다. 거짓말탐지기 측정을 해주세요. 저는 너무 억울합니다.”
“그럼 모텔에서 한 것은 어떻게 된 겁니까? 여자가 동의한 사실은 없었지요?”
“그때 둘이 같이 술을 마시고 오히려 숙정씨가 먼저 원해서 모텔에 간 겁니다. 모텔에 가서 숙정씨가 먼저 샤워를 했고, 제가 그 뒤에 샤워를 하고 나왔는데, 오랫동안 참았는지 숙정씨가 매우 적극적이었어요.”
“그럼 숙정씨 목 부위와 팔뚝 주변에 상처는 무엇이지요?”
“저는 상처를 본 적도 없어요. 만일 상처가 있다면, 그날 낮에 등산을하면서 반팔을 입었기 때문에 숲속을 헤치고 다니다가 가볍게 긁힌 거겠지요?”
숙정은 조사를 받으면서 고종의 얼굴은 양심의 가책 때문인지 절대로 쳐다보지 않고, 그냥 울먹이고 있었다.
“저는 남편이 무서워서 지금까지 한번도 외간 남자와 관계를 한 적이 없어요. 이번에 술에 취해 모텔까지 따라갔다가 갑자기 당한 거예요.”
이렇게 해서 고종은 재판까지 넘어온 것이었다. 그런데 1회 공판이 끝난 다음, 고종의 가족이 나서서 등산회 회원들을 만나 사건의 진상에 대해 파악하기 시작했다.
매우 늦은 감은 있었지만, 뒤늦게나마 회원들이 사건 내용을 들은 다음 몇 회원들이 적극적으로 발을 벗고 나서서 협조를 해주었다. 회원들은 숙정과 고종이 그동안 등산회에서 어떻게 친하게 지냈는지 여부, 두 사람이 애인처럼 보였다는 사실을 사실확인서로 써주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우연히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 회원은 등산회 창립멤버였다. 그런데 문제의 당일 소백산 등산을 갔다가 자신이 리더격이었기 때문에 전체 회원 동향을 살피면서 등산을 하고 있었는데, 후미에 처진 숙정과 고종 두 사람이 뒤떨어져 보이지 않아 팁장이 혼자서 두 사람을 찾았다.
그러면서 두 사람 모두 핸드폰을 받지 않고 있어 혹시 무슨 사고가 났나 싶어서 등산로 주변 샛길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팀장은 숲속에서 두 사람이 그짓을 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처음 멀리서 볼때는 여자가 밑에 깔려있고, 남자가 등산복 차림으로 위에 올라타고 있어 살인이 벌어지고 있나 싶어 크게 놀랐다.
그런데 조금 더 가서 숨을 죽이고 보니까 두 사람은 황홀경에 빠져 주변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래서 팀장은 몰래 사진을 찍어놓았다. 그리고 재빨리 현장에서 떠나 등산대열로 돌아왔다. 30분쯤 후에 숙정이 팀장에게 전화를 했다.
“아 팀장님이 전화를 주셨네요. 진동으로 해놓아서 못들었어요. 길을 잘못 들어 헤매다가 이제 제대로 찾아가고 있어요.” 그러면서 나타난 두 사람은 몸을 풀어서 그런지 얼굴에 화색이 돌았고, 산에서 내려올 때에도 굉장히 기분이 좋아보였다.
팀장은, ‘내가 10년 동안 등산을 다녔지만, 이렇게 등산 도중에 회원들이 몰래 숏타임하는 건 처음 봤다.’고 혀를 찼다. 이 팀장은 나중에 고종의 가족 이야기를 듣고 그 사진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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