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1)
<지금까지의 줄거리>
◎ 심명훈은 대학생으로서 연상의 여자를 임신시킨 문제로 골치를 썩이고 있던 중, 클럽에서 만난 유부녀를 모텔에서 성폭행한 문제로 부모 속을 썩이고 있다. 그런 가운데, 내부자의 고발로 성훈 아빠가 운영하는 회사에 대한 검찰의 특별수사가 진행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명훈네 가족은 최악의 상황을 맞고 있다.
◎ 지금까지 소설, 작은 운명은 1번부터 100번까지 연재되었다. 편의상 지금부터는 연재번호를 다시 1번부터 새로 시작하려고 한다. 이제부터 1번은 사실상 101번이 되는 셈이다.
<작은 운명 (1) >
지금 명훈 아빠가 공황상태에서 벗어나는 길은 무엇일까? 그 어떤 방법도 없었다. 가만 있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누군가 회사 내부 자료를 빼내서 검찰에 제보를 한 것이다. 그리고 검찰에서는 우리 회사에 대한 많은 자료를 가지고 있다. 빠져나갈 방법이 없다. 그런데 더 검찰에서 회사의 비리와 문제점을 파고 들면, 회사는 부도날 것이고, 나는 징역을 많이 살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그 고통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인가?’
명훈 아빠의 머릿속을 맴도는 것은 아주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회사는 부도나고 자신은 감방에 가는 것이었다. 지금까지 가벼운 행정법규위반사건으로 경찰서에 가서 조사를 받은 적은 있지만, 이번처럼 검찰의 특별수사를 받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수사를 받는 사람은 공포에 질린다. 저 혼자 깊어가는 강물에 빠져 허우적거린다. 밖으로 탈출해서 나와 살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죽음의 덫에 걸려서 절망하고 공황상태에 빠지는 것이다.
사람은 이럴 때 참 외롭다. 아무와 상의를 할 사람도 없다. 설사 상의를 한다고 해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것같다. 부인과 대화를 해도 뽀쪽한 방법은 없었다.
명훈 아빠는 그냥 술이나 마셨다. 담배를 줄로 피었다. 자신의 신체를 학대시키고 마비시킴으로써 잠시나마 무감각해지고 싶었다. 이런 경우에 어떤 사람은 마약을 찾기도 한다. 수면제를 먹고 잠에 들고 싶어하기도 한다.
명훈 아빠로서는 지금까지 열심히 살아온 자신이 너무 억울했다. ‘왜 하필이면 내가 타겟이 된 것인가?’ ‘하나님은 너무 불공평하시다. 무슨 이유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신단 말인가?’
건강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암에 걸렸다는 진단을 받는 사람들이 있다. 60살도 되지 않는 나이에 한참 팔팔하게 사회생활을 하다가, 어느 날 몸이 이상해서 병원을 찾는다. 갑자기 폐암 판정을 받는다. 그것도 폐암 3기라고 한다. 그는 한 순간에 공황상태에 빠지고, 몇 달 또는 몇 년간 병마와 싸우다가 끝내 세상을 떠난다.
전혀 그런 불행이 자신에게 닥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한국 사람 중 20%가 암에 걸리고, 그중에서 폐암에 걸리면 다른 암보다 특별히 호흡곤란으로 심한 고통을 받고 예후가 나쁘다는 사실을 들어보지도 못했던 사람이, 갑자기 폐암 진단을 받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암에 많이 걸려도, 자신만은 암에 걸릴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그건 나중에 70살이 넘고, 80살이 넘었을 때의 이야기로만 생각하고 아득히 먼 훗날의 허상이라고만 생각했다.
검찰수사도 이와 비슷한 성격이 있다. 전혀 예측도 하지 못하고, 자신에게 검찰의 특별수사가 들이닥치고, 법이라는 무서운 창과 칼이 자신의 목을 향해 겨누고, 곧 수갑을 채워 감방에 던져지고, 동물과 같이 끌려다니며 짐승처럼 먹고 자야 할지 모른다는 현실은 완전히 대상자를 돌게 만드는 것이다.
명훈 아빠는 그동안 외국에 출장을 가거나, 여행을 다녀올 때 반드시 양주를 사가지고 들어왔다. 특히 병이 예쁘고, 이름이 멋있는 것, 유명하다는 술은 돈을 아끼고 않고 면세로 사가지고 집안의 장식장에 전시해놓았다. 싸구려 술 이외에는 아까워서 모두 모아놓았다.
특별히 잘 보여야 할 공무원들에게 선물을 할 경우에는 명훈 아빠는 아까워서 병을 따지 못했던 고가의 양주를 기꺼이 뇌물로 바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마다 느꼈던 것은 공무원들은 아무리 뇌물을 주어도 받을 때 고맙다는 말 한마디 뿐이지, 전혀 고맙게 생각하는 것 같지 않았다. 그럼에도 명훈 아빠는 뇌물과 선물을 끊임없이 주면서 사업을 하고 지내왔다.
술에 취한 상태에서 켜져 있는 TV에서 가요무대를 하고 있었다. <이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면/ 희망이 족할까/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히 생각하니 세상 만사가/ 춘몽중에 또 다시 꿈같도다>
아주 옛날 노랜데, 어떤 젊은 여자 가수가 대신 부르고 있었다. 원래 그 노래를 불렀던 가수 이름은 잘 생각이 나지 않는데, 아마 돌아가셨을 것이라는 사실은 분명한 것같았다. 그렇다고 지금 스마트폰으로 저 노래 오리지날로 부른 가수 이름을 찾는다는 것은 미친 짓같았다.
’나도 죽을 판인데, 돌아가신 분 이름을 확인하는 건 무슨 의미가 있어!‘ 몇 달 전만 해도 집안에 아무런 우환이 없을 때 같았으면, 곁에 있는 명훈에게 시켜서 가수 이름을 찾아보려고 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모든 것이 아니다. 세상에 불행은 이렇게 갑자기 온다.
가요무대가 끝나고 TV 채널을 돌리자 뉴스가 나오는데, 어떤 현직 검사가 투신자살했다는 보도를 하고 있었다. 보도하는 아나운서는 아무 표정이 없었다. 고속도로에서 연쇄충돌사고로 3사람이 사망하고, 5명이 부상을 입었다는 뉴스를 보도할 때와 똑 같은 표정, 억양, 감정이었다.
검찰의 수사를 받고, 구속영장실질심사를 앞두고 현직 검사가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는 중압감과 수치심, 억울함 때문에 투신해서 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사망했다는 뉴스였다. 검사가 수사받는 내용은 명훈 아빠가 볼 때 크게 무거운 죄 같아 보이지는 않았다.
“왜 자살을 했을까? 그냥 조사 받고 재판을 받지? 잘못되면 1~2년 징역을 살고 나오면 안 될까? 나이도 많지 않은 검사가 죽다니? 가족들은 어떻게 하라고?’
명훈 아빠는 갑자기 술기운이 더 확 올라왔다. 그걸 보니 더 검찰수사가 무섭게 느껴졌다. 지옥에서 올라온 죽음의 사자 같이 느껴졌다. ‘검사는 사람도 아닐 거야. 레미제라블에서 나오는 자베르 형사처럼 법을 앞세워 남을 죽이는 악마와 같은 존재야. 피도 눈물도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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