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운명 (2)

언젠가 명훈 아빠는 고등하교 친구인 맹사장을 만나 같이 술을 마시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구치소와 교도소 이야기였다. 맹사장은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공부를 열심히 했다. 그래서 서울에 있는 어느 대학교에 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법대에 다니면서 고시공부를 했는데, 이상하게 꼭 아슬아슬하게 떨어지는 것이었다. 같이 공부하는 법대 선배나 후배들이 보면 맹사장 실력은 법대 교수보다 낫고, 판검사보다도 좋은데, 시험만 보면 근소한 차이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운칠기삼이라고 모든 시험은 운이 중요한데, 그놈의 운이 따라주지 않는 것이었다. 한 마디로 재수가 없는 운명이었다.

그래서 맹사장 부모들이 용한 점쟁이에게 가서 점을 쳐보니, ‘맹사장 할아버지 할머니 묘소를 옮겨야 한다’고 했다. 조부모가 제대로 밥도 못 얻어먹고 구천을 떠돌고 있으니 손주가 잘 될 까닭이 있겠느냐고 맹사장 부모를 욕을 하면서 꾸짖었다.

사실 욕을 먹어도 쌀 노릇이었다. 그때서야 고시생인 맹사장도 그동안 왜 떨어졌는지 이해가 갔다. '아! 역시 세상 모든 일에는 인과관계가 있는 것이고, 조상님이 중요한 거야! 이제 됐다.'

그래서 비싼 돈을 들여서 천도제도 지내고, 산소를 명당 자리로 옮겼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산소를 옮긴 다음 맹사장은 오히려 더 큰 점수 차이로 떨어지는 것이었다. 맹사장이 제일 싫어해서 잘 보지 않은 곳에서만 문제가 출제되는 것이었다.

그렇게 10년을 고시낭인으로 지내던 맹사장은 끝내 고시를 포기하고, 맨발로 뛰어서 사업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다. 그러다가 지리산에서 오래 공부를 했다는 어떤 사기꾼에게 사기를 당해서 연쇄부도가 났다. 한순간에 모든 재산을 날리고, 억울하게 사기꾼으로 몰린 맹사장은 징역을 3년 살고 나왔다.

그때 맹사장을 맡았던 젊은 변호사는 인상이 꼭 사기꾼 같았는데, 나중에 이야기 들어보니 그 변호사도 무엇을 잘못해서 그랬는지 구속되어 포토라인에 선 것을 맹사장이 출소 후에 우연히 TV에서 본 적이 있다.

'그런 사기꾼에게 내가 돈을 많이 주고 사건을 맡겼으니 내가 징역을 산 게 당연하지!' 맹사장은 TV를 보면서 다시 한번 세상에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는 이치를 뼈저리게 깨달았다.

맹사장이 징역을 살고 나오니, 부인은 어떤 놈팽이와 도망을 갔다. 어떤 사람 말로는, 부인은 나이 어린 정력이 좋은 건달과 같이 중국인가 베트남인가로 갔다고 했다. 아들 한명은 고등학교도 중퇴하고 가출해서 연락도 없었다. 맹사장은 명훈 아빠에게 교소도에 갔다온 인생 선배로서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이는 동갑인데 남이 못하는 직접 체험을 해서 선배가 된 것이었다.

“교도소라고 해서 나도 처음에는 들어가면 꼭 죽는 줄로만 생각했어. 그런데 막상 들어가보니 사람이란 참 이상한 존재야. 곧 바로 교도소에 적응이 되는 거야. 적응을 하지 않고서는 견딜 수가 없어서 그런 거겠지만, 생각보다 빨리 익숙해져. 나도 놀랐어.”

“아무리 익숙해져도 자유가 박탈당하니까 얼마나 답답하고 고통스럽겠어? 먹는 것고 그렇고, 자는 것도 그럴텐데.”

“물론 그거야 그렇지. 처음에는 억울하게 구속되고 갇혀있으니까 죽고 싶은 마음에 환경은 이차적인 것이 되어 버려. 고소인들과 싸우고, 경찰과 싸우고, 검사와 싸우다보면 몇 달은 그냥 지나가. 재판에 넘어가면 판사는 재판을 아주 천천히 하니까 갇혀 있는 사람은 흥분상태에서 벗어나 지쳐버려. 나중에는 될 대로 되라는 자포자기 심정이 되는 거야. 그리고 교도관이 무섭고 나라는 존재는 망각되어져. 스스로 노예가 되는 거야. 아무 의욕도 없고, 세상이 무섭고, 모든 사람들이 무섭게 느껴져. 심지어 가족 조차도 처음에는 면회를 오다가 지쳐서 그런지 더 이상 면회도 오지 않아. 편지를 써서 보내도 연락이 없어. 그때는 나가서 죽이고 싶을 때도 있었는데, 그것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으니까 스스로 지쳐서 포기하게 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

명훈 아빠는 맹사장이 하는 말이 그다지 실감은 나지 않았다. 그때만 해도 그랬다. 자신과 맹사장은 전혀 다른 환경에 있으니까. 그리고 자신은 절대로 감방에 갈 이유가 없으니까. 점쟁이도 그런 적이 있었다. 맹사장은 사주와 관상, 모든것을 분석해 보면 절대로 관재수는 없다고 단언했다.

“구치소와 교도소에 있으면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돼. 게다가 나는 고시공부를 오래 해서 법을 아니까. 재소자들은 나를 존경하게 돼. 그리고 나에게 많은 것을 물어와. 나는 아는대로 무료로 상담을 해줘. 그렇게 하다보니 법에 대한 실력이 많이 늘어. 왠만한 변호사보다 훨씬 아는 게 많아. 그럴 수밖에 없는 게, 24시간 감방에서 내 문제를 비롯해서 다른 사람들의 형사사건만을 생각하고 보고 듣고 연구하고 있기 때문이지. 사람은 누구나 절실한 환경에서 전문가가 되는 거야. 유대인이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최고의 철학자, 과학자가 되듯이 말야.”

명훈 아빠는 맹사장의 이야기가 신기하게 들렸다. 그렇게 열심히 한 고시공부를 감방에 직접 들어가 써먹다니, 인생의 아이로니였다.

“감방에 있으면,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서 무슨 죄로 들어왔는지를 듣게 돼.”

신입회원은 선배님들에게 공손한 태도로 자신의 범죄사실을 신고한다. 맹사장은 재판장과 같은 입장에서 곁에 많은 배심원들을 데리고 신입회원의 스토리를 청취한다. 국회 청문회장처럼 가끔 사람들은 날카로운 질문도 던진다.

’저는 불우한 환경에서 자라서 배우지도 못하고 부모님도 일찍 여위고 살다보니 절도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이 다섯 번째입니다.‘ 사람들은 절도범에 대해 동정을 한다. 절도범은 자신의 환경이 아니라 범행의 실패에 대해 안타까워한다.

’그때 그 집에 들어갈 때 더 많은 준비를 했어야 했어요. 그리고 CCTV에 얼굴이 찍히지 않도록 했어야 했는데, 실수를 한 거예요.‘

요새는 옛날과 달라서 도둑질도 주먹구구식으로 해서는 안 된다. 아주 과학적인 기법으로 아주 짧은 시간내에 돈이 많은 부잣집에 들어가 사람을 해치지 않고 패물이나 현금이 있는 곳을 찾아내서 빨리 가지고 현장을 이탈해야 한다.

그리고 도로 곳곳에 CCTV가 있기 때문에 나중에 검거되기가 쉽다. 그래서 모자를 눌러 쓰고, 미세먼지를 핑계로 마스크를 쓰고 도주해야 한다. 그리고 침입할 집을 사전에 수십차례 답사해야 한다.

특히 어려운 것은 사람들이 패물이나 현금은 집안에 깊숙이 감추어놓기 때문에 소풍가서 보물 찾기보다 더 어렵다. 이것이 기술인데, 역시 많은 실전 경험에서 노하우가 터득된다.

어렵게 훔친 물건도 장물처분하기가 예전 같지 않은 게 고민이다. 사람들은 감방에서 시간이 가면 도둑으로부터 그 탁월한 절도 솜씨와 풍부한 경험, 좋은 머리에 감탄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적으로는 동정하지만, 같은 감방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그 도둑놈이 또 무슨 도둑질을 하지 않을까 내심 걱정도 하게 된다.

하기야 감방안에서 훔쳐가야 무엇을 훔쳐갈 것이 있겠냐만은,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것처럼, 밖에서는 소를 도둑질 했어도, 감방 안에서는 바늘이라도 훔쳐갈 것이 걱정되는 것은 인지상정이었다. 그런데 우리 속담은 모순이다. 비현실적이다. 경험칙상 바늘 도둑은 평생 늙어도 바늘 도둑으로 남는다. 바늘 도둑이 소도둑질을 할 의지나 능력은 절대 없는 것이다. 뇌물을 먹는 공무원도 장관이나 국회의원이 크게 먹지, 말단 공무원은 언제나 뇌물액수가 근소하다. 떡고물값인데도 이상하게 말단은 징역가고, 파면된다. 높은 국회의원은 뇌물죄로 구속되었다가, 몇 년 후에는 또 국회에서 부정부패를 추방해야 한다고 입에 거품을 품고 있는 장면이 보인다.

같은 감방에 있는 맹사장을 비롯한 젊잖은 재소자들은 신입회원의 죄명이 절도라는 것을 알고 나서부터는 절도범의 얼굴이 왠지 응큰해 보이고, 어두워 보이고, 도둑놈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참 이상한 선입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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