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교수가 누드화를 그리는데, 모델은 모두 외국 여성으로 하였다

 

맹 교수는 바이올린 연주실력도 상당하고, 틈틈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피카소풍이어서 돈을 주고 사려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맹 교수는 자신이 애써 그린 그림을 고아원이나 양로원 에 기부는 해도, 돈을 받고 다른 사람에게 파는 일은 하지 않았다.

 

그리고 늘 하는 말이 나중에 자신이 죽을 때에는 자신이 그린 그림 중에서 수중에 남아있는 모든 그림은 불에 태워서 없애버리겠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누드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대상은 모두 외국 여자였다. 한국 여자는 한 사람도 없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맹 교수는 누드화를 그릴 때 외국 여자를 모델로 해서 그리면 아무리 오랜 시간 그려도 괜찮은데, 한국 여자를 모델로 해서 그리면 성욕을 도저히 참을 수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람들은 그런 맹 교수를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그렇다면 차라리 여자를 모델로 하지 말고 남성을 모델로 하면 괜찮지 않겠느냐고 했다. 그랬더니 맹 교수 말은, 언젠가 한번 그런 시도를 했다가 모델인 남성이 성욕을 참지 못하고 맹 교수를 강간하려고 했기 때문에 크게 봉변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했다. 그래서 남성은 누드 모델로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고 큰소리로 떠들었다.

 

아무튼 맹 교수가 최근에 그리고 있는 누드화는 대부분 그림 실력이 없어서 그런지 대체로 마네킹을 그린 것 같이 보였고, 예술적 가치는 전혀 없었다. 그리고 그림 속의 모델들은 대개 오랫동안 목욕을 하지 않은 것처럼 지저분해 보였다.

 

그래서 사람들은 차라리 돼지나 뱀을 그리면 좋겠다는 제안도 했지만, 워낙 자신이 하는 일에 소신이 강하고 고집이 셌기 때문에 맹 교수는 절대로 그런 충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맹 교수는 매년 헌혈을 하고, 불쌍한 이웃을 돕는 일에 앞장섰다. 연탄나르기, 집짓는 봉사활동, 모심는 농촌봉사활동 등도 열심히 했다. 대학교에 출퇴근할 때에는 자동차 대신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언젠가는 자전거를 타고 빙판길에 넘어져서 왼쪽 다리가 골절되는 부상을 입었는데, 그때 넘어지면서 걸어가던 여학생 다리까지 부러뜨려 큰 화제가 되기도 했다.

 

맹 교수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고 학교에 사표를 제출했지만, 학생들이 학교측에 강력하게 청원을 해서 사표는 반려되었다.

 

맹 교수의 자전거 때문에 다리가 부러진 여학생은 그 해 있었던 미스코리아선발대회에 출전하려고 비싼 돈을 들여서 코칭을 받고 있었는데, 재수 없게 맹 교수 옆을 지나가다가 다리가 부러져서 대회에 출전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 여학생은 정말 재수가 없는 여자 같았다. 그 전 해에도 미스코리아 지역예선대회에 나가려고 준비를 다 해놓고 있다가 그 전날 택시를 타고 가다가 뒤에서 큰 트럭이 택시를 들이받아 병원에 입원하느라고 출전을 못했다. 한번은 재벌 4세의 남자를 소개팅으로 만나려고 했다가 식중독을 일으켜 대신 친구를 내보냈고, 그 친구는 여학생 대신 재벌 4세 남자를 만나 오랫동안 연애를 하고, 결국 헤어질 때 10억원의 거액의 이별위로금 내지 전별금을 받았다.

 

그러나 그 여학생과 맹 교수는 같은 정형외과를 다니면서 서로 가깝게 되었고, 서로 얼짱이라는 인식이 공유되면서 사고는 천재지변으로서 맹 교수의 잘못은 전혀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 두 사람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지만, 주변 사람들은 자전저 사고를 계기로 만나서 서로 연인이 되었다는 가짜뉴스가 한 동안 떠돌기도 했다.

 

원래 제대로 하면 사고를 야기한 맹 교수가 그 여학생의 치료비를 물어주어야 했지만, 그 여학생 아버지가 부동산투기로 돈을 많이 벌고 있어, 여학생 집에서 오히려 맹 교수를 동정하고, 사고처리과정에서 자신을 잘못을 크게 뉘우치고, 여학생의 부상에 대해 깊이 마음 아파하고, 자주 만나서 위로해주었던 정상을 참작해서, 여학생 아버지는 맹 교수에게 타고 다니라고 최고 비싼 자전거를 하나 사서 보냈다.

 

그 자전거는 외국에서 수입해 온 것인데 무려 천만원이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자전거를 여학생이 직접 타고 가지고 와서 맹 교수에게 전해 주려고 하다가, 오는 도중 어떤 중학생이 자전거를 타고 오다가 여학생 자전거와 부딪쳐서 또 사고가 났다.

 

여학생으로부터 핸드폰으로 사고 소식을 들은 맹 교수는 강의를 하다 말고 그냥 뛰어나가 자신의 자전거로 급히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수업을 재미 없게 듣고 있던 학생들은 맹 교수 집에 불이 나서 가족들이 모두 타죽은 것으로 알았다. 아니면 맹 교수가 무슨 큰 죄를 저질러서 집에 검사와 검찰수사관들이 갑자기 압수수색을 나온 것으로 알았다.

 

그렇게 허겁지겁 여학생에게 달려가던 맹 교수는 앞에서 빠른 속력으로 달려오던 전동 킥보드와 충돌하는 사고를 당했다. 맹 교수는 옆으로 나가자빠졌지만 아픈 통증은 잊어버리고 오히려 킥보드로 사고를 낸 깡패 같은 건달에게 미안하다고 사과를 하고 곧 출발하려고 했다.

 

그러자 그 깡패는 자신이 잘못해서 맹 교수의 자전거를 박았음에도 불구하고 맹 교수에게 무슨 약점이 있는가 싶어서 맹 교수를 붙잡고 음주운전 아니냐고 따졌다. 그리고 사고를 냈으면 킥보드 수리비를 물어내라고 했다.

 

맹 교수는 수업 하다가 왔는데, 무슨 음주운전이냐고 물었다. 그리고 자전거 타는데 무슨 음주운전이냐고 마랬다. 깡패는 맹 교수의 입에서 더러운 악취가 너무 심하게 나서 자신이 고통스럽다고 하면서 경찰을 부르겠다고 했다. 음주측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맹 교수는 기가 막혔다. 화가 나서 당잘 폭행을 가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잘못 먼저 때렸다가는 그 깡패의 체형으로 봐서 맹 교수는 갈비뼈 열대 이상은 나갈 것 같았다.

 

그런데 빨리 여학생에게 가야 할 절박한 상황이었으므로 맹 교수는 그 깡패에게 현금 10만원을 꺼내주고 미안하다고 했다. 그랬더니 그 깡패는 웃으면서 앞으로는 자전거를 타고 다닐 때 전동 킥보드가 최우선이니까 진로를 양보하고 사고를 방지할 주의의무를 다 하면서 조심해서 다니라고 훈시를 했다.

 

맹 교수는 알았다고 하면서 다시 자전거를 타고 시속 40킬로미터로 달렸다. 그 깡패를 향해서 뒤로 돌아서 침을 세 번 크게 뱉었다.

 

맹공희 교수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주변 모든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했다. 비판적인 시각에서 보면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었다. 맹교수가 젊은 나이에 어떻게 돈을 벌었는지는 모르지만, 호화주택에서 살고 있었다.

 

그는 경제의 민주화, 서민경제를 부르짖고 있었지만, 자동차는 벤츠를 타도 다녔다. 그것도 빨간 색 벤츠였다. 학생들은 그를 BR이라고 불렀다. Bentz Red라는 뜻이었다. 신입생 중 일부는 선배들이 맹교수를 비알(BR)이라고 부르니까, 설명을 듣기 전까지는 ‘빌어먹을’이라는 비속어로 이해하고 있었다.

 

신입생들은 처음에는 맹교수가 강의도 잘 못하고, 인간성이 나쁜 교수인 줄 알고 있다가 시간이 가면서 그의 진면목을 알게 되면, ‘빨간 벤츠’는 신세대의 성공 신화가 되었고, 젊은이의 우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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