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 성폭력범죄

 

가을사랑

 

최근에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범죄에 대한 처벌이 미흡했다는 지적이 강하게 일어나고 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어떤 개별적인 사건에 있어서만이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장애인의 특성상 이들에 대한 성폭력범죄는 일반인에 대한 성폭력범죄와 달리 범죄의 초기 단계에서부터 거의 무방비상태이고, 범인이 장애인에 대한 성폭력을 쉽게 저지르며, 범죄 후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장애인이 피해자진술을 제대로 하지 못해 많은 경우 악질적인 범인을 제대로 처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원래 성범죄는 약한 여자를 대상으로 한다. 신체적으로 연약한 여자, 나이가 어린 소녀, 정신연령이 낮은 장애인 등을 주된 범죄의 타겟으로 삼는다. 여자 권투선수나 여자 태권도 유단자, 늙고 병든 여자를 상대로 강간을 하는 경우는 드물다. 강간죄는 상대의 반항을 제압한 다음 궁극적으로는 강제로 성행위를 하려는데 목적이 있다. 때문에 일단 신체적인 저항을 쉽게 제압할 수 있는 상대를 고르는 것이다.

 

자유민주사회에서 개인은 성적 자기결정권을 가진다. 누구든지 성행위를 할 것인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고, 인격적 성숙을 기초로 한 성행위를 할 자유와 권리를 보장받는다. 그러므로 자유의사에 반해 강제로 성행위를 하는 것은 형법에 의해 중대한 범죄로 처벌될 수밖에 없다.

 

강간죄는 강제추행과 달리 여자로서의 성적 수치심을 극도에 이르게 하고, 원치 않은 임신을 가져올 위험성이 있으며, AIDS와 같은 치명적인 질병을 전염시키기도 한다. 이런 이유로 강간죄는 강제추행죄에 비해 그 불법이 가중되는 범죄구성요건이라고 할 수 있다. 생각해 보라. 아무런 애정도 느껴지지 않는 낯선 남자가 갑자기 달려들어 처녀막을 파열시키고, 혼자 성적 욕구를 충족시킨 결과 임신을 시켜 낙태수술을 해야 하고, 성병을 옮겨 비뇨기과에 다녀야 한다고 하면 피해자로서는 얼마나 치욕적인 신체적 정신적 상처를 입게 될 것인가!

 

형법은 기본적인 구성요건으로 강간죄를 규정하고 있고,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특수강도강간죄와 특수강간죄를 가중처벌하고 있고, 공중밀집장소에서의 추행과 통신매체이용음란죄를 처벌하는 특별규정을 두고 있다.

 

강간죄가 이와 같이 중대한 개인적 법익을 침해하는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형법은 강간죄를 친고죄로 규정해 놓고 있다. 친고죄라 함은 강간을 당한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 검사가 범인을 재판에 회부할 수 있는 죄를 말한다. 강간죄를 친고죄로 한 이유는 강간을 당한 여자의 입장에서 처벌을 원치 않는데 굳이 처벌한다면 수사와 재판 과정을 통해 피해자의 명예가 더욱 훼손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록 강간은 당했지만 그런 사실을 잊어버리고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사회적으로 강간사실이 공개되면 피해자는 이중 삼중의 피해를 볼 우려가 있다. 또한 강간은 했지만, 사후에 피해자가 범인을 용서해주고, 결혼할 의사를 가진다면 강간죄로 처벌하는 것이 불합리한 경우도 있다.

 

다만, 강간치상죄나 특수강간의 경우에는 비록 고소가 취소되어도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특별규정을 두고 있다. 이것은 강간으로 인해 상해를 가하거나 흉기를 이용해서 강간을 하는 경우에는 죄질이 나쁘기 때문에 비친고죄로 하고 있는 것이다.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부녀에 대한 폭행 협박이 있어야 한다. 폭행이란 사람에 대한 유형력의 행사를 말하고, 협박이란 해악을 통고하는 것을 말한다. 강간죄에서의 폭행협박은 상대방의 반항을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로 충분하다.

 

문제는 강간죄에 있어서 피해자인 여자의 반항을 제압하고 성행위를 한다는 것을 요체로 하는 범죄의 구성요건이 충족되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데 있다.

 

많은 경우 범인은 강간을 하고도 강간이 아니고 화간이라고 주장한다. 강간과 화간의 차이는 어디에 있을까? 강간은 강제로 성행위를 한 것이고, 화간은 강제가 아니고 상호 합의하에, 다시 말하면 상대방의 승낙을 받아 성행위를 한 것을 말한다. 강간으로 인정되면 무겁게 처벌받게 되고, 화간으로 인정되는 범죄는 성립하지 않으며, 검찰에서는 무혐의결정을 하고, 법원에서는 재판을 통해 무죄판결을 선고하게 된다. 이 때문에 실제 강간고소사건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동의 내지 승낙이 문제되고, 범인이 피해자의 반항을 물리적으로 제압했느냐 하는 것이 문제된다. 특히 모텔에 함께 들어가 있다가 강간을 당했다고 고소를 하는 경우에 이런 문제가 특히 심각하게 부각된다. 강간죄는 여러 사람이 있는 공개적인 장소에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두 사람만이 있는 은밀한 폐쇄된 공간에서 강간죄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두 사람이 상반된 진술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검사나 판사가 사실의 진위 여부를 판단하기가 어렵다.

 

아동이나 장애인의 경우에는 정상적인 성년과 달라서 강간을 당할 때 제대로 반항하기 어렵고, 어떤 경우에는 강간을 당하는 사실에 대한 인식 자체가 부족할 때가 있다.

 

범인은 이러한 사정을 최대한 이용해서 강간을 하기도 하고, 나중에 수사나 재판을 받을 때 처벌을 면하기 위하여 피해자의 불완전한 점을 최대한 이용하게 된다. 이때 잘못하면 진실을 밝히지 못하고, 처벌을 하지 못하거나, 솜방망이 처벌에 이르게 되어 사회적인 비판에 직면하게 된다. 법의 한계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와 관련하여 대법원은 피해자의 반항 여부에 대한 재미 있는 판결을 내놓았다. 즉, 강간죄가 성립하기 위한 가해자의 폭행 협박이 있었는지 여부는 그 폭행 협박의 내용과 정도는 물론 유형력을 행사하게 된 경위, 피해자와의 관계, 성교 당시와 그 후의 정황 등 모든 사정을 종합하여 피해자가 성교 당시 처하였던 구체적인 상황을 기준으로 판단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사후적으로 보아 피해자가 성교 이전에 범행 현장을 벗어날 수 있었다거나 피해자가 사력을 다하여 반항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가해자의 폭행 협박이 피해자의 항거를 현저히 곤란하게 할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섣불리 단정하여서는 안 된다는 취지이다(대판 2005.7.28. 2005도3071).

 

성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8조는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 여자를 간음하거나 사람에 대하여 추행한 자는 형법 제297조(강간) 또는 제298조(강제추행)에 정한 형으로 처벌한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는 장애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호법익으로 하는 것으로서, 원래 1994. 1. 5. 법률 제4702호로 제정될 당시에는 단순히 “신체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을 이용하여…”라고 규정하고 있던 것을 1997. 8. 22. 법률 제5343호로 개정하여 위와 같이 규정하기에 이른 것이다.

 

위와 같은 법률 개정은 장애인복지법에 명시된 신체장애 내지 정신장애 등을 가진 장애인을 망라함으로써 장애인의 범위를 확대하는 데에 개정 취지가 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할 때, 위 규정의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로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음”이라 함은,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 그 자체로 항거불능의 상태에 있는 경우뿐 아니라 신체장애 또는 정신상의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심리적 또는 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하거나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이른 경우를 포함하는 것으로 보아야 하고, 그 중 정신상의 장애가 주된 원인이 되어 항거불능인 상태에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피해자의 정신상 장애의 정도뿐 아니라 피해자와 가해자의 신분을 비롯한 관계, 주변의 상황 내지 환경, 가해자의 행위 내용과 방법, 피해자의 인식과 반응의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는 것이 판례의 입장이다(대판 2007.7.27. 2005도2994).

 

장애인에 대한 성범죄로서는 심신미약자 간음추행죄가 있다. 이것은 심신미약자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 간음 또는 추행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를 말한다. 형법 제302조에서 규정하고 있다. 미약자라 함은 정신기능의 장애로 정상적인 판단능력이 부족한 자를 말한다. 이러한 심신미약자를 위계 또는 위력에 의하여 간음 또는 추행하는 경우에 심신미약자간음추행죄가 성립하게 된다. 위계라 함은 행위자가 간음의 목적으로 상대방에게 오인 착각 부지를 일으키고 상대방의 그러한 심적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의 목적을 달성하는 것을 말하며, 기망뿐만 아니라 유혹도 포함한다. 위력이란 사람의 의사를 제압할 수 있는 힘을 말한다. 업무상 위력 등에 의한 간음죄란 업무 고용 기타 관계로 인하여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부녀에 대하여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간음하는 경우를 말한다.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죄(청소년강간죄)는 위계 또는 위력으로써 여자 청소년을 간음하거나 청소년에 대하여 추행한 것인바, 이 경우 위력이라 함은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충분한 세력을 말하고,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묻지 않으므로 폭행 협박뿐 아니라 행위자의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지위나 권세를 이용하는 것도 가능하다(대판 2005.7.29. 2004도5868).

 

최근에 영화 도가니의 소재가 된 광주 인하학교 장애인 성폭력사건에서 법원의 재판결과는 일반 국민의 성범죄에 대한 법감정에 제대로 미치지 못해 커다란 파문을 일으켰다.

 

2008년 7월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인화학교 교장의 항소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한 원심을 깨고 고등법원에서는 피고인에게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추징금 300만원을 선고했다.

 

이번에 문제가 되고 있는 장애인 성폭력범죄에서 법원은 피고인의 죄질은 매우 나빴지만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했기 때문에 다른 사건과의 처벌상의 균형을 고려해서 집행유예를 선고했던 것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청소년 성보호에 관한 법률상 청소년 강간인데, 이 죄는 피해자의 고소가 있어야만 처벌할 수 있는 친고죄에 해당하고, 항소심 재판 중 피해자가 고소를 취소했기에 고소의 효력이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1심 판결이 선고되기 전에 고소가 취소됐다면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해야 했기에 설사 2심에서 취소됐더라도 양형에서는 고려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설명이다. 또한 피해자가 장애인이기에 진정한 의사에 따른 고소 취소인지 재판부가 검토했지만 적법한 합의와 고소 취소가 아니라고 볼 수 없었다며 2심 재판 중 고소 취소된 다른 성폭행 사건들을 검토했지만 실형이 선고된 경우가 없어 다른 사건과의 형평을 고려할 수 밖에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원이 장애인 성범죄 구성요건인 항거불능 조항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해 가해자에게 관대한 처벌이 이루어졌다는 지적이 많았다. 가해자가 지적장애인에게 폭력적으로 접금하더라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특수성을 법원이 충분히 고려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있었다.

 

대법원에서는 성폭력범죄는 마지못해 합의해 주는 경우가 많아 일반 사건 합의와 다르게 취급하는 등 특수성을 양형에 반영하고, 남녀 판사가 함께 재판부를 구성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양형위원회도 성범죄 양형기준을 강화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고 한다.

 

미성년자 성범죄에 대한 공소시효를 폐지하자는 주장도 만만치 않다. 미성년자 의제강간죄에서도 상한 연령을 13세에서 더 높이자는 주장도 대두되고 있다. 그리고 미성년자가 피해자인 경우 부모 합의로 피해자 본인의 의사를 무시하고 처리되는 경우가 있는데, 미성년자일지라도 본인 의사를 더 존중할 필요가 있고, 합의의 진정성이 의심되는 경우 법원이 합의 당사자를 증인으로 소환해서 진정성을 따져보독 하는 절차를 도입하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아무튼 이번 인하학교 장애인 성폭력사건을 통해 우리는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수사 및 재판에 있어서 장애인이 피해자인 경우에 특별한 배려를 충분히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장애인은 범죄를 당할 때 자신을 충분히 방어하지 못한다. 그래서 손쉽게 범죄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피해를 당한 후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자신의 피해상황을 충분히 증명하지 못한다. 그래서 고소를 취소하기도 하고 범죄와의 투쟁에서 자포자기하기도 한다. 이런 점을 앞으로는 특별 배려를 해야 한다. 그래야 장애인의 진정한 인권을 보장해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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