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리인 상대 소송

 

가을사랑

 

A건축사는 법원에서 날라온 소장을 보고 잠을 자지 못했다. 너무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설계비와 감리비라고 해봤자 얼마 되지 않는 금액이었다. 그런데 공사업자의 잘못으로 사용승인을 받지 못한 것을 이유로 공사업자와 하청업자, 건축자재납품업자뿐 아니라 건축사까지 공동피고로 넣은 소장을 법원에 제출했다.

 

더군다나 건축주는 원고로서 변호사까지 선임했다. 소장을 읽어보니 공사는 다끝났는데 판넬에 대한 시험성적서를 받지 못해 사용승인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 도급계약서상에서 정한 준공약정일로부터 사용승인을 받을 때까지 신축건물에 대한 월 임대료를 손해배상으로 지급하라는 취지였다.

 

공사업자에게는 별도로 공사지체상금에 대한 약정금도 청구하고 있었다. 판넬업자에게는 특정 건축자재에 대한 시험성적서를 원고에게 인도하라는 청구도 곁들였다.

 

소송비용은 피고들의 부담으로 하며, 손해배상금청구에 대해서는 연 15%의 비율에 의한 지연손해금을 배상하고 청구금액에 대해서는 가집행할 수 있다는 판결을 구하고 있었다.

 

A건축사는 혼자 힘으로서는 소송을 할 수 없었고, 건축사 일을 하는데 많은 지장이 있다고 판단해서 하는 수 없이 변호사를 선임하려고 필자를 찾아왔다. 필자가 대한건축사협회 자문변호사로 일하고 있기 때문에 소문을 들었던 모양이다.

 

필자는 굳이 변호사를 선임할 필요가 없는 사건이니 그냥 본인이 직접 법정에 나가는 형식으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좋겠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몇 차례 상담을 통해 그래도 변호사를 선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결론이었다. 그래서 필자가 소속해 있는 법인에서 변론을 맡기로 했다.

 

필자는 담당 변호사와 공동으로 이 사건의 변론을 준비하면서 공사업자는 몰라도 적어도 감리를 맡았던 건축사로서는 전혀 법적인 책임이 없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그래서 건축사인 피고는 사용승인을 받지 못한 부분에 대한 책임이 없으므로 원고청구를 기각해야 한다는 주장을 강력하게 하였고, 그에 대한 증거 및 설명자료를 많이 제출했다.

 

그 과정에서 건축사와 여러 차례 만나면서 감리인이 어떠한 임무를 수행해야 하는가? 그리고 부당한 청구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어떠한 설명을 해야 하고, 그에 대한 입증방법은 무엇인가에 대해 많은 논의를 하고 상의를 하였다.

 

건축사도 시간이 가면서 점차 자신이 책임이 없다는 점에 대해 확신을 가지고 준비를 잘 하고 있었다. 그러나 소송은 끝이 날 때까지 늘 불안하고 초조하고 답답한 상황이 된다. 상대가 있고, 더군다나 상대의 변호사가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법은 제3자인 판사를 설득시키는 과정이기 때문에 결론이 날 때까지는 아무도 판결 내용을 알 수 없다.

 

이 사건은 지루한 과정을 거쳐서 결국 공사업자가 일부 손해배상을 건축주에게 하고, 나머지 하청업자, 자재납품업자 및 건축사에 대한 소송은 모두 취하하는 것으로 조정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건축사에 대한 소송은 아무런 조건 없이 취하되었다. 하지만 건축사는 감리를 잘못해서 커다란 손해를 보았다는 건축주가 제기한 민사소송 때문에 6개월 넘게 엄청난 마음 고생을 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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