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지극히 이기적인 것!
오랜 시간 사랑에 관해 생각을 해보았다. 사랑에 관한 많은 글도 읽어보았다. 어떤 사람들은 사랑에 관해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이상적으로 생각하고 미화한다. 무조건 아름다운 것으로 동경한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나오는 순수한 사랑을 꿈꾸고, 현실에서도 그런 사랑을 추구한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소설에 나오는 이상적인 사랑, 순수한 사랑, 완벽한 사랑은 인간의 몫이 아니라, 어디까지나 가상적인 천사의 몫이다. 그리이스와 로마 신화에 나오는 여러 가지 유형의 사랑 이야기는 결국 사랑은 하나의 유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반대의 형태의 사랑도 엄연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인간은 외모부터 신과 다르다. 아름다움과 추함이 공존한다. 겉과 속이 다르다. 성격이나 능력은 또한 천지차이다.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이 대등한 비율로 존재한다. 능력은 날이 갈수록 격차가 심해지고 있다. 환경도 수시로 변한다. 청와대에서 감방으로 직행하는 사람도 있다. 대기업 회장에서 신용불량자로 전락하기도 한다.
결국 인간의 사랑은 본질적으로 동물적인 사랑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남자와 여자가 성적으로 이끌리고, 성적 욕망을 상호간에 충족시키고, 더 나아가 결혼해서 가정이라는 정신적, 경제적 공동체를 형성하고 자녀를 낳고 사회생활을 하는 기반을 만드는 과정이 현실적인 사랑이다.
그런데 일시적, 충동적으로 성적 매력을 느낀 두 사람이 그런 욕망이 충족되고 한계효용의 법칙에 따라 더 이상 매력을 느끼지 못하면, 그 애정관계는 자연스럽게 소멸하고 만다. 이때 이별이나 이혼과 같은 단계를 거치게 되는데, 그 과정은 매우 고통스럽고 상처를 준다.
뿐만 아니라 나이 들어, 50살이 넘으면 사랑이나 애정은 또 다른 본질의 변화를 겪게 된다. 이때부터는 사랑이나 애정관계는 심하게 형이하학적인 육체관계에 집착하거나, 아니면 그것을 떠난 성적 관계가 뒷받침되지 않는 정신적 반려자의 관계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것은 50살 이전의 젊은 나이에 받아들이는 사랑이나 애정의 이미지나 성격과는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물론 예외는 있지만, 50살이 넘어서 새로운 사랑을 추구한다는 사람들은 대체로 실패하게 되고, 현실적인 활동이나 삶의 기반을 저해하는 장애물을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
50살이 넘어 젊은 여자와 육체적인 사랑을 추구하는 남자들이 대개 패가망신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감방을 가는 사람들도 있고, 이중생활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기도 하고, 이혼을 당하기도 한다.
남는 것은 사회적인 낙인과 불명예, 사랑의 허망함에 대한 깨달음뿐이다. 얼굴도 추하게 변하는 것은 아직 그 정확한 원인을 의학적이나 과학적으로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색을 밝히는 사람은 얼굴이 지저분하게 보인다. 마치 돼지나 뱀 같은 형상을 띤다.
그러므로 사랑은 젊었을 때 하는 것이 좋다. 사랑은 젊은이의 특권이다. 50살이 넘은 사람들은 보다 현실에 충실하고, 사랑에 대해서는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좋다. 뒤늦게 새로운 사랑, 이상적인 사랑을 추구한다고 날뛰다가 망하는 것은 자업자득이다.
아름다운 봄날이 우리 앞에 와있다. 허망한 사랑보다는, 아름다운 꽃을 찾아 향기를 맡고, 꽃을 맴도는 벌과 나비처럼 우리의 마음을 맑은 창공에 날려보자. 그곳에 진정한 인생의 향기가 피어오를 것이다.
'수필'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랑의 모진 운명 ② (0) | 2021.03.12 |
---|---|
사랑의 모진 운명 ① (0) | 2021.03.12 |
작은 운명 (3) (0) | 2021.03.12 |
사랑은 불씨와 불꽃이다 (0) | 2021.03.12 |
서울특별시 공익변호사로 위촉을 받았습니다. (0) | 2021.03.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