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간죄(3)
가을사랑
세상에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옛날 애인을 만나 로맨스에 빠져 보려던 가벼운 생각이 이처럼 계속해서 무서운 협박을 당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전혀 모르는 남자를 만나 성관계를 맺게 되었다.
그것은 연애도 아니고 낭만도 아닌 고문이었다. 영숙은 남자의 성적 도구로 전락하였던 것이다. 가정을 파탄나고, 인생을 한 없는 나락 속으로 추락해 버렸다.
이 사건에서 과연 정수의 갑에 대한 간음행위가 강간죄에 해당하느냐가 쟁점으로 되었다.
원심판결은 영숙의 진술에 의하더라도 영숙은 옛 애인으로 행세한 정수와 그 얼굴을 정확히 보지 못한 상태에서 1회 성관계를 가진 후 여전히 옛 애인으로 행세하는 정수로부터 전화로 ‘정수를 만나기 위하여 애를 업고 모텔로 들어가는 영숙의 모습과 정숙을 만났던 모텔 방호수를 사진으로 찍은 사람이 영숙과의 성관계를 요구한다’는 말을 듣는 등
마치 사진 찍은 자의 성관계 요구에 불응하면 사진이 영숙의 집으로 보내지고 옛 애인과 성관계를 가진 사실이 남편과 가족들에게 알려질 듯한 태도에 협박받아 ‘사진 찍은 자’로도 행세하는 정수로부터 간음을 당하게 되었고,
그 외에는 정수로부터 별다른 폭행이나 협박을 받은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위 각 간음현장에서도 정수로부터 어떠한 폭행이나 협박을 당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므로, 위와 같은 협박은 영숙의 의사에 반하는 정도라고 볼 수는 있을지언정 영숙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러한 원심판결이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정수의 협박내용이 혼인 외 성관계 사실을 폭로하겠다는 취지의 것 이외에도 마치 ‘사진 찍은 자’가 수명의 부하를 거느리고 있다거나 그 성질을 건드리지 마라는 등 여러 내용을 포함하고 있는 점,
정수는 실제로 피해자의 가족이 출근이나 등교한 직후 아침시간대에 피해자와 어린 아들만 있는 영숙의 집까지 찾아가 수회에 걸쳐 영숙을 간음하였으며 때로는 영숙의 아들에게 영숙의 남편 휴대전화번호를 물어보거나 새벽에 영숙의 집에 전화하기까지 한 점,
정수는 수회에 걸쳐 영숙과 통화하거나 영숙을 간음하는 과정에서 정수의 1인 2역 행동에 쉽게 속아 넘어가 심한 압박감에 시달리고 있는 영숙의 심리상태를 교묘하게 간파하여, 상황과 필요에 따라 “때로는 ‘사진 찍은 자’로, 때로는 옛 애인으로” 행세하면서, 영숙이 성관계에 불응할 경우 성관계 사실을 폭로하거나 ‘사진 찍은 자’가 마치 자신의 폭력조직 부하들을 동원하여 피해자의 신체 등에 위해를 가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영숙을 협박하고 ‘사진 찍은 자’로 행세하면서 수회에 걸쳐 영숙을 간음하기에 이른 점,
한편 영숙으로서는 자신을 협박하고 있는 ‘사진 찍은 자’가 폭력조직을 거느리고 있는 것으로 오인하고 있는 데다가 그 정확한 신원을 전혀 모르고 있는 관계에 있어 ‘사진 찍은 자’는 성관계를 폭로하더라도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은 채 영숙만이 심각한 불이익을 당하게 될 상황에 처해 있고, 따라서 ‘사진 찍은 자’의 계속되는 협박에 영숙이 불응할 경우 언제든지 협박의 내용과 같은 성관계 폭로가 현실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위협을 더욱 크게 느꼈을 것으로 예상되는 점 등,
이 사건 협박의 내용과 정도, 협박의 경위, 이 사건 ‘사진 찍은 자’와 영숙의 신분이나 사회적 지위, 영숙과의 관계, 영숙의 가족상황, 간음 당시와 그 후의 정황, 이 사건 협박이 영숙에게 미칠 수 있는 심리적 압박의 내용과 정도를 비롯하여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볼 때,
정수의 위와 같은 협박은 영숙을 단순히 외포시킨 정도를 넘어 적어도 영숙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었다고 보기에 충분하다고 할 것이므로, 강간죄가 성립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하였다(대판 2007. 1. 25. 2006도597).
대법원은 강간죄가 성립하려면 가해자의 폭행·협박은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어야 하고, 그 폭행·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었는지 여부는 그 폭행·협박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가해자가 폭행을 수반함이 없이 오직 협박만을 수단으로 피해자를 간음 또는 추행한 경우에도 그 협박의 정도가 피해자의 항거를 불가능하게 하거나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의 것이면 강간죄가 성립하고, 협박과 간음 사이에 시간적 간격이 있더라도 협박에 의하여 간음이 이루어진 것으로 인정될 수 있다면 달리 볼 것은 아니라고 판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