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사랑 이야기>

촉촉한 새벽이슬을 밟으며 가을을 맞는다. 긴 겨울을 헤치고 생명의 싹을 틔웠던 감격의 봄, 타오르는 태양의 위대한 힘을 마음껏 느낄 수 있었던 여름을 보내고 이제 원숙한 삶의 깊이를 느끼게 하는 계절이 왔다.

해마다 이때가 되면 설레인다. 가을이라는 단어에도 그렇지만 9월이라는 말에 더욱 그렇다. 하루하루가 아깝다. 가을은 삶을 반추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어준다.

꽃피는 계절에 들떠있던 기분도 가라앉고, 무더위 속에 장마비를 맞으며 생존의 한계의식에 지배당했던 시간도 지났다. 이젠 차분하게 돌아보고 떨어지는 낙엽에서 인생의 진정한 의미를 찾을 시간이다.

그렇게 가을은 왔다. 우리는 잊었던 사랑을 다시 꺼내야 한다. 피곤했던 삶의 여정 속에서 잠시 덮어 두었던, 아니 덮을 수밖에 없었던 그 소중한 사랑을 장롱 속에서 다시 꺼내 햇볕에 말리고 보듬어야 한다.

가을에는 누군가를 그리워해야 한다. 내 삶에 많은 영향을 미쳤던, 목숨을 바쳐 사랑했던 사람을 깊이 느껴야 한다. 그가 떠난 자리를 무언가로 채워야 한다. 사랑을 대신할 그 무엇인가를 찾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성숙해진 삶의 언저리를 바라보며 가을의 위대함에 고개 숙인다.

덕수궁 돌담길을 걸으며, 남산 순환도로를 따라 삶의 자취를 남겼던 시간들은 얼마나 소중했던가? 그 밤들에 무수한 별들이 우리 사랑을 축복하고 있었다. 그렇게 축복받았던 사랑은 가을을 물들였고, 낙엽 따라 흘러갔다.

나는 노란 은행잎으로 덥힐 대학캠퍼스를 찾고 있다. 벼가 고개 숙여 누런 황금색 들판을 걷는 모습에 들뜬다. 밤이 떨어져 고슴도치 같은 모습으로 널려 있을 동네를 바라보려 한다. 그곳에서 사랑을 찾을 것이다. 서울의 가을(Fall in Seoul)은 이런 사랑스런 모습으로 다가왔다.

아침 저녁으로 날씨가 선선해졌다. 사람처럼 간사한 존재는 없다. 무덥다고 난리를 치더니 새벽녘에 선선해지자 이불 속으로 파고 든다. 태양이 작열하는 의미를 아는 것으로 충분하다. 곡식이 무르익어야 가을에 추수를 할 수 있다는 농부의 소박한 진리를 이해하면 된다.

가을은 성숙한 계절이다. 만물이 수확을 거두는 시기다. 논에는 벼가 누렇게 익어간다. 추수하는 때다. 봄에 씨를 뿌려 싹을 틔우고 여름에 무럭무럭 자라 가을에 거둬들이는 게 자연의 이치다. 그런 의미에서 완성된 색깔을 보여준다.

나는 오래 전부터 가을을 사랑했다. 왜 가을을 사랑하는가? 가을처럼 사람의 마음을 차분하게 가라앉히는 때는 없다. 누런 색깔을 보면서 인생의 원숙한 멋을 깨닫고, 낙엽이 떨어지는 은행나무를 보면서 인생의 덧없음도 깨닫게 해준다.

가을에 느낄 것이다. 가슴 속까지 파고 들어오는 선선한 바람, 할 일을 다 하고 나무에서 떨어져가는 낙엽, 들판의 허수아비와 누런 벼, 참새 떼를 보고 느낄 것이다.

다시 사랑을 가슴 속에 심어야겠다. 세속적인 욕심을 버리고, 마음을 비워야겠다. 낙엽을 보고 인생의 진리를 깨달아야겠다. 가을은 그런 의미에서 보석처럼 나를 진하게 껴안을 것이다.

나는 '가을사랑'이라는 시를 썼고, 가을사랑이라는 시집을 냈다. 대부분이 가을에 관한, 가을의 사랑에 관한, 그리고 인생의 원숙한 멋에 관한 시였다. 1995년 가을사랑이라는 시집이 세상에 나왔다. 세상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가져 주지 않아도, 나는 그 후에도 틈틈히 가을과 사랑, 인생에 관한 시를 썼다.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