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티김과 추억의 강

퇴근길에 차 안에서 패티김 노래를 들었다. 정말 노래를 잘하는 가수다. 예전에 못느끼던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사랑을 표현하는 아름다운 가사가 패티김 특유의 감정이 담긴 음성에 의해 색다른 맛을 주고 있었다. 나는 그 노래에 푹 빠져 서초동까지 갔다.

아주 옛날 생각이 났다. 대학교 시험에 떨어져 집에서 빈둥거리고 있던 시절에 나는 방학때 서울에서 내려온 형과 함께 대전 대신초등학교 운동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한 여름에는 더워서 집에 있을 수가 없었다. 뜨거운 열기가 식을 때까지 운동장에 가서 돗자리를 펴고 누워 시간을 보냈다.

학교 운동장은 산 중턱에 있어 정말 시원했다. 산 아래 동네도 잘 보였다. 불빛이 은하수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다. 형이 서울에서 사가지고 내려온 휴대용전축이 있었다. 아주 작은 것이었는데 들고다니면서 레코드판을 올려놓고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형은 패티김, 나훈아, 남진 등의 판 몇 개를 가지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재산목록 1호였다. 그 판을 나도 수 없이 들었다. 2시간 내지 3시간 동안 같은 판을 틀어놓고 우리는 함께 누워 밤하늘을 쳐다보고 있었다. 때로는 잠이 들기도 했다. 옆에서는 풀벌레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재수를 하고 있는 입장이었지만 공부는 막연하게 걱정만 하고 있었지, 열심히 할 분위기는 아니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시절은 너무 행복했던 시간들이었다.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사람들 때문에 외롭기는 했어도, 별로 실존의 고독을 느끼지 않았고, 세속적인 환경에 오염되지 않은 상태에서, 밤하늘의 별과 구름, 나무, 풀, 불빛, 음악과 함께 내 영혼은 자유스럽게 우주를 날아다니고 있었다.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다시 어린 시절로 돌이킬 수있다면, 나는 그 자리에 서고 싶다. 그 자리에서 패티김의 구성진 사랑의 노래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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