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자의 업무범위와 손해배상책임
가을사랑
Ⅰ. 글의 첫머리에
최근에 어떤 건축사를 만났다. 사연인즉 건물신축공사에서 설계는 다른 사람이 하고, 자신은 감리만 맡았다. 건축공사를 맡은 사람과 건축주 간에 공사대금 문제로 분쟁이 생겨서 감리보고서 작성에 필요한 서류를 받아오지 못해서 감리보고서 작성이 지연되었다. 그 때문에 준공검사를 받지 못하게 되자, 건물주는 공사업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시작했다. 건축주는 이 소송에서 감리자도 피고로 포함시켰다. 감리를 담당했던 건축사도 연대하여 손해배상을 하라는 취지로 소장(訴狀)을 낸 것이다.
건축사가 분쟁에 휘말리는 경우는 대개 공사를 하는 사람이 부실하게 공사를 하거나 공사대금, 지체상금 때문에 건축주와 분쟁이 생겼을 때, 그 불똥이 건축사에게까지 튀는 경우가 많다. 감리자를 상대로 청구하는 금액은 감리비로 받은 금액보다 상당히 많은 금액이었고, 만일 소송에서 패소하면 상대방 원고의 소송비용까지 부담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상대방이 변호사를 선임한 경우 패소하면, 그 변호사 비용까지 일부 부담해야 한다. 소장을 받은 다음 날로부터 연 15%의 지연손해금까지 배상해야 한다. 때문에 소송에서 패소할 가능성이 높으면 가급적 재판을 빨리 끝내도록 해야 한다.
건축사 입장에서는 무척 곤혹스럽다. 법을 잘 모르는 입장에서 소송을 당하니, 일단 답변서를 제출해야 한다. 답변서도 제출하지 않고 있으면, 원고 주장이 그대로 인정되고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 청구해 온 손해배상금액도 적지 않을 뿐 아니라, 감리자는 전혀 잘못이 없는데 소송을 당하니 억울하기 짝이 없었다. 그리고 소송을 당한 입장에서 변호사를 선임하자니 상당한 비용이 들어가니 그것도 쉬운 문제가 아니다.
필자는 대한건축사협회 자문변호사로서 오랫동안 일해 오면서 건축분쟁사건을 많이 취급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건축사가 소송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장시간 대화를 통해 상세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그러면서 감리자의 책임에 관한 일반적이고, 체계적인 설명을 건축사지에 게재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종전부터 필자는 대한건축사협회에서 건축사가 당하는 여러 가지 소송을 유형별로 정리하여 실제 있었던 사례를 중심으로 건축사가 대응할 수 있는 자료집을 만들어 배포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그래야 건축사가 분쟁이 생기면 변호사비용을 들이지 않고 ‘나홀로 소송’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여기에서는 필자가 소송을 당한 건축사와 상의한 내용을 중심으로, 감리란 무엇인가? 감리계약이란 어떤 성질이고 어떤 내용으로 체결되는가? 감리자의 준수의무는 무엇이고, 감리자가 감리를 잘못하면 어떤 법적 책임을 지는가? 등을 순차로 살펴본다. 주로 법원의 판례를 통한 실제 사례를 들어 설명하기로 한다.
Ⅱ. 감리자 상대로 소송이 늘고 있다
최근에 건축공사와 관련하여 감리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를 하는 건축주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 공사가 잘못되면 공사업자를 상대로 소송을 해야 하는데, 일단 감리자까지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다.
감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기 때문에 공사상 하자가 발생한 것이고,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공사업자와 연대하여 배상하라는 취지다. 적은 규모의 공사에서 건축업자는 대부분 영세하기 때문에 법원에서 연대하여 손해배상을 하라는 판결이 나와도, 건축주 입장에서는 우선 돈을 받기 쉬운 감리자를 상대로 강제집행을 하게 된다.
손해배상에 관한 연대배상판결을 받게 되면, 감리자는 먼저 전체 금액을 건축주에게 배상하고, 나중에 그중 일정 부분을 공사업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해서 받아내야 한다. 공사업자는 재산이 없는 무자력자일 경우가 많아 결국 감리자는 혼자 전체 금액을 손해보고 말게 되는 결과가 된다.
설계를 맡아서 설계 잘못 때문에 손해배상을 하는 경우는 그래도 설계비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덜 억울하다. 그런데 얼마 되지 않은 금액을 감리비로 받았던 건축사 입장에서는 감리잘못을 이유로 손해배상을 거액 물어내면 정말 억울한 일이다.
실무에서 보면 건축물에 대한 하자가 발생하면 설계 자체를 문제삼기 보다는 감리를 잘못했다고 주장하는 사례가 많다. 실제로 설계 자체를 잘못해서 건축물 안전에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간혹 구조계산을 잘못해서 문제가 생기는 경우는 있지만, 설계 자체를 부실하게 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므로 감리자는 감리계약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계약서 자체를 잘 읽어보고 체결해야 한다. 법령상 감리자는 어느 정도 철저하게 감리업무를 수행해야 하는가를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감리과정에서도 나중에 책임을 뒤집어쓰지 않도록 제반 서류나 사진, 증거자료를 미리 준비해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경우 없는 건축주가 소송을 걸어오면 완벽하게 대응을 해서 배상책임이 인정되지 않도록 하고, 그런 다음에는 건축주를 상대로 소송비용까지 받아내야 한다. 대한건축사협회에서도 건축사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해서 건축사가 억울한 소송을 당한 경우, 적극적인 법적 지원과 기타 필요한 자료 제공 등 소송지원을 해주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Ⅲ, 감리자의 업무범위는 무엇인가?
건축물의 설계와 감리는 건축사의 고유한 권한이며, 가장 기본적인 업무에 속한다. 감리(監理)라 함은, 건축물 건축설비 또는 공작물이 설계도서의 내용대로 시공되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품질관리 공사관리 및 안전관리 등에 대하여 지도 감독하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건축전문가로서 건축공사가 법령에 따라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건축물이 안전하게 신축되는지를 확인하고 감독하는 것이 주된 업무다. 원래 이러한 공사감독과 확인업무는 건축공무원의 고유권한이라고 할 것인데, 법에서 감리사에게 이러한 감독 및 확인업무를 위임한 것이다.
감리업무는 건축주와 감리자 사이에 서면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진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규모가 적은 공사는 구두로 감리계약을 체결하고 계약서 없이 진행하기도 하지만, 나중에 문제가 되면 곤란하다. 그러므로 반드시 감리계약서를 작성한 후에 감리업무를 수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감리계약이라 함은 감리자가 건축물에 대한 감리업무를 담당하고, 건축주는 그에 대한 감리비용을 지급하는 것을 주된 내용으로 한다. 감리계약은 이와 같이 <감리업무수행>과 그에 대한 <감리비지급>이라는 두 가지 의무를 핵심으로 하는 쌍무계약이다.
쌍무계약(雙務契約)이라는 용어는, 계약당사자가 서로 대가적 의미를 가지는 급부를 하는 계약을 말한다. 매매계약에 있어서 매도인이 물품을 납품할 의무를 부담하고, 매수인이 대금을 급부할 의무를 부담하는 것처럼, 2개의 급부가 서로 대가관계에 있는 것을 의미한다. 쌍무계약에 있어서는 동시이행항변권이 주된 요소라고 할 수 있다.
감리계약에 따라 감리자는 감리업무를 수행하여야 한다. 감리자가 업무수행과정에서 고의 또는 과실로 건축주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에는 계약상 손해배상책임을 지게 된다. 감리계약상의 의무를 이행하지 않은 결과에 대한 책임이다. 감리 잘못으로 안전사고가 발생한 경우에는 형사책임까지 지게 되고, 행정상 징계처분을 받게 된다.
법에서 ‘고의나 과실’이라는 개념은 매우 중요하다. 이런 요소가 있어야 민법상 불법행위가 성립한다. 형법상 범죄에 있어서도 ‘고의나 과실’이 있어야 처벌이 가능하다. 고의 또는 과실이 없는 경우에는 범죄행위 또는 불법행위에 해당되지 않는다.
Ⅳ. 감리계약은 준위임계약이다
감리계약의 법적 성질이 무엇인가에 대해서는 도급계약설과 준위임계약설이 대립되고 있다. 이와 같은 견해 대립은 감리자의 하자담보책임의 기간에 관한 차이, 감리자가 책임 없는 사유로 감리업무를 중단하였을 경우 감리업무의 이행비율에 따라 감리비를 지급할 것인지 여부, 건축주가 파산했을 때 감리자가 감리계약을 해제할 수 있느냐 하는 점 등에서 구별의 실익이 있다.
감리계약은 감리라는 업무를 완성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고, 그에 대해 감리업무 완성에 대한 대가로 감리비를 지급하는 것이라는 것을 근거로 도급계약으로 보는 견해가 있다. 이에 대한 설명은 너무 어려운 법적 문제이기 때문에 더 이상 설명하는 것을 생략하기로 한다. 건축사는 이렇게 깊이 법을 알 필요도 없다.
대법원은 어떤 입장을 취하고 있을까? 법의 해석에 관한 대법원의 판결은 현실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고 절대적인 근거를 가진다. 어떠한 경우이든 대법원 판결이 있으면, 이를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된다.
대법원은 감리자는 제3자적인 독립된 지위에서 부실공사를 방지할 목적으로 정기적으로 당해 공사의 품질검사, 안전검사를 실시하여 만일 부적합한 공사가 시행되고 있는 경우라면 당해 공사에 대한 시정, 재시공, 중지요청까지도 하여야 하는 등 공사의 진행에 제동을 걸어야 할 필요도 있다고 판시한다.
감리자는 공정이 계획대로 진행되고 있는가를 면밀히 살펴 예정된 공기를 준수하지 못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그 원인을 분석하고 그 결과를 보고하는 사무도 담당하고 있는 것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공사의 진척이 부진하거나 공정이 예정대로 진행되지 않는다고 하여 그에 병행하여 아무런 감리업무를 수행하지 아니한 채 이를 그대로 방치하거나 나아가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채 함부로 감리원을 공사현장에서 철수시켜서는 아니되는 것을 그 기본적 사무의 내용으로 하고 있다는 것이다.
감리의 대상이 된 공사의 진행정도와 수행할 감리업무의 내용이 반드시 비례하여 일치할 수 없는 것은 그 업무의 속성상 당연하다고 본다. 따라서 주택 등 건설공사감리계약의 성격은 그 감리의 대상이 된 공사의 완성 여부, 진척정도와는 독립된 별개의 용역을 제공하는 것을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위임계약의 성격을 갖고 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다(대판 2000. 8. 22. 2000다19342).
대법원은 민법 제690조가 위임계약의 일방 당사자의 파산을 위임계약 종료사유로 하고 있는 것은 위임계약이 당사자 사이의 신뢰관계를 바탕으로 하고 있으므로 당사자의 일방이 파산한 경우에는 그 신뢰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된다는 데 그 기초를 두고 있다고 본다.
공사감리계약은 그 법률적 성질이 기본적으로 민법상의 위임계약이라고 하더라도 감리계약은 공동주택건설사업의 원활하고도 확실한 시공을 고려한 사업계획 승인권자의 감리자 지정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어서 사업주체가 파산하였다고 하여 당연히 감리계약이 종료하는 것으로 볼 수 없고, 감리계약의 특수성에 비추어 위임계약에 관한 민법규정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는 것이라고 판단하였다(대판 2003. 1. 10. 2002다11236).
Ⅴ. 감리비에 관한 분쟁이 생겼을 때
감리계약에서 다음으로 중요한 요소는 감리비를 정하는 것이다. 감리비는 건축주와 감리자 사이의 합의에 의해 결정된다. 감리계약서에 감리비이나 지급시기 등을 기재한다. 공공발주사업에 대한 건축사의 대가기준에 관하여는 규정을 두고 있다.
그러나 일반적인 감리업무에 대한 보수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다. 감리비를 지나치게 과다하게 책정한 경우에는 나중에 건축주가 궁박 경솔 무경험 등을 이유로 불공정한 법률행위에 해당한다는 이유로 무효를 주장할 수 있으나, 실무상에서는 거의 불공정법률행위로 인정받기가 어렵다.
감리자는 건축주 등 의뢰인에 대하여 감리용역에 대한 보수청구권을 가진다. 감리계약이 중도에 해지된 경우에는 적정한 보수의 지급을 청구할 수 있다. 감리비를 계약금, 수회에 걸친 중도금, 잔금 등으로 나누어 지급하기로 한 경우에는 민법 제686조 제2항 소정의 기간으로 보수를 정한 공사감리계약에 해당된다.
감리계약이 해지되거나 감리업무가 도중에 중단되었을 때에는 감리비를 어떻게 산정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감리자는 자신이 수행한 감리업무에 대한 처리비율에 따른 보수를 청구할 수 있다. 감리업무에 대한 처리비율을 결정하는 방법에는 건축공정율에 따르는 방법과 감리한 실제 일수를 기준으로 하는 방법이 있다.
대법원은 감리계약의 성격은 감리의 대상이 된 공사의 완성 여부, 진척 정도와는 독립된 별도의 용역을 제공하는 것을 본질적 내용으로 하는 위임계약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감리보수는 반드시 건축공정율과 일치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대법원은 관련 법규상의 감리업무에 관한 규정 내용, 전체 감리기간 중 실제 감리업무가 수행된 기간이 차지하는 비율, 실제 감리업무에 투여된 감리인의 등급별 인원수 및 투여기간, 감리비를 산정한 기준, 업계의 관행 및 감리의 대상이 된 공사의 진척 정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감리비를 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Ⅵ. 감리자의 손해배상책임
감리자가 잘못함으로써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하여 건축주에게 손해를 입히거나, 제3자에게 손해를 입힌 경우 감리자는 어떠한 책임을 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감리자가 계약상의 의무를 위반하거나 건축물에 하자가 발생한 경우에는 손해배상의무를 진다. 또한 감리자가 잘못하여 제3자에게 손해가 발생한 경우에는 제3자에 대한 불법행위책임을 진다.
감리자는 제3자적인 독립된 지위에서 부실공사를 방지할 목적으로 당해 공사가 설계도서 기타 관계 서류의 내용에 따라 적합하게 시공되는지, 시공자가 사용하는 건축자재가 관계 법령에 의한 기준에 적합한 건축자재인지 여부를 확인하는 이외에도, 설계도서가 당해 지형 등에 적합한지를 검토하여야 한다.
시공계획이 재해의 예방, 시공상의 안전관리를 위하여 문제가 없는지 여부를 검토, 확인하여 설계변경 등의 필요 여부를 판단하여야 한다.
그런 다음, 만약 그 위반사항이나 문제점을 발견한 때에는 지체 없이 시공자 및 발주자에게 이를 시정하도록 통지함으로써, 품질관리·공사관리 및 안전관리 등에 대한 기술지도를 하고, 발주자의 위탁에 의하여 관계 법령에 따라 발주자로서의 감독권한을 대행하여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러므로 만약 이에 위반하여 제3자에게 손해를 입혔다면 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
Ⅶ. 감리자 책임이 인정된 사례
구체적으로 대법원에서 감리자의 책임이 인정된 사례를 살펴보기로 한다. 어떤 아파트 옹벽에 위험이 예상되었다. 감리자는 시공자가 적합한 전문토목건설업체인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았다. 아파트 옹벽 아래에 2개의 어스앵커를 박아 넣은 후에 감리자가 공사현장을 확인한 결과 균열을 발견하였으며 그 원인이 어스앵커 천공시 진동과 에어콤퓨레샤의 영향인 것 같고, 5번째 어스앵커 작업을 완료할 때까지는 균열이 진행될 것으로 판단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번째 어스앵커 작업까지 빨리 진행하여 완료하도록 지시한 것에 대하여 감리자는 위험발생 가능성을 예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시공을 강행하도록 하였다. 이러한 사실관계에서 대법원은 감리자에게 잘못이 있다고 인정하고 손해 전부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이 있다고 판단하였다(대판 2001. 9. 7. 99다70365).
또 다른 사안의 내용은 이렇다. 터파기작업을 설계도서상 C.I.P. 공법에 의하도록 되어 있었다. 시공자는 비용절감을 위하여 공사감리자와 협의를 거쳐 목재토류벽 흙막이공법으로 시공하였다. 그 결과 인접한 건물의 지반침하와 기울기가 급격히 진행되어 사람이 거주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다. 감리자는 터파기작업의 잘못된 시공으로 주변 건물들이 균열되고 인근 주민들이 민원을 제기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공사현장에 가 보고, 비로소 시공사에 대하여 터파기작업의 공사방법을 변경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사안에서 대법원은 공사감리자는 터파기작업시에 감리업무를 게을리 한 잘못이 있어 손해배상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대판 1997. 8. 22. 97다19670).
감리자에게 설계도서상의 하자를 발견하여 시정하도록 할 의무가 있는지 여부가 문제된다. 설계도서라 함은 건축물의 건축 등에 관한 공사용 도면, 구조계산서, 시방서, 건축설비계산 관계서류, 토질 및 지질 관계 서류, 기타 공사에 필요한 서류를 말한다.
책임감리의 경우에는 법령에 감리자는 건설업자 또는 주택건설등록업자가 작성한 시공상세도면의 검토‧확인을 하도록 규정되어 있다. 일반감리의 경우에도 건축법에 감리자는 상세시공도면이 검토 확인의무가 포함되어 있다.
대법원은 건설공사의 감리자는 설계도서가 당해 지형 등에 적합한지를 검토하고, 시공계획이 재해의 예방, 시공상의 안전관리를 위하여 문제가 없는지 여부를 검토, 확인하여 설계변경 등의 필요 여부를 판단하여야 할 의무가 있다고 판단하였다(대판 2001. 9. 7. 99다70365).
Ⅷ. 감리자 상대 소송의 문제점
사용자 및 피용자관계 인정의 기초가 되는 도급인의 수급인에 대한 지휘, 감독은 건설공사의 경우에는 현장에서 구체적인 공사의 운영 및 시행을 직접 지시, 지도하고 감시, 독려함으로써 시공 자체를 관리함을 말하며 단순히 공사의 운영 및 시행의 정도가 설계도 또는 시방서대로 시행되고 있는가를 확인하고 공정을 감독하는 데에 불과한 이른바 감리는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대판 1989. 8. 8. 88다카27249).
대법원은 감리계약을 단순한 도급계약이라고 보지 않고 위임계약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건축주가 감리자에 대한 계약상의 손해배상청구권은 감리가 끝난 날로부터 10년의 소멸시효에 걸리게 된다. 감리자가 건축주 이외의 제3자에 대해 부담하는 불법행위에 기한 손해배상청구권은 피해자가 손해배상사실을 안 날로부터 3년의 단기소멸시효에, 감리가 끝난 날로부터 10년의 제척기간에 해당한다.
건축사가 설계나 감리와 관련하여 소송을 하거나, 소송을 당하게 되는 경우에는 변호사와 상담을 하게 된다. 그런데 막상 건축만 전공하던 입장에서 건축관련소송에 대해 법률가와 대화를 해보면, 매우 답답한 심정이 된다.
우선 변호사가 건축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건축에 대해 전혀 모르는 경우가 많다. 특히 건축전문용어에 대해 별다른 지식이 없는 경우, 건축사는 변호사에게 모든 것에 관해 설명을 해주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사건의 내용을 파악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리고, 논리적인 설명을 하도록 해야 하는데, 그런 과정에서 불리하게 재판이 진행될 우려가 있다. 따라서 건축소송은 건축을 아는 변호사와 상의하는 것이 좋다.
건축주 또는 제3자가 감리자를 상대로 감리계약불이행책임을 묻거나, 불법행위책임을 물어서 소송을 시작하면 복잡한 민사소송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러한 건축분쟁소송은 다른 일반적인 소송과 달라서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① 재판에 상당한 시일이 걸린다. 다른 재판과 달리 전문가의 감정절차를 거쳐야 하고, 주장과 입증이 복잡하고 어렵기 때문이다. 건축소송은 보통 6개월 이상 걸리고, 심지어는 몇 년씩 걸리기도 한다. 그러면 건축사는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② 전문감정인의 감정결과가 소송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때문에 소송당사자들은 감정결과에 승복하지 못하고 불만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또한 감정비용이 크기 때문에, 당사자들의 입장에서는 함부로 감정신청을 하지도 못한다. 물론 나중에 소송에서 100% 이기면 감정비용도 상대방에게 청구할 수 있지만, 소송이란 언제나 승패가 불확실하기 때문에 당사자로서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③ 증거가 불충분하고 애매모호해서 패소하는 경우가 많다. 계약 체결 당시 명확하게 해놓지 않은 경우가 많고, 나중에 설계도면이나 시방서, 산출내역서 등을 찾지 못하거나 쌍방이 가지고 있는 자료가 서로 달라 입증에 애를 먹게 된다. 사실 일반적인 거래에서는 분쟁이 생기기 전까지는 서로 인간적으로 믿고 구두로 진행을 하기 때문에, 확실한 물적 증거를 가지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법에 가서는 명확한 물적 증거 없이는 사실을 인정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증인과 같은 인적 증거는 증인의 협조를 받기도 어렵다. 남의 사건에 증인으로 나서지 않으려 하기 때문이고, 오래된 사건에서 증인 자신도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지 않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Ⅸ. 맺는 말
최근 국회를 통과한 건축법 개정안은, 건설산업기본법 제41조 제1항 각호에 해당하지 아니하는 소규모 건축물로서 건축주가 직접 시공하는 건축물 및 분양을 목적으로 하는 건축물 중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허가권자가 해당 건축물의 설계에 참여하지 아니한 자 중에서 공사감리자를 지정하여야 한다고 규정하였다.
입법 과정에서 많은 논의가 있었지만, 정부에서는 건축물의 안전관리 강화대갱의 일환으로 일정 범위의 건축물에 대해서는 허가권자가 공사감리자를 지정하는 제도까지 도입하였다.
또한 건축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건축제도를 위반한 건축주, 공사시공자, 공사감리자 등에 대한 벌칙 수준을 현행 500만원 내지 1억원 이하의 벌금에서, 5천만원 내지 10억원 이하의 벌금으로 대폭 상향조정했다.
앞으로 공사감리자에 대해서는 행정청으로부터의 감독도 강화되고, 잘못에 대한 책임추궁도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감리를 맡긴 건축주 또는 제3자로부터의 손해배상책임 추궁도 많아질 것이 예상된다. 따라서 감리자는 이러한 사회변화를 인식하고 감리계약도 철저하게 하고, 감리업무 수행을 보다 완벽하게 하여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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