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소리
가을사랑
1. 간밤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 창밖에서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누워있었다.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드는 가을을 재촉하는 빗소리다. 비는 우리에게 소리로 다가온다. 자신의 존재를 은은한 소리로 알려온다. 빗소리를 들으면 우리는 많은 것을 느끼게 된다. 빗소리가 꿈속에서 나를 부르고 있었다. 감기가 들어 열도 나고 머리는 아팠지만 빗소리에 취해 나는 꿈길을 걷고 있었다. 가을이 오면, 나는 제일 먼저 가을비를 떠올릴 것이다. 낙엽이 떨어지고 그 위에 떨어지는 빗방울 보면서 그 무엇을 생각할 것이다. 내게서 멀어진 아픔과 슬픔, 그리고 내 가슴속에 가득 채워진 뭉쿨한 추억들을 하나씩 새기면서 가을비를 맞을 것이다.
2. 아침 일찍 꼬마들이 떠났다. 새벽 7시에 집을 나서 공항으로 갔다. 두 달 동안 한데 어울려 지냈던 흔적을 남겨놓고 떠났다. 잠이 덜 깬 상태에서도 가야할 길을 가는 것이다. 흐트러진 물건들을 보니 마음이 찡하다. 그래도 원래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3. 출근길에 병원에 들렀다. 감기만 들어도 힘든 것을 보면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 알 수 있다. 주사를 맞고 약을 지어왔다. 멍한 상태에서 사무실까지 갔다. 출근해서는 할 일이 많아 잠시도 쉬지 못했다. 벌금을 선고받고 대법원까지 올라갔다가 재심청구를 두 번이나 했던 사람을 만났다. 개별적인 사건은 각 개인에게는 그 어느 사건보다도 소중한 일이다. 모두들 최선을 다해 자신의 일을 처리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내 설명을 듣고 모처럼 용기가 생겼다고 하니 나도 보람을 느꼈다.
4. 모 단체 사람들을 만나고, 장 사장님을 만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이 다 되어 서둘러 사무실을 나왔다. 가을학기가 시작되는 날이다. 하늘은 맑고 높았다. 9월이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내가 그토록 기다렸던 가을이고, 9월이 되었다. 이제 익숙해진 길을 따라 강의실에 도착했다. 첫 강의를 마치고 청학식당으로 가서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7시에는 개강식이 있어 참석하였다. 행사를 마치고 나오니 많이 어두워졌다. 제한된 시간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