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 짝사랑하는 여자의 애인이 나타나 서로 목숨을 건 싸움을 벌이다
민첩은 공칠의 가족관계에 대해 상세하게 물어보았다. 특히 공칠의 아버지에 대해 여러 가지를 물어보았다. 공칠은 아무 생각없이 모든 것을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면접을 마치고 나왔다. 차가운 공기가 극심한 해방감을 안겨주었다. 마치 죽은 사람과 폐쇄된 꽉 막힌 동굴 안에서 언어의 유희를 하다가 추방된 느낌이었다.
민첩은 깜짝 놀랐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하더니, 허공칠은 민첩 아버지 나질속과 원수지간인 허정육의 아들이었다. 민첩은 아버지와 공칠 아버지 사이에 있었던 옛날 일을 아주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나질속이 25살 때 아주 좋아하는 여자가 있었다. 정숙경은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하면서, 주로 동물과 여자의 그림을 그렸다.
모든 그림에 여자와 동물이 함께 공존하는 장면을 그렸다. 여자는 약간 남성스럽게 생겼고, 동물은 약간 여성스럽게 생겼다. 여자가 동물을 안고 있는 장면이거나 동물과 싸우는 장면을 신비스럽게 그렸다. 사람들은 숙경의 그림에서 이상한 생명력이 느껴진다고 했다.
나질속은 숙경에게 푹 빠졌다. 일방적인 짝사랑이었다. 숙경의 환심을 사기 위해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난리를 쳤지만 숙경은 요지부동이었다. 우둔을 사람 취급하지 않았다.
어느 날 질속은 참을 수 없어 숙경이 혼자 외출하는 것을 뒤따라가서 붙잡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사랑해요. 같이 식사 해요.” 숙경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더니 말했다. “갑자기 무슨 사랑이예요? 나는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요.”
숙경은 이렇게 말은 하면서도 우둔을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들어간 레스토랑은 호숫가에 있었다. 때는 은행잎이 아주 진하게 변한 가을이었다. 선선한 바람이 가슴을 파고 들어오고 있었다.
창밖으로 연인들이 팔장을 끼고 다정하게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레스토랑에서 같이 식사를 할 때 숙경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질속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질속은 와인을 시켰다. 숙경도 좋다고 했다. 두 사람은 와인을 마셨다. 가을의 정취 때문에 술이 제멋대로 들어갔다. 두 사람은 취했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두 사람은 밖으로 나와 걸었다. 자연스럽게 팔장을 꼈다. 벤치에 앉아 있다가 질속은 술에 취해 잠이 들었다. 갑자기 어떤 남자가 질속의 머리를 내리쳤다. 깜짝 놀라 눈을 떠보니 공칠의 아버지 허정육이었다.
“이런 못된 인간들 봤나? 남의 애인을 데리고 놀아!” 질속은 아차 싶었지만 상황은 이미 돌아올 수 없을 정도로 깊이 진행된 상태였다. 정육은 말했다. “한번만 더 집적대면 너는 죽을 줄 알아!”
이 일을 겪고나서 질속은 숙경에게 더 이상 가까이 가지 않았다. 한달쯤 지나서 길에서 숙경을 우연히 만났다. 숙경은 질속에게 술을 마시자고 했다. 술집에서 숙경은 울면서 하소연했다.
“허정육은 내가 싫어하는데도 나를 강제로 강간한 다음 꼼짝 못하게 구속하고 있어요. 그 사람을 벗어나기 위해서 서울로 가려고 해요.” 질속은 갑자기 정의감이 솟았다.
‘이 여자를 허정육이라는 악마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해주어야겠다. 그러면 나를 사랑하게 될 거야.’ 며칠 후 질속은 정육을 만났다. “미안하지만, 숙경에게서 손을 떼! 숙경은 당신을 싫어하고 있어.”
두 사람은 무서운 격투를 벌였다. 결과는 질곡의 비참한 패배였다. 전치 12주의 상해를 입었다. 질곡이 숙경 때문에 목숨을 걸고 정육과 결투를 벌이다가 크게 다치자, 숙경은 마음이 움직여졌다.
“나 때문에 고생이 많아요. 정육씨와 정리가 되면 질속씨를 만날게요.” 이 말에 질속은 흥분했다. 몸이 아픈 것은 싹가셨다. 그런데 몇 달 있다 보니 숙경은 정육과 헤어지지 않았고, 오히려 정육의 아이를 임신하고 있었다.
질속은 숙경에게 임신중절수술을 받으라고 했지만, 숙경은 낙태를 하면 천국에 못가고 지옥에 떨어져 유황불에 던져진다면서 절대로 낙태를 하지 않겠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숙경은 여전히 정육은 절대로 사랑하지 않으니 자신이 정육과 헤어지고 질속에게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했다.
5개월이 지난 다음 숙경은 자신이 그린 그림 한 점을 가지고 우둔을 찾아왔다. 배가 표가 나게 불러있었다. 집에서 나와 원룸에서 혼자 생활한다면서 낙태할 것이라고 말했다. 숙경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숙경이 질속에게 준 그림은 숙경 자신을 이미지한 여인이었다. 그림에서 여인은 풀밭에 누워있었고, 하얀 토끼 한 마리가 여인의 배 위에 올라가서 성행위를 하고 있었다. 토끼의 이미지는 질속이었다.
여인의 표정은 토끼의 행위를 아주 더럽게 느끼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토끼는 행복한 표정이었으나, 그렇다고 여인과의 성행위를 아주 간절하게 원하는 것도 아닌 것처럼 보였다. 질속은 숙경이 그림을 통해서 자신을 농락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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