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성의 경계 (1)

 

사랑은 상당 부분 성적인 본능을 전제로 한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일 수는 없다. 성적인 외설스러움은 초기 단계에서 사랑을 이끌어가는 주요한 동인이 된다. 그러나 그것은 시간이 갈수록 후퇴한다. 성적인 본능은 인간을 고독하게 만든다.

 

성적으로 황홀한 환희를 맛볼 수는 있지만, 그것은 매우 단편적이며 비영속적이다. 그러므로 사랑을 성적으로 구성하려는 시도는 무모하다. 사랑은 90% 이상을 정신적인 감성으로 채워야 하는 특수성이 있다. 그래야 순수와 열정을 모두 담을 수 있다.

 

사랑과 성의 경계 (2)

 

사랑에는 최소한의 나르시시즘이 존재한다. 자신과 상대방의 나르시시즘이 무시되면 사랑은 실종된다. 사랑은 심리적인 치사함이 바탕에 깔려있다. 인간성을 지나치게 초월해서 신성에 근접할수록 사랑은 형해화될 우려가 있다.

 

롤랑 바르트도 이런 부분을 지적하고 있다. 사랑에 있어서 외설적인 면은 결코 긍정되기 어렵다는 의견을 밝히고 있다.

 

사랑과 성의 경계 (3)

 

<사랑의 외설스러움은 극단적인 것이다. 그것을 수용하여 거기에 위반의 강력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주체의 고독은 모든 장식이 제거되어 소심하다. 이런 종류의 외설은 바타유와 같은 작가도 글로 옮기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의 텍스트는 작은 나르시시즘과 심리적인 치사함으로 만들어진다. 그것은 위대한 것과는 거리가 먼, 또는 그 위대함은 어떤 위대함에도 합류할 수 없는, 천박한 물질주의에 조차도 합류할 수 없는 그런 것이다.

 

그러므로 외설적인 것이 진정으로 긍정, 언어의 경계인 아멘과 일치될 수 있는 것은 바로 불가능의 순간이다.>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258쪽에서 -

 

사랑과 성의 경계 (4)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지나치게 성적인 면을 노골적으로 표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은 오직 밤의 문화다. 어두울 때, 어두운 곳에서만 이루어져야 한다.

 

밤이라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그것도 은밀하게, 타인의 부재 속에서만 행해져야 한다. 그것이 바로 육체적인 사랑이다. 하지만 그 사랑의 맡바탕에는 반드시 이성적인 영혼의 교감, 영혼의 부분적 합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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