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3)
그 노인은 이런 일이 있은 다음, 일주일에 한번은 반드시 그 술집을 들렀다. 여종업원 백나미가 마음에 들어서였다. 노인은 돈을 꽤 많이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신용카드는 절대로 쓰지 않았지만, 지갑에 늘 현금을 가득 채워가지고 다녔다.
5만원짜리만 100장 정도 있었는데, 돈계산을 할 때에는 일부러 지갑을 주변 사람들에게 보여주었다. 지갑안에 5만원권 신권이 꽉 차 있는 것을 보는 사람들은, “회장님은 왜 그렇게 현금을 많이 가지고 다니세요? 소매치기를 당하거나 분실하면 어떻게 하시려고요?”라는 질문을 했다.
“내가 젊었을 때 돈이 없어 고생을 많이 했거든. 그래서 돈에 한이 맺히고, 돈이 원수가 되었어. 그 때문에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 나는 지갑 안에 현금을 가득 채워서 가지고 다니는 것이 평생 버릇이 되었어. 그전까지는 만원짜리를 가지고 다녔는데, 5만원짜리가 나와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돈을 많이 가지고 다니면, 기분이 좋아져. 다른 사람들은 지갑에 현찰이 몇만원밖에 없잖아? 어떤 사람은 몇천원밖에 없는 경우도 있고.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우쭐해져. 아! 내가 정말 부자구나! 저 사람들은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다.”
노인은 그러다가 한번은 술을 마시고 술집에서 화장실에 다녀오다가 지갑을 잃어버렸다. 끝내 못찾고 말았는데, 그 지갑 안에는 주민등록증, 현금 635만원, 애인 사진이 있었다.
너무 억울해서 일주일간 단식을 하면서 지갑을 찾으러 돌아다녔다. 노인이 지갑 때문에 단식을 하고 있는 동안, 야당 국회의원들은 대통령이 정치를 잘못 한다고 한겨울에 단식을 하고 있었다.
노인은 수시로 TV 뉴스를 보면서, 유명 정치인이 삭발을 하고 단식을 하는 것이 너무 멋이 있어보여서, 자신은 비록 나라를 위해 단식하는 것이 아니고, 잃어버린 지갑과 그 안에 든 현금과 애인 사진 때문이라는 사적인 동기에서 하는 것이었지만, 오기가 발동해서 그 유명 정치인보다는 더 길게 단식을 해야겠다고 단단히 마음을 먹었다.
물 이외에는 정말 아무 것도 먹지 않았다. 과거에 보면, 정치인들의 단식은 언론에 보여주기 위한 쇼인 경우가 많았다고 해서, 기자들이 보지 않을 때에는 보좌관이 마치 물을 마시는 것처럼 해서 꿀물이나 비타민, 우유 같은 것을 먹게 했다고 하는데, 노인은 그런 가식적이고 위선적인 행동은 차라리 단식을 하지 않는게 낫다고 믿었다.
그래서 철저한 단식을 감행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서 갑자기 그 라이벌 정치인이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갔다.
그러자 노인은 갑자기 흥분해서 물컵을 벽에 집어던졌다. “저럴 것 같으면 뭐 때문에 단식을 시작했나? 시원찮은 사람같으니라고. 이왕 단식을 하려면 20일은 최소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괜히 저런 사람과 같이 단식을 한 내가 바보다.”
경쟁 상대가 쓰러져서 그런지 노인은 정치인이 쓰러진 후 한 시간쯤 지나서 갑자기 의식을 잃었다. 마침 집에 있던 부인이 노인을 응급조치하여 겨우 살아났는데, 의식이 회복된 다음 노인은 그 정치인보다 자신이 단식을 한 시간이라도 오래 했다는 사실에 감격했다. 그러면서 앞으로 또 단식할 일이 생기면 그때에는 정말 단식을 제대로 오래 할 헤비급 참피온이나 마라톤 경기 우승자 또는 뱀탕장사 같은 사람이 할 때 시기를 맞추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노인은 단식을 하면서 아들에게 자신이 단식하는 모습을 매일 세 차례씩 사진을 찍어놓으라고 했다. 기념으로 하기 위해서였다. 나중에 자서전을 쓸 때 현상해서 증거자료로 사용하려고 했던 것인데, 아들이 열심히 사진을 찍어놓고, 핸드폰을 분실하는 바람에 증거가 모두 사라지고 말았다.
노인은 그런 사실을 알고 크게 분개했다. 그러면서 아들에게, “그렇게 중요한 사진을 찍을 때에는 핸드폰 두 개를 가지고 찍어놓아야 하나를 분실해도 다른 핸드폰에 남아 있는 거야. 빨리 핸드폰을 하나 더 가지고 다녀. 알았지!”라는 특별훈시를 했다.
그 때문에 노인의 아들은 핸드폰을 두 개씩 가지고 다녔다. 혹시 아버지로부터 중요한 사진을 찍으라는 분부가 있을 것을 대비해서였다. 노인은 그때 잃어버린 애인의 사진이 걱정이 되어서 애인에게 지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과 애인의 사진까지 같이 분실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면서 다른 사진을 하나 달라고 했다.
그랬더니 애인은 크게 화를 내면서, “그게 말이 돼요? 내 사진을 그렇게 우습게 생각하고 잃어버리니! 분명히 내 사진을 지갑속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지 않았을 거예요. 다른 곳에서 잃어버렸겠지요. 나 말고 다른 여자와 모텔에 갔기 때문에 그 여자가 당신 잠을 잘 때 지갑을 열어보고, 그 안에 내 사진을 보고 꺼내서 찢어버린 것이 확실해요. 어떤 X인지 자백해요. 그리고 그 X을 만나게 해줘요.”라고 다구쳤다.
노인은 애인이 너무 말도 되지 않는 죄를 뒤집에 씌우고 울고 불면서 난리를 쳤기 때문에 화가 나서 그 애인을 때렸다. 너무 흥분한 상태에서 폭행을 가했기 때문에 그 여자는 고막이 터졌다. 이 사태를 수습하고 애인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노인은 그 여자에게 밍크코트를 사주고, 현금 5백만원을 주었다.
그랬더니 그 여자는 화를 풀고 노인에게 각서를 쓸 것을 요구했다. “앞으로는 사랑하는 사람의 사진을 분실하지 않을 것이며, 만일 사진을 잃어버리는 경우에는 1회에 금 천만원을 지급할 것을 맹세합니다.”라는 각서를 쓰고 지장을 찍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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