Ⅱ. 법원에서 날라온 소장을 받은 건축사는 당황한다
법원이나 검찰청, 경찰서에서 사건 때문에 집이나 사무실로 배달되는 서류는 모두 등기우편으로 오게 된다. 그러므로 등기로 오는 편지는 일단 법적으로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이것을 제대로 수령하지 못하면 불이익을 보는 경우가 많다.
A건축사는 어느 날 사무실로 한 통의 등기우편물을 받았다. 겉봉투에 OO지방법원이라고 크고 진한 글씨로 쓰여있었다. 무슨 일일까 궁금했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가슴이 철렁 가라앉잤다. 사람은 누구나 아무 죄를 짓지 않아도 법원이나 검찰청에서 무슨 연락이 오거나 우편물이 오면 놀라게 된다.
A건축사는 호흡을 가다듬고 우편물을 뜯어보았다. 그 안에는 두툼한 서류가 들어있었다. 자신이 설계와 감리를 담당했던 어떤 작은 규모의 건물의 건축주가 원고로 되어 있었다. A는 피고로 되어 있었다. A 뿐만 아니라 그 공사를 담당했던 공사업자 B, 그리고 B의 하청업자 C, 특정 물품납품업자 D도 공동피고로 되어 있었다.
원고인 건축주는 소장에서 청구취지와 청구원인을 적어놓았는데, 변호사의 이름도 있었다. 그러니까 건축주는 문제해결이 되지 않자, 마침내 돈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해서 법원에 민사재판을 청구한 것이었다.
소장의 청구원인을 읽어보니, 건축주는 특정 제품에 대한 시험성적서를 받지 못해 공사가 다 끝났는데도 아직까지 건물에 대한 준공검사를 받지 못했고, 그 때문에 임대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으므로 그에 대한 손해배상을 하라는 취지였다. 물론 피고 4명에 대해 각각 어떤 근거에서 어떤 책임을 추궁하는지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A는 그동안 이 건물에 대해 사용승인을 받지 못해 여러 차례 건축주로부터 항의는 받았지만, 그 책임은 전적으로 공사업자가 물품대금을 제대로 주지 못해서 시험성적서를 받지 못했으므로 설계감리자의 책임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작 건축사인 자신까지 피고로 포함하여 소송을 걸어오니 가슴이 답답하고 어쩔 줄 몰랐다. 만일 이러한 소송에 잘못 대응했다가는 손해배상을 해야 하고, 지연손해금까지 물어야 하며, 원고가 선임한 변호사 비용까지 내야 할 입장이었다. 그렇게 되면, 건축사로서는 실제 설계감리비는 얼마 받지 못한 상태에서 많은 금액을 손해배상금으로 물어내야 할 상황이었다.
A건축사는 혼자 힘으로서는 소송을 할 수 없었고, 건축사 일을 하는데 많은 지장이 있다고 판단해서 하는 수 없이 변호사를 선임하려고 필자를 찾아왔다. 필자가 대한건축사협회 자문변호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소문을 들었다는 것이다.
필자는 굳이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가 없는 사건이니 그냥 본인이 직접 법정에 나가는 형식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몇 차례 상담을 통해 그래도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소속해 있는 법인에서 변론을 맡기로 했다.
필자는 담당 변호사와 공동으로 이 사건의 변론을 준비하면서 공사업자는 몰라도 적어도 감리를 맡았던 건축사로서는 전혀 법적인 책임이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건축사인 피고는 사용승인을 받지 못한 부분에 대한 책임이 없으므로 원고청구를 기각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하였고, 그에 대한 증거 및 설명자료를 많이 제출했다.
그 과정에서 건축사와 여러 차례 만나면서 감리인이 어떠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가? 그리고 부당한 청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어떠한 설명을 해야 하고, 그에 대한 입증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하고 상의를 하였다.
건축사도 시간이 가면서 점차 자신이 책임이 없다는 점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준비를 잘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송은 끝이 날 때까지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답답한 상황이 된다. 상대가 있고, 더군다나 상대의 변호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은 제3자인 판사를 설득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에 결론이 날 때까지는 아무도 판결 내용을 알 수 없다.
이 사건은 지루한 과정을 거쳐서 결국 공사업자가 일부 손해배상을 건축주에게 하고, 나머지 하청업자, 자재납품업자 및 건축사에 대한 소송은 모두 취하하는 것으로 조정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건축사에 대한 소송은 아무런 조건 없이 취하되었다. 하지만 건축사는 감리를 잘못해서 커다란 손해를 보았다는 건축주가 제기한 민사소송 때문에 6개월 넘게 엄청난 마음 고생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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