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비가 내렸다. 가을인지 겨울인지 경계가 모호하지만, 나는 누가 뭐래도 가을이라고 생각한다. 내게 무척 소중한 계절이기 때문이다. 비록 짧지만 강한 생명을 가지고 있는 계절이다. 가을이 빨리 가는 건 마치 인생이 짧게 지나가는 것과도 같다. 인생은 짧고 예술은 긴 것처럼, 가을은 짧아도 가을이 남기는 추억은 영원하다.
아름다운 단풍들을 눈 안에 넣고 싶었다. 그래서 차를 운전하면서 라디오를 껐다. 음악을 들으며 단풍을 보아서는 제대로 감상이 안 된다. 소리를 없애고 정신을 집중해서 눈으로만 보아야 단풍의 제멋을 느낄 수 있다. 아니 영혼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 그 은은하면서 삶의 성숙한 품위를 담고 있는 단풍은 나에게 말없이 다가와 인생이란 그런 것이라며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미소짓고 있었다. 나는 염화시중의 미소로 그 의미를 깨우치고 있었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일을 보고, 캠퍼스로 갔다. 도로변에 늘어서 있는 은행나무들의 샛노란 색깔을 보면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평화의 전당에 차를 세우고 내렸을 때 주변의 가을색은 나를 황홀하게 만들었다. 살아 있다는 건, 살아서 이런 가을을 느낄 수 있다는 건 축복이고 행복이라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꼈다.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보내는 시간은 소중한 인생의 장면 장면이다. 공부를 하려는 학생들의 성의를 생각하면 강의 준비를 더 철저하게 하고, 효과적인 지식전달방법을 터득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강의가 끝난 후 몇몇 학생들과의 대화시간도 중요하다. 한 학생이라도 자신감을 가지고 공부를 하고 인생을 보람 있게 살아갈 수 있도록 조언을 해주려고 애쓴다. 그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역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