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소멸>
시간이 갈수록 사랑은 점점 희미해지고, 강도는 떨어진다. 두 사람을 꼭 붙잡고 접착시키는 힘이 약해진다. 그것은 곧 사랑의 변질을 의미한다. 서글픈 사랑의 종말을 뜻한다.
이것 때문에 사랑의 불행은 시작된다. 희미해지는 과정, 사랑이 초점을 잃고 방황하게 되는 순간, 사람들은 직감으로 느낀다. 자신의 사랑이 예전과 달리 변해가고 있음을 예감한다.
사랑처럼 허망한 존재도 없다. 있다가 사라지는 빛처럼, 실종되면 그 흔적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자신의 가슴 속에, 핏 속에 떠돌아다는 파편만 남아서 가슴을 찌르고, 피를 나게 만드는 유령이 된다.
보이지 않는 사랑을 쫓아다니고, 추상적인 사랑에 매달리면서 구체적인 현실을 무시하려고 들었던 사람들은 곧 사랑의 진실을 깨닫고 가슴을 친다.
아무 가치 없는 사랑에 걸었던 자신의 가치가 허무하게 무너져버렸다는 사실 때문에 실망을 하고, 때로는 분노를 느끼기까지 한다. 그래서 심한 자괴감에 빠져버린다.
프랑스의 롤랑 바르트도 사랑의 소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페이딩(Fading) - 사랑하는 이의 수수께끼 같은 무관심이나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것도, 또는 세상 사람이나 그의 적수, 다른 누구를 위해 말해진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는 이가 온갖 접촉에서 물러난 것처럼 보이는 고통스런 시련.
그 사람이 페이딩에 사로잡힐 때, 그것은 아무런 이유도, 끝도 없는 것처럼 보여 내 마음을 불안케 한다. 서글픈 신기루마냥 그 사람은 멀어지고, 무한으로 옮겨져, 나는 그를 쫓으려다 기진맥진해진다.>
- 사랑의 단상, 롤랑 바르트 지음, 김희영 옮김, 162~168쪽에서 -
그러므로 사랑을 처음 시작할 때, 우리는 사랑이 소멸할 수 있는 존재임을 알아야 한다. 영원불멸할 수 없음은, 인간 자체가 그렇듯이, 인간이 만드는 사랑도 당연히 소멸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