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are my destiny

언제 잎이 나오려나 싶었던 나무들이 이제 제법 초록빛을 띄고 있다. 봄날에는 그 화사한 연분홍치마를 눈부시게 휘날리던 꽃들이었다. 축제를 마치고 다시 수업에 들어간 학생들처럼 다소 차분한 분위기로 접어 들었다.

우리들의 삶의 색깔은 초록이다. 그 초록색은 항상 우리에게 다정하게 다가온다. 삶에 지친 인생길에 새로운 의미를 준다. 그렇게 힘들어하지 말고 이렇게 살라는 상징을 몸소 보여주고 있다. 가을이 오면 낙엽이 되어 떨어질 것이지만, 그때까지는 그런 생각을 하지 말고 꿋꿋하게 살아가자는 글을 대지에 쓰고 있다.

그래서 나는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초록의 치마 속에 둘러쌓인 사랑을 떠올렸다. 그 사랑은 내게 전부다. 모든 생명을 의미한다. 나의 운명이다.

사랑이 운명인 것은 나를 지배하기 때문이다. 나의 모든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몸과 마음은 그의 영향을 받는다. 그의 영혼과 교감을 하지 않으면 기운이 빠져 아무 일도 할 수 없다. 나를 뒷받침해 줄 때 나는 하늘을 날 수 있다. 높이 솟아올라 독수리와 함께 세상을 내려다 볼 수도 있다.

그가 그리움을 진하게 남기는 시간에는 내 영혼의 신음소리를 듣는다. 고독이라는 말과 함께 삶에는 권태가 찾아오고, 황혼이 지는 봄날 저녁에 서산과 마주한다. 뻐꾸기가 먼 곳에서 울면 내 그리움은 땅거미와 함께 통곡을 한다. 내 영혼의 탑을 쌓으며 그곳에 두 이름을 새긴다.

오늘 밤에는 피지 않은 장미를 보고 싶다. 붉은 피를 토해 낼 시간을 기다리는 장미 앞에서 사랑의 인내를 배우고 싶다. 장미는 낯선 사랑을 강하게 거부한다. 숙명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랑을 경멸한다.

장미의 사랑은 오직 한 송이로 충분하다. 장미는 내게 선언한다. You are my destiny 라고 단정한다. 나도 장미에게 약속한다. I am your destiny 라고 파란 잎 위에 쓴다. 밤하늘에서 별들이 사랑의 파편처럼 떨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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